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돌아가셨는데도 ‘빚의 굴레’ 여전”…‘상속 포기’,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데 무슨 일 [저격]
[저격-24] ※이번 화는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채무자의 법률대리인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유족들은 망자에게 이러한 빚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상속 포기 제도를 통해 재산과 빚을 모두 포기할 생각으로 법적 도움을 구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민법 제1019조 제1항은 상속개시있음을 안 날, 쉽게 말해 망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단순 승인이나 한정승인, 상속포기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단순 승인은 상속인이 망인의 상속재산을 자기의 재산과 그냥 합치는 것이다.
한정 승인은 상속인이 상속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 등을 변제한다고 하는 조건을 붙여서 상속을 수락하는 것을 말한다.
상속 포기는 상속인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으로, 재산과 빚 모두 물려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이러한 상속 포기는 원활하게 이루어질까.
특히 추심업체를 끼고 들어오는 채권자들은 전화를 3~4군데에서 하기 때문에 채무자 유족들이 버티기가 매우 힘들다.
변호사인 나도 한동안 이 전화에 시달리느라 무척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채권자들은 “우리 물건 갖고 안 돌려주는 것을 횡령죄와 권리행사방해죄로 형사고소하고, 감가상각으로 물건 가치 떨어진 손해에 대해서 손해배상 청구하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안 그래도 가족이 죽어서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이 압박을 무슨 수로 버틸 수 있을까.
보통 망자가 사망하고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해도 각 기관들에서 회신이 모두 오기까지 한달이 넘게 걸리는 게 보통이다.
즉, 사망자의 숨겨진 채무 등이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전에 저런 압박 연락이 오기 시작하고,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그냥 돈을 줬다간 단순 승인이 되어 나중에 빚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상속 포기나 한정 승인은 불가해진다.
단순히 상속을 포기하는 행위인데, 이건 좀 빨리 처리될까?
실제 사건에서 사망 후 재산 파악이 완료되고 1달 반쯤 지난 뒤 상속포기를 신청했는데, 포기를 신청한때로부터 2달쯤 지나서야 상속 포기 결정이 나온 적이 있었다.
즉, 상속 포기 신청해놓고 결정이 나올때까지 기다리는 두 달 동안 더 많은 채권자들로부터 다양하게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속 포기 신청해놨으니 우린 못 해줘요”라고 답하면, “아직 결정 나온 건 아니지 않냐, 그거 나오면 우리가 못 받으니 손해가 막심하다. 그러니 그 전에 빨리 달라”하며 득달같이 달려 든다.
이 중에선 형사고소, 민사손해배상을 걸겠다며 협박하는 업체들도 있다.
이 또한 아니다. 일부가 상속포기를 하더라도 누군가가 상속을 받았다면 그 사람이 정리하면 되겠지만, 만약 모든 상속인들이 다 포기한 상황이라면 누군가는 부동산이든 뭐든 남아있는 재산을 정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속재산관리인’이란걸 선임해 남아있는 재산을 그 관리인에게 넘기고 청산하게끔 해야 한다(민법 제1053조 제1항 등).
이 관리인 선임은 채권자가 신청할 수도 있지만, 선임 신청한 사람이 관리인에게 보수 수백만원을 예납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채권자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고 모른척 하는 경우가 많다.
망자가 살던 집이나 자동차 같은 것들은 어쨌든 정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 유족들이 결국 다시 관리인 선임을 신청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선임도 만만찮게 오래걸린다.
심지어 나는 미리 자료들 모두 준비해놨다가 상속포기 심판결정문이 나오자마자 하루만에 곧바로 재산관리인 선임신청서를 제출했는데 2달이 지나도록 안 나왔다.
재산관리인 선임신청 후 2달 쯤 지나서야 법원에서 전화가 와 “이제 결정은 나올건데 지금 재산관리인 인력이 부족해 사람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해당 망인과 관련해 들어온 소송만 총 3건이다. 더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이 소송들은 거의 다 상속 포기 후 관리인 선임 신청 중에 들어왔던 것들이다.
채권자들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약 5개월 동안 돈을 못 받고 있으면 소송을 걸만도 하다.
내가 맡은 사건에선 상속포기와 선임신청 대리한 내가 변호사기 떄문에 서비스 차원에서 간단하게라도 상속포기 근거로 민사소송에서도 대리인으로 들어가서 막아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당사자가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한다고 생각하면 소송마다 서면도 써야하고 자칫 법원 출석도 해야하는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이 제도의 각 과정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그동안 유족들은 너무나도 많은 고통을 겪는다.
법원도 법원 나름의 고충이 분명히 있겠지만, 유족들의 이런 심대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
<법률 자문>
ㅇ김승환 법률사무소GB 대표변호사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4천만원 드릴게요 제발”…미분양 털려고 ‘눈물의 할인’ 들어간 아파트들 - 매일경제
- “어린이 날인데, 어쩌나”…200㎜ 물폭탄 내린다는 ‘이곳’ 어디길래 - 매일경제
- “우리 병원에 2조4천억 주면 가능”...의대 교수들, 의대 증원 ‘2000명 근거’ 요구 - 매일경제
- ‘반미’ 먹고 “500명 드러누워, 11명 중태”…무슨 일이길래 - 매일경제
- “손예진도 ‘이 건’ 못 참아”…8만명 몰린 성지에 사상 최대규모 ‘떡페’ 열려 - 매일경제
- 정부24서 이름∙주민번호∙성적까지 노출됐다...행안부 “추가유출 방지 조치” - 매일경제
- “근로자의날 ‘노동절’로 바꾸자”…법 개정하자는 야당, 왜? - 매일경제
- 프랑스 파리 홀로 여행간 30대 남성 실종…“19일부터 소식 없어” - 매일경제
- ‘파리 실종 신고’ 한국인, 15일만에 소재 파악...“신변 이상 없어” - 매일경제
- “사기 진작 차원에서...” 뒷돈 논란 前 KIA 장정석 단장·김종국 감독, 첫 재판서 혐의 부인 - 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