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포츠 영화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4. 5. 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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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US 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결승.

스물네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노리는 서른일곱 살 세리나 윌리엄스와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꿈꾸는 스물한 살 오사카 나오미가 맞붙었다.

"아, 이건 정말 영화적인 상황(cinematic situation)이구나."

인간의 욕망을 '뼈까지 남김 없이' 담아낸 영화 네 편으로 우리 시대 러브스토리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감독은, 이번에도 끝내주게 자극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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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스〉
감독:루카 구아다니노
출연:젠데이아 콜먼, 조시 오코너, 마이크 파이스트

2018년 US 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결승. 스물네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노리는 서른일곱 살 세리나 윌리엄스와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꿈꾸는 스물한 살 오사카 나오미가 맞붙었다. 세트 스코어 2-0. 오사카 나오미 승리.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

승패를 결정한 건 선수였지만 흐름을 바꾼 건 선수가 아니었다. 코치와 심판이 사실상 ‘게임 체인저’였다. ‘경기 중엔 선수에게 어떤 지시도 내려선 안 된다’는 대회 규정을 어기고 관중석에서 손짓으로 사인을 보낸 세리나 윌리엄스의 코치에게 경고를 준 심판. 선수는 판정에 불복했고 계속 항의하다 분을 참지 못했으며 결국 게임포인트를 빼앗기는 페널티까지 받은 끝에 스스로 경기를 망쳤다.

그 광경을 지켜본 미국의 수백만 시청자 가운데 작가 저스틴 커리츠케스가 있었다. 테니스에 그런 규정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경기를 보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는 이는 그 한 사람뿐이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해서는 안 된다니. 꼭 듣고 싶은 말이 있는데 들을 수가 없다니. “아, 이건 정말 영화적인 상황(cinematic situation)이구나.”

그렇게 시작된 상상이었다. 코트 위 두 선수와 관중석 코치의 삼각관계. 숨막히는 승부가 펼쳐지는 가운데 서로 아무 말도 주고받지 못하면서 결국 모든 마음을 들키고 마는 이야기. 13년에 걸친 세 남녀의 우정과 사랑의 랠리를 단 한 번의 승부에 녹여낸 이 멋진 시나리오가 하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손에 들어갔다. 그것으로 이미 게임 끝.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매치포인트부터 만들어둔 셈.

〈아이 엠 러브〉(2009), 〈비거 스플래쉬〉(2015),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그리고 〈본즈 앤 올〉(2022)까지. 인간의 욕망을 ‘뼈까지 남김 없이’ 담아낸 영화 네 편으로 우리 시대 러브스토리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감독은, 이번에도 끝내주게 자극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경기 도중 절대 서로의 몸이 닿을 일 없는 테니스 코트 위에서 각자의 욕망이 미식축구 선수처럼 뒤엉킨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 영화가 장르의 네트를 넘어 관객 마음 깊숙이 날아와 꽂히는 것이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서브 에이스처럼 압도적인 배우 젠데이아 콜먼의 존재감, 위기의 순간 경기 흐름을 바꾸는 백핸드 스트로크처럼 결정적 순간마다 관객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배우 조시 오코너의 근사한 연기, 상대를 압박하는 네트 플레이처럼 마지막까지 가슴을 졸이다 끝내 환호하게 만드는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짜릿한 음악.

이 모든 패를 손에 쥐고 파격적인 엔딩에 거침없이 베팅하는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연출에 감탄하며 나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이런 게 정말 ‘영화적인 영화’라는 거구나. 타자기로 쓰는 이야기와 다르게 ‘카메라로 만드는 이야기’라는 건, 바로 이래야 하는 거구나.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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