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독서일기]

장정일 2024. 5. 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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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전혜원·오건호 지음
서해문집 펴냄
ⓒ이지영 그림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서해문집, 2024)은 30대 기자이자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서해문집, 2021)을 쓴 저자이기도 한 전혜원과 연금·재정을 오랫동안 연구한 60대 사회학자 오건호의 대담집이다. 국민연금은 1986년 국민연금법이 공포된 이후, 2006년부터 전 국민에게 의무 가입이 적용되었다.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이 끊긴 노동자들의 노후를 위한 국가정책으로, 개개의 시민에게 민간 보험사보다는 국가가 좀 더 보편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2023년 11월 기준으로 남성 노령연금 수급자의 평균 수령액은 월 75만6898원, 여성 수급자는 39만845원이다. 이 금액은 ‘용돈 연금’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지만, 국민연금이 마주한 더 큰 문제는 코앞에 닥친 연금 고갈이다. 재정 계산에 따르면, 2041년부터 국민연금이 적자로 돌아서고 그것마저 2055년이면 소진된다. 그래서 보험료 납부를 이제 시작하는 청년 가입자들은 ‘내 돈이 떼어먹힐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연기금(연금기금)이 바닥나는 원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가입자가 연금공단에 내는 보험료(수입)보다 나중에 돌려받는 연금액(지출)이 크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저출생-고령화가 심화되면서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수급자)과 보험료를 내는 사람(가입자) 간 인구 균형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월소득의 9%를 내고 있는 현행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지금의 3배에서 4배(26~35%)로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는 ‘덜 내는 보험료’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공적연금을 ‘다단계 사기’ 같은 범죄에 빗대는 게 적절하진 않지만, 거기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보험료율을 현실화하는 1단계 개혁을 진행하면서, 특수직역연금으로 분류되는 공무원·사학·군인 연금을 국민연금 체계로 흡수하는 2단계 개혁을 해야 한다. 이 밖에도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는 국민연금 개혁과 계층별 노후소득 보장에 대한 여러 대안이 제안되고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정치인과 시민이 국민연금을 불변의 계약으로 보지 않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이 존속되는 한 예상 밖의 인구·경제 변수”에 따라 재조정되어야 할 제도, 즉 ‘연속 개혁’이 필요한 제도다.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관점이 변해야 비로소 정치인과 시민이 국민연금 개혁에 힘을 모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만들어진 취지와 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연속 개혁을 미루면 미룰수록 국민연금은 “진짜 핵폭탄”이 된다.

〈2014년생〉(아를, 2024)은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프라메이드〉가 당선된 이후 극작과 연출 작업을 함께 해온 송김경화의 장편 희곡이다. 30대 불안정 노동자(Precariat)의 좌절과 꿈을 그린 작품으로 신춘문예를 통과한 작가는 당선 소감에 “시름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작품을 쓰고 연극을 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맞추어 출간된 〈2014년생〉은 작가의 공언이 빈말이 아니었다고 말해준다.

모든 것이 무너진 그해, 진실은 가라앉고 애도는 통제당했던 2014년에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났다. 이들 2014년생은 어떤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애도하게 될까. 작가는 이제 열 살 난 2014년생 주인공 시원의 눈을 통해 세월호를 현재화한다. 초등학생 시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조사하고 배우면서 안전과 재난의 문제를 어린이 교통안전(민식이법),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지구 온난화 문제 등으로 확대해나간다. 열다섯 살에 처음 환경운동을 시작한 그레타 툰베리를 떠오르게 하는 시원은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어린이란 많은 걸 할 수 있는 존재구나.”

누군가가 말했듯이, 희곡은 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교양과 지성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독자들은 소설보다 희곡을 읽을 때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상상력을 보태야 한다. 희곡 읽기가 안고 있는 이런 난점을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2014년생〉은 그렇게 재미난 텍스트가 아니다. 여기서도 필요한 것은 연극에 대한 관점 변화다. 관심이 있는 분들께 “연극을 통한 공동체, 참여 그리고 변화”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필립 테일러의 〈시민연극〉(청동거울, 2009)을 권한다.

사회정책 의제를 공적으로 풀어가는 경험

김영화의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메멘토, 2024)는 2021년 8월 ‘미라클 작전’으로 아프간에서 한국으로 이송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울산 정착기를 취재했다. 한국에 도착한 아프간 특별기여자는 총 79가구 391명. 그 가운데 울산 현대중공업이 채용한 29명과 그들의 가족을 합한 157명이 울산 동구에 있는 현대중공업 임직원 사택에 입주했다. 현대중공업이 주택을 공짜로 주는 특혜(?)를 베풀면서까지 이들을 환대한 것은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100명 규모 업체에 외국인 열 명 들어오면 일자리 열 개 빼앗겼다고 그랬잖아요. 지금은 그 열 명이 들어오면서 아흔 명의 일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인도적 환대보다 더 절실했던 이유는 “조선소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였다.

취업자를 따라온 가족 중에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유치원생 16명, 초등학생 28명, 중학생 19명, 고등학생 22명 등 85명),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아프간 학생이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의 학부모가 있었다. 이주노동자는 공업도시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었지만 아프간 학생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이해는 달랐다. 이 책은 교육청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특별기여자들의 난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아프간 학생들의 등교를 가능하게 했던 경험을 통해, 다문화·다인종 국가에 진입하게 된 지역사회의 갈등 처리 사례를 제공한다.

사회학자 오건호가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 한 말은, 다문화사회를 경험하고 가꾼 울산 시민들에게 딱 알맞은 찬사이면서, 우리 앞에 놓인 과제처럼 들린다. “저는 한국 사회에 상호 신뢰, 사회연대가 부족하다고 봐요. 정치적 이슈에선 강하게 집결하지만, 사회정책 의제를 공적으로 풀어가는 경험은 일천합니다. 이제부터 만들어야죠. 시민들이 ‘어, 우리도 할 수 있네?’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적 사례를요. 그러면 ‘우리가 그 일도 해냈는데,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 이웃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공동체의 가치도 가슴에 품을 수 있어요. 사회연대로 재사회화되는 거죠.”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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