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5일!] '토지' 속 서희처럼… 전 국민이 사랑한 집념의 작가

김가현 기자 2024. 5. 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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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박경리 작가 사망
2008년 5월5일 어린이날. 대한민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박경리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생전 박경리 작가의 모습.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2008년 5월5일. 대한민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박경리 작가가 별세했다. 향년 83세.

박 작가는 26년 동안 생애를 건 치열한 집필로 민족의 대서사시 '토지'를 완성하며 대한민국 국민이 사랑하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외에도 '김약국의 딸들' '불신시대' 등 다양한 작품을 써냈다.

박 작가가 작고한 후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 한해 수여하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우연히 만난 김동리 작가의 추천으로 등단


박경리 작가는 작고 후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사진은 박경리 작가의 '토지'의 표지.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1926년 10월28일 태어난 박경리 작가의 본명은 '박금이'다. 그는 1950년 황해도 연안여중 교사로 재직하던 중 6개월 만에 전쟁으로 인해 서울 흑석동으로 이주했다. 남편은 부역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는데 박 작가는 6·25전쟁 중 남편과 사별했다.

박 작가는 1954년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서울 용산지점에서 근무하며 습작을 하기 시작했다. 박 작가가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당시 중견 작가였던 김동리 작가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됐다.

박 작가는 고향 친구가 세들어 살던 김동리 작가의 집에 찾아가 그에게 글솜씨를 인정받았다. 박 작가는 학창시절에 썼던 단편인 '불안시대'를 김동리 작가의 지도로 몇 차례 고쳐썼다.

이 작품은 박경리 작가도 모르는 사이 '박경리'라는 필명과 '계산'이라는 제목으로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게재됐다.

박 작가는 이를 계기로 김동리 작가가 지어준 '박경리'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박 작가는 다음해 8월 단편소설 '흑흑백백(黑黑白白)'으로 문단에 등단했고 문학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 한국상업은행을 그만두고 돈암동에 조그만 식료품점을 연 후 창작에 몰입했다.

그는 등단 직후 '불신시대'를 비롯한 단편 소설을 많이 썼다. 초기작 중에는 6·25 전쟁 때 남편을 잃은 전쟁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한 자전적인 작품이 많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안겨준 '불신시대'에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주인공의 몸부림이 묘사됐다.



투병 중에도 멈추지 않은 집필에 대한 '열정'


박 작가가 필생의 역작 '토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지난 2008년 5월 소설가 故 박경리 빈소. /사진= 머니투데이
박경리 작가의 '토지'는 광복 이후 한국 문학이 거둔 최대의 수확으로 평가받는다.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만 800여명, 원고지 3만1200매라는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토지'는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긴 호흡을 자랑하는 장편 소설로도 꼽힌다.

박 작가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채 집필에만 몰두했으며 1부를 쓰던 중 암 선고를 받고 수술하는 등 고통을 겪었다.

'토지'는 동학농민혁명에서 광복까지 파란 많던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한반도와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삼아 펼쳐지는 대하소설이다. 이 작품은 민족의 방대한 역사 기록을 담으며 한국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치수는 월간중앙 신년호를 통해 박경리 작가에 대해 "한 작가가 40대에 쓰기 시작해 60대 후반에 완성을 보게 된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 '필생의 역작'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작품"이라며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5부 16권의 대작을 완성한 작가의 집념은 우리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표현이고 무엇보다도 집필기간이나 작품의 길이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인물유형의 창조와 새로운 긴장의 유지는 우리 소설의 문학적 승리로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평했다.

박 작가는 2003년 '토지' 이후의 이야기인 해방 이후를 배경으로 한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이는 미완으로 남았다. 2007년 폐암이 발견됐지만 그는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했다. 2008년 뇌졸중 증세까지 찾아와 같은해 5월5일 타계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찾아가 분향하며 금관문화훈장을 직접 추서했다. 뒤이어 전직 대통령과 사회 각 분야의 망명가들이 분향하는 등 국민적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박 작가의 사후인 2011년에는 한국 최초의 세계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이 제정됐다. 1회 수상자인 소설 '광장'의 최인훈 작가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유명 작가들이 연이어 수상했다.

김가현 기자 rkdkgudj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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