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200년]② 공룡 발자국만 1000개, 공룡 연구 메카 해남을 가다

해남=송복규 기자 2024. 5. 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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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박사’ 박진영 서울대 선임연구원과 동행
공룡·익룡·새 발자국 동일 지층서 첫 발견
8500만 년 전 호수가 공룡 연구 메카로
“고생물학, 인류의 인식 전환 만들어”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해남공룡박물관에서 촬영한 티라노사우르스 레플리카(복제본)./송복규 기자
박진영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지에 있는 대형 초식공룡 모형 앞에서 공룡 연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해남(전남)=송복규 기자

지난 4월 30일 오전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자연사유적지에는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대륙이 모두 붙어 있던 8500만 년 전에는 이 지역이 호수였다. 유적지 앞 바닷물도 그 당시 호수처럼 잔잔했다. 해남 우항리는 명실상부 공룡 연구의 메카다. 이곳에서 공룡 발자국이 1000개 넘게 발견됐다. 해남공룡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우항리 유적지는 세계 최초로 땅에 살던 공룡과 하늘을 날았던 익룡, 공룡의 후예인 새의 발자국 화석까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곳이다. 특히 공룡 연구 200년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하늘을 날던 익룡의 앞발과 뒷발 자국이 동시에 발견됐다. 이 발자국은 익룡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 해남 지명이 들어간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Haenamichnus Uhangriensis)’라는 학명이 붙었다.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지에서 촬영한 익룡 발자국 화석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Haenamichnus Uhangriensis)’. 익룡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온전한 화석으로 인정받아 학명에 해남 지명이 들어갔다./해남(전남)=송복규 기자

박 선임연구원은 국내 최초로 공룡 뼈를 주제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자타 공인 ‘공룡 박사’다. 이날 기자와 같이 우항리를 찾은 박진영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해남 우항리 앞바다에 널린 게 공룡 발자국이지만, 그것만으로 공룡의 모습을 알 수는 없다”며 “현재 동물과 화석을 끊임없이 비교해야 비로소 공룡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이날 해남 화석산지의 공룡 발자국을 둘러보면서도, 주변 바다를 날아다니는 왜가리와 도요새도 유심히 바라봤다. 공룡이 새의 조상인 만큼, 새의 모습이 이곳에 살았던 공룡의 모습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해남 우항리의 공룡 연구는 1995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우항리 일대 셰일 지층에서 석유를 찾기 위한 지질조사가 진행됐다. 퇴적암인 셰일 지층이 쌓일 때 같이 묻힌 동물들이 오랜 시간 열과 압력을 받아 석유나 천연가스가 될 수 있다. 지질조사 과정에서 공룡 발자국이 대거 발견됐다. 공룡 발자국 화석은 발자국이 찍힌 진흙이 햇빛을 받고 빠르게 굳은 다음, 다른 퇴적물이 다시 빠르게 쌓여야만 남을 정도로 생성 조건이 까다롭다.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작은 마을이 전 세계 고생물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이유다.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지에서 촬영한 '물칼퀴 새' 발자국 화석. 공룡과 익룡, 새의 발자국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된 건 해남이 세계 최초다./해남(전남)=송복규 기자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공룡 화석 관람 코스에서 가장 먼저 본 건 물갈퀴 새의 발자국이었다. 이곳에선 두 종류의 새 발자국이 발견됐다. 지역명을 따 각각 ‘우항리크누스 전아이(Uhangrichnus Chuni)’와 ‘황산이페스 조아이(Hwangsanipes choughi)’라는 학명이 붙었다. 우항리크누스는 오늘날 오리와 비슷하고, 황산이페스는 그보다 조금 크고 엄지발가락 자국이 분명한 특징을 갖고 있다.

새들이 걸었던 땅을 지나면 조각류(鳥脚類) 공룡관과 익룡 조류관, 대형 공룡관이 차례로 나온다. 해남은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던 중생대 백악기에 육식공룡과 초식공룡, 익룡 모두가 목을 축이던 호수였다. 삼지창 모양의 발자국을 남긴 조각류 공룡은 두 발로 걸었던 초식 공룡이다. 다리가 새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다리뿐 아니라 입 모양도 새의 부리와 닮아 ‘오리주둥이 공룡’이라고도 불린다.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지에서 촬영한 조각류 공룡 발자국 화석(아래). 파란색과 하얀색, 노란색으로 표시된 발자국 모두 조각류 공룡의 발자국이다. 위 사진은 발자국을 토대로 복원한 조각류 공룡 발./해남(전남)=송복규 기자

뼈 화석도 아니고 발자국뿐이지만, 고생물학자에게는 과거 공룡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박 선임연구원은 “발자국 화석은 주로 모래가 굳어져 만들어진 사암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 주변이 모래가 있는 호수였다는 걸 유추해 볼 수 있다”며 “초식공룡은 건초를 먹는 건기에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육식공룡은 고기 속 염분으로 생기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각류 공룡 뒤에 나타난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는 익룡 앞발과 뒷발 자국이다. 익룡은 2억2800만~6600만년 전 중생대에 하늘을 날았던 파충류로, 육지의 공룡이나 물에서 살았던 수장룡, 어룡과 구분된다. 하늘을 날던 익룡도 땅에서는 걸어 다녔다. 해남 발자국은 익룡이 땅에서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걸었음을 보여준다. 앞발은 발가락 세 개 사이에 물갈퀴가 달린 모습이다. 다섯 번째 발가락은 퇴화했고, 네 번째 발가락은 날개로 발달했다. 뒷발은 마치 사람 발자국처럼 보였다. 큰 익룡이 날개를 폈을 때 길이는 10~12m에 달한다.

박 선임연구원은 “발자국 크기와 보폭, 보행렬을 통해 공룡의 성장 상태나 진화 형태를 알 수 있고, 집단생활 같은 사회적 행동이나 이동 속도까지 다양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며 “신체 각 부분의 기능을 밝힌 뒤에는 3D(입체) 스캐닝을 통해 실제 모습을 재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룡 연구가 계속 이어지면서 과거에 잘못 알려졌던 공룡의 모습이 많이 고쳐졌다”고 덧붙였다. 익룡이 땅에서 네 발로 이동했다고 수정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지에서 본 공룡 발자국. 발자국 형태가 일정하지 않아 공룡이 헤엄치면서 남긴 발자국인 것으로 추정된다./해남(전남)=송복규 기자

그렇다면 왜 공룡을 연구해야 할까. 박 선임연구원은 고생물학의 의미를 ‘인식의 전환’에서 찾았다. 고생물학은 현생 동물의 조상을 찾고 지금까지 진화 과정을 파악한다. 그렇다고 늘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다. 고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 지구를 지배한 동물들이 소행성 충돌로 일시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인류의 미래와도 연결된다.

박 선임연구원은 “고생물학은 지금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을 찾는 흥미 위주의 연구에 그칠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과학의 미래도 바꾼다”며 “대표적으로 소행성 탐사는 공룡의 멸종이 소행성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소행성에 위성을 충돌시켜 궤도를 바꾸는 실험을 한 것은 미래에 닥칠 소행성 충돌을 막아 인류를 구할 방법을 찾는 노력이라고 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과거 인류가 몰랐던 사건을 찾으면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고생물학의 과학적 의미는 크지만, 국내외 학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전 세계를 통틀어 공룡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는 100명 정도이고, 그나마 연구비가 넉넉한 공룡 연구자는 소수이다. 박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해남 같은 공룡 연구의 메카를 두고도, 국립자연사박물관조차 없어 고생물학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만한 곳이 없는 상황”이라며 “고생물학 연구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투잡(겸업)’ 연구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꿈을 갖고 박사학위를 받아도 넉넉하지 않은 연구환경에 공룡 연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고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 계속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모르던 지구의 모습을 밝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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