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의 수’만 8가지...더 꼬여버린 글로벌 경제, 최대 변수는 중동사태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5. 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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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은 날씨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를 예측하고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갖고 나가고 비가 안 오면 그냥 나가면 된다. 경우의 수가 2개인 비교적 단순한 시나리오다. 여기에 태풍까지 불 것 같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비와 태풍까지 감안하면 시나리오는 4개로 늘어난다. 비가 오고 태풍이 불 때는 우산과 함께 두둑한 겉옷도 입어야 한다. 비가 오고 태풍이 안 오는 경우, 비가 안 오고 태풍이 오는 경우, 비도 안 오고 태풍도 안 오는 경우 등 이렇게 총 4가지 시나리오에 대해 각각의 준비를 해야 한다.

신경 써야 할 경우의 수가 늘어날수록 준비할 것도 늘어난다. 한 가지 원칙은 있다.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수록 보수적으로 생각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비가 오고 태풍이 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일단 우산과 겉옷을 준비하는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차이점은 있다. 날씨는 사람의 행동과 무관한 자연법칙에 의해 발생하지만 인간사의 결과는 우리의 행동이 하나의 원인이 돼서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미국 금리 향배에 중동전 위기 더해 8개 시나리오 대비해야 ... 불확실성 4배 커져
올 들어 세계경제의 가장 큰 불확실성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였다. 많은 투자자들이 미국 금리인하 여부와 그 시기를 예측하기에 바빴다. 미국의 결정에 세계 많은 나라들이 의존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기준금리를 내릴 것 같다는 뉴스가 나오면 세계 각국의 주가는 오르고 채권금리는 떨어졌다. 반면 미국이 금리를 내릴 것 같지 않은 징후가 포착되면 금융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미국의 속내도 모르면서, 각국 정부와 경제전문가들도 다양한 예측을 하며 준비를 했다.

그런데 4월 들어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면서 중동전쟁이라는 메가톤급 충격이 발생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를 공격하면서 위기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몰렸던 중동사태는 미국 등 세계 각국의 개입으로 잠재적 불씨를 안은 채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중동전쟁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세계경제 앞에는 미국 금리와 중동전쟁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불확실성이 놓여있다.

앞으로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될까. 단순히 경우의 수만 계산해도 4가지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지 않고 중동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경우, 미국 금리 동결과 중동전 발발이 그 다음이다. 미국이 금리를 내릴 경우에도 2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사건이 벌어지는 순서까지 감안하면 경우의 수는 8개로 늘어난다. 미국이 먼저 금리를 내린 후 중동전이 발발하지 않는 경우와 중동전이 발발하지 않고 미국이 금리를 내리는 것은 다른 경우이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 ‘인하’와 ‘동결’이라는 2가지의 시나리오만 생각했던 시장은 이제 8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종전보다 4배 이상 커졌다. 여기에 최근 미국 경제가 생각보다 안 좋고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많지는 않지만 ‘금리 인상’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 가능성까지 더해지면 경우의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중동전 터질 땐 유가 급등하고 경제 요동 불가피 ... 미국 금리인하 더 어려워져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사고를 하는 것은 경제의 기본이다. 먼저 순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 긴장이 팽배한 상태에서 미국이 먼저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동지역 분쟁이 격화돼 이란이 전 세계 원유수송량의 20%가 이동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국제유가 급등과 이로 인한 충격이 전 세계로 번진다. 1970년대 중동지역 분쟁으로 촉발된 석유 파동 때 유가상승으로 물가는 급등하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한 바 있다. 금리를 낮춘 후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한다면 파급 효과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이 이란의 이스라엘 침공 이후인 4월17일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로 복귀하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국제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미국 금리가 선제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차단한다면 이제 시나리오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여기에 사건 간에 벌어질 인과관계까지 감안하면 시나리오를 더 줄일 수 있다.

만약 중동전쟁이 발발한다면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세계경제 침체가 심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 미국은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내릴 경우 경기 진작의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만 가중시킨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오히려 금리를 더 올리거나 최소한 현재의 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경기 침체의 문제는 재정 지출을 늘려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설사 기준금리가 그대로라도 시장금리가 오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란의 이스라엘 침공 이후 10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유가도 비슷한 흐름이다. 실물시장과 금융시장 모두가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다.

중동서 촉발된 긴장은 당분간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 전망을 무력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듯
중동사태가 진정된다면 이란-이스라엘 전쟁 발발 전으로 되돌아간다. 이 때 비로소 미국 연준은 경제적 상황을 염두에 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대비 3.5%, 실업률은 3.8%다. 소비자물가는 여전히 목표치보다 높고 실업률은 완전고용 때의 실업률(4%)보다 낮다. 이후 발표된 경제지표들도 경기 호황을 예고하고 있다. 3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0.7% 늘어 시장 예상치(0.4%)를 훌쩍 뛰어넘었다.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도 전년 동기보다 2.7%올라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에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2.7%로 수정 전망했다. 올해 1월 전망치 2.1%보다 0.6%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며 2023년 성장률(2.5%)도 능가한다. 하지만 1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연율 기준으로 1.6%의 증가율을 기록해 시장 예상치(2.5%)를 크게 밑돌았다. 미국 경제 자체에 대한 전망도 오락가락하는 현실이다. 이럴 땐 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리거나 내리기 어렵다. 중동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기준금리 인하를 위해서는 경제지표를 조금 더 확인해야 할 때다.

또 중동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문제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상징하는 국가들이다. 이들 간의 갈등이 표면으로 분출한 만큼 이 상황이 진정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이란의 이스라엘 침공과 이로 인한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은 미국 연준이 금리를 내리는 시점을 계속 연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란이 이스라엘이 각각의 본토를 공격한 이상 또 다른 보복 가능성은 언제든지 남아있다.

중동의 문제는 수천 년간 인간 사회의 갈등과 원한이 쌓여서 촉발된 문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속적인 논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적인 영역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개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글로벌 경제의 어려움이 커진다고 해서 벌어질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골이 깊다. 당분간 중동지역의 문제가 세계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은 중동발 뉴스에 큰 폭으로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기에 각종 경제논리로 주판알을 튕겨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게 어쩌면 무의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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