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복과 복제 사이 관계를 묻다”…수원시립미술관 ‘세컨드 임팩트’展 [전시리뷰]

이나경 기자 2024. 5. 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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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작가의 창작물인 사진 작품 ‘서북공심돈’(2019)과 그 앞에 서북공심돈의 실제 모습이 담긴 자료사진이 놓여있다. 이나경기자

 

모든 원복은 복제본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갖는가. 모든 복제본은 원본에 비해 열등한가. 무엇을 원본이라 하고, 무엇을 복제본이라 할 수 있나. 지난 16일부터 경기도 수원시립미술관 4전시실에서 시작한 2024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 상설전 ‘세컨드 임팩트’ 전시회는 관람객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원본과 복제의 관계를 조명한다.

과거 사진기의 등장은 수많은 예술가를 혼란으로 빠뜨렸다. 눈 앞의 실재하는 존재를 100% 똑같이 구현해낸 사진은 예술가들이 그린 회화에 대한 전면 도전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관점과 의도가 들어간 창작물로서 예술작품은 다시 그 가치를 인정 받았고, 사진 역시 수많은 논란을 거쳐 현재의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다.

기술의 발전은 또다시 세상에 질문을 던졌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구현해내는, 심지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원본의 훼손되고 낡은 모습까지 그대로 출력해내는 3D프린터와 생성형 AI로 제작된 예술작품에 제기된 숱한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 시대에 복잡한 합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활용한 이이남 작가의 영상작품 ‘인왕제색도-사계’(2009) 중 일부.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이이남의 ‘인왕제색도-사계’(2009) 작품은 유명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활용한 2차적 저작물로 원작품에 작가만의 관점이 담긴 연출과 해석을 가미해 2차적 저작물이 가져야 할 ‘창조성’을 보여준다. 비가 오고, 짙은 푸른 녹음에서 노랗고 붉은 단풍이 들며 불 떼는 아궁이로 눈발이 날리는 사계절을 표현한 4분짜리 영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어 관람객은 230cm의 거대한 인형탈과 마주하게 된다. 인형탈은 비닐형태로 제작된 에어슈트로 푸근한 풍채를 자랑한다. 시립미술관은 특정 이벤트 시간 때 관람객이 직접 에어슈트를 착용할 수 있게 했다. 에어슈트를 입어본 관람객은 바로 앞에 자리한 거울을 통해 직접 손을 흔들며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등 자신을 관찰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인형탈(에어수트)과 인형탈의 모티브가 된 홍순모 작가의 조각작품 ‘나의 죄악을 씻으시며’(1990, 좌측 상단)가 대각선 형태로 나란히 배치돼 있다. 이나경기자

인형탈은 바로 홍순모 작가의 높이 61cm의 조각작품 ‘나의 죄악을 씻으시며’(1990)라는 원본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사람 몸보다 거대한 인형탈을 한참 구경하고 뒤를 돌면 그 뒤에 까맣고, 작고, 단단한 원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겉옷을 걸친 어두운 표정의 작품은 삶에 지친 가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원작은 힘겨운 삶을 지나온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시꺼먼 석탄이 마치 인간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원작은 사람이 돌이 된 건지 돌이 사람이 된 건지 의심케 한다. 인간을 주제로, 인체를 소재로 삼는 홍 작가는 1950~60년대 목포에서 마주한 삶의 형상을 작품에 담아냈다.

점토분말과 모래 등으로 만들어진 홍순모 작가의 조각작품 ‘나의 죄악을 씻으시며’(1990)의 모습. 이나경기자

전시를 기획한 수원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일반적인 전시에서 관람객의 작품별 관람 시간이 평균 15~30초 사이로 조사됐다는 2014년 뉴욕타임스 보도에 기반해, 보다 오래도록 작품에 깊은 시선을 가지길 바랐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2차 창작물을 보고 그 후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1차 원작물을 볼 때 그 충격은 2배로 다가와 비로소 ‘세컨드 임팩트(두번째 충격)’가 전해진다.

이어 김경태의 사진 작품 ‘서북공심돈’(2019)에는 작가의 작품과 같은 피사체를 촬영한 자료 사진이 나란히 놓여있다. 서북공심돈은 수원 화성에 있는 조선 후기 치성 위에 공심돈을 설치한 망루로 여러 시간 동안 복원을 거쳤다. 작가는 서북공심돈을 여러 시간대,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이를 조각조각 구성해 하나의 평면 화면에 구성했다. 모든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합성한 사진이기에 현실의 사진과 다른 비현실성을 갖는다.

바로 그 작품 앞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관람객은 서북공심돈의 다양한 사진을 직접 확대하고 축소해보며 어느 부분을 촬영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전시는 관람객에게 어떠한 지점에서 사진이 ‘예술’과 ‘자료’로 구분되는지 질문한다.

유의정 작가의 도자기, 금, 동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 작품 ‘액체시대’(2014, 좌측)과 이를 바탕으로 한 3D 출력물(가운데), 출력 과정이 담긴 영상 데이터(우측)의 모습. 이나경기자

4전시실의 마지막 파트 주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의 배’이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 사람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박아 넣으며 계속해서 보존했다. 시간이 흐르고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한 조각도 남지 않을 때 과연 그 존재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시실에는 유의정 작가의 도자기로 만든 ‘액체시대’(2014) 작품과 크기 및 형태가 같은 3D 출력물, 그 출력 과정을 담은 영상 데이터 총 3가지가 삼각형의 구도로 전시돼 있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원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의 변형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때 태초의 원본을 그 모습 그대로 출력해낼 수 있는 데이터(기능적 저작물)-지금 시점의 원본의 모습을 그대로 복사한 3D 출력물(복제물)-태초의 원작품 사이의 삼각관계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수원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원본과 복제 간의 가치 관계 및 경계와 원본에 대한 정의 등의 질문은 메타버스와 가상화폐에 대한 논의로도 확장될 수 있다”며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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