"꿈에서 본 이야기로 쓴 각본…교수님들도 칸 초청 예상 못해"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오는 14일 개막하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는 예년과 비교해 한국 장편 영화 초청작이 눈에 띄게 줄었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와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 두 편만이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과 칸 클래식에 각각 초청됐다.
한국 영화 위기론과 함께 '포스트 봉준호'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희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인 임유리(26) 감독의 단편 '메아리'가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상영된다는 것이다.
라 시네프는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영화를 선보이는 경쟁 부문이다. 대개 졸업 작품으로 만든 영화가 이 부문에 진출하지만, 임 감독은 졸업 작품이 아닌 첫 연출작으로 칸의 초청장을 받았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임 감독은 "초청 소식을 메일로 받고서 기쁘기보다는 '뭐지? 왜 내 작품을 선택했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했다.
그는 "첫 작품인 데다 제 것보다 더 완성도 높은 영화가 많을 것 같아 의아했다"면서 "나중에야 제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통했구나 싶어 기뻤다"고 말했다.
'메아리'는 술에 취한 남자들에게 쫓겨 금지된 숲으로 도망친 여자 옥연이 몇 년 전 영감과 혼인한 앞집 언니를 만나면서 여성으로 사는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시대극이다.
이 작품은 임 감독이 어느 날 꾼 꿈에서 시작됐다. 갇혀 사는 소녀가 숲에 들어간 뒤 누군가를 만나 도움을 받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꿈에 그대로 나왔다고 한다.
그는 "몽롱한 이 꿈을 꾸고서 바로 메모를 해뒀다"며 "어머니에게 얘기했더니 재밌으니 한번 (시나리오로) 써보라고 하시더라"고 떠올렸다.
하지만 주위에선 임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더니 제작 지원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시대극의 특성상 제작비가 많이 들고, 촬영도 늦은 밤 숲에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임 감독은 '제발 시나리오를 줄여라', '산이고 강강술래 하는 장면이고 다 없애라'라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주변의 교수님들 역시 칸영화제 초청은 물론이고 제작 지원작에 선정될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을 보란 듯 깨고 CJ문화재단이 신인 감독의 단편 영화 제작을 도와주는 '스토리업' 사업에 지원해 합격했다. 심사위원에게선 "심사 시간의 절반 이상을 잡아먹은 문제작"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후 임 감독은 학교 친구들을 모두 동원해 제작진을 꾸리고 촬영에 들어갔다. 한 학년 선배인 프로듀서(PD) 한 명을 제외하면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 '메아리'의 모든 스태프가 그의 학교 동기다.
이론으로만 배웠던 영화 작업 과정을 실제로 겪으며 '맨땅에 헤딩하는' 경험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학교 친구들이 어릴 적부터 '시네필'이었던 것과는 달리 임 감독은 성인이 되고서야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 이과생이던 그는 한 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 합격했지만, 미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삼수까지 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예종 출신 강사를 만나게 되면서 영화과로 진로를 다시 한번 바꿨다.
임 감독은 "회화는 제가 담고 싶은 얘기를 담기엔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영화는 많은 사람이 모여 만들고 또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보는 매체라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정말 열불나게 공부했다"며 웃었다.
그는 졸업까지 세 학기가 남았지만, 장편 영화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다. '메아리'의 장편 버전과 새로운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린 작품) 두 편이다.
"다른 세계에 살다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 받는 충격을 너무 좋아해서 앞으로도 판타지 장르를 계속 찍을 것 같아요. 저는 영화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이 욕심부릴 수 있는 건 '연출 의도' 딱 한 가지지요. 진솔한 자세로 영화를 만들고 관객과 소통하는 감독이 되는 게 꿈입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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