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꿈의 '상온 초전도체' 찾는 연구시설 본격 가동

박정연 기자,김하은 인턴기자 2024. 5.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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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 있는 '종합극한조건 사용자시설(SECUF)'의 모습이다. 중국과학원 물리학연구소 제공.

중국이 새로운 초전도체를 발견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한 시설을 운영한다. 극한의 온도와 압력에서 초전도체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지금껏 규명되지 않은 메커니즘을 확인한다. 다른 시설이 구현할 수 없는 조건에서의 실험은 차별화된 성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계 ‘꿈의 물질’이라 불리는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찾는 경쟁에서 중국이 한발 앞서 나가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 화이러우구에 조성된 주요 국립 과학시설인 ‘종합극한조건 사용자시설(SECUF)’의 연구자들은 2억2000만달러(약 3028억9600만원) 규모의 시설을 사용해 극한의 자기장, 압력, 온도로 물질의 한계를 실험하고 정밀한 해상도로 관찰하고 있다. 22개 실험실로 이뤄진 이 시설은 1년간의 시범 운영 기간을 거친 후 작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시설의 목표는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찾는 것이다. 특정 온도 이하에서 갑자기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을 없애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어 전기‧전자 분야에서 사용처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기존 초전도체는 극저온이나 초고압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가 있다면 실생활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돼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물질을 찾는 시도는 그간 실패로 돌아갔다.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상온 초전도체가 다시 국제학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지난 8월 한국 연구진이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찾았다고 주장하면서다. 당시 고려대 창업기업인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진은 30도 상온 환경에서 초전도성이 나타나는 물질인 ‘LK-99’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국내외에서 이뤄진 재현 실험에선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후 LK-99를 둘러싼 논란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상온 초전도체를 발견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에는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초전도체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중국의 SECUF에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실험장비들이 구비됐다. SECUF에서 근무하는 진광 청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IOP) 교수는 6면에 엄청난 압력을 가해 물질을 압착하는 장치인 '큐빅 앤빌 셀'과 두 개의 초전도 자석, 헬륨 냉각 시스템이 있는 실험실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큐빅 앤빌 셀은 물질의 다양한 전자적 특성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청 교수는 "다이아몬드 앤빌 등 기존의 고압 장치는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샘플을 수용할 수 있지만 SECUF의 큐빅 앤빌 셀은 더 큰 크기의 샘플을 압축할 수 있어 전자적 특성을 더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청 교수 연구팀은 큐빅 앤빌 셀을 사용해 희귀 자성 초전도체와 망간 기반 초전도체 등 몇 가지 초전도체들을 발견한 연구 결과를 2022년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하기도 했다.

루이 저우 IOP 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초저온 상태와 초전도 자석을 결합한 실험실을 설치해 핵자기공명(NMR) 분광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NMR은 높은 자기장에서 원자핵의 행동을 추적한다. 195.8도 이상에서 작동하는 고온 초전도체의 기반이 되는 구조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SECUF의 자석은 미국 국립 고자기장연구소(NHMFL)에 있는 45테슬라(T·자속밀도의 단위)의 부분 초전도 자석이나 프랑스 국립강도자기장연구소의 37T 저항성 자석처럼 작동에 많은 전력이 필요한 자석들보다 약한 26T의 자기장을 만들어 낸다. 저우 연구원은 "SECUF의 자석은 훨씬 적은 전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최대 한 달 동안 안정적으로 자기장을 유지할 수 있다"며 "연구자들은 동일한 샘플로 더 긴 시간 동안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OP 소속이 아닌 중국의 연구자들도 SECUF에서 여러 기기를 사용해 연구하고 있다. 광한 카오 중국 저장대 물리학과 교수는 큐빅 앤빌 셀을 사용해 물질에 고압을 가했을 때 초전도 현상과 관련된 특징을 발견했다. 크로뮴 기반 물질에 높은 압력을 가했을 때 초전도 현상의 징후가 확인됐다. 물질의 자기적 특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카오 교수 연구팀은 "한 장소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질을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더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해외 학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지난해 7월 알렉산더 이튼 영국 케임브리지대 양자물질그룹 연구원의 연구팀은 2주 동안 SECUF의 극저온에서 30T 초전도 자석과 20T 초전도 자석을 둔 실험실을 사용해 '우라늄 디텔루라이드3'이라는 특이한 초전도체가 가진 전자적 특성을 밝혀냈다. 이튼 연구원은 사용한 실험실에 대해 "하고 싶었던 실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말했다.

SECUF에선 초전도 현상에 대한 연구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초고속 레이저를 사용해 반도체의 특성을 연구하고 또 다른 연구자들은 파악하기 어려운 물질의 양자 상태를 추적하고 있다.

청 교수는 "SECUF가 국내 및 해외 연구자 모두에게 개방돼 있다"며 "하지만 올해는 실험실을 사용할 연구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기 위해 선발 과정을 더 엄격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알리 반구라 NHMFL 사용자기술지원장은 "SECUF는 단일 장소에서 측정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며 획기적인 발견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며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SECUF를 이용하고 있지만 중국이 SECUF로 상온 초전도를 찾는 데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김하은 인턴기자 hesse@donga.com,har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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