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채용비리…교수들 “이런 집단이 ‘민주주의 꽃’ 선거를 관리?” [전문]

김동영 2024. 5. 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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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14조 1~2항.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채용 비리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조직적 증거 인멸 정황까지 포착된 가운데, 전국 6000여명의 대학교수들이 참여하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모임’(정교모)이 “이런 집단이 민주주의 꽃인 선거관리를 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3일 정교모는 성명서를 내고 전세계적으로 드물게 헌법기관으로 존재하는 선관위의 위원장을 현직 대법관이 겸하는 비정상적인 행태를 꼬집었다.

정교모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선거관리를 전국적 행정관리체제를 갖춘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도록 하고, 정치자금의 모집과 사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관을 별도로 두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교모는 기본적으로 행정업무에 속하는 선거관리사무 등 선관위 업무 일체를 감사대상에 명문화시키는 입법조치와 함께 복수의 상임위원을 두고 상임위원이 위원장을 하도록 함으로써 선관위 사무총장과 그 휘하 직원들의 세습 카르텔로 변한 선관위의 개혁을 촉구했다.

다음은 정교모의 성명서 전문.

선거관리위원회, 더 이상 대한민국 암 종양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감사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10년간 총 291차례의 채용 절차를 밟는 과정에 1200여건의 규정 위반과 비리가 있었다고 한다. 전·현직 자녀는 물론 예비 사위까지 채용의 특혜를 누렸고, ‘세자’로 불렸던 전 사무총장의 아들, 채용공고가 있기도 전에 선관위 근무를 기정사실로 주변에 말하고 다닌 또 다른 사무총장의 딸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비리의 수단으로 면접점수 조작, 자격기준 변경이 다반사로 있었다. 이에 비하면 허위병가를 위한 셀프결재, 제멋대로 연수휴직은 애교 수준이다.
 
이런 선관위가 막상 감사를 받게 되자 헌법기관이라는 명분으로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내고, 감사현장에서 조직적으로 감사를 방해ㆍ지연시키고,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획책하였다. 헌법기관이 아니라 국가기관의 탈을 쓴 도적의 무리가 아닌가.
 
백 번을 없애도 성에 안 찰 이런 집단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꽃인 선거관리를 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들의 비윤리성, 비전문성, 부패,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된 것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친일청산’ ‘적폐청산’ 표현의 사용은 허용하고, ‘거짓말 아웃’과 ‘민생파탄’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 후보를 연상시킨다고 불허한 것이 선관위였다. 2021년 박원순 전 시장의 자살로 인해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이 선거 왜 하죠?’라는 표현이 특정 정당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역시 선관위가 불허하였다. 그러나 2022년 대선에서는 ‘술과 주술에 빠졌다’는 표현은 중앙선관위가 허용하였다.
 
이런 선관위가 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에 있어서 각 항목의 문구와 내용 하나 하나 간섭하면서 여론조사기관들의 목줄을 쥐고 있어, 사실상 국내 정치 여론을 좌우하고 있기도 하다. 보란 듯이 비리와 부패를 자행하고서, 국가의 공적 감시도 받지 않겠다는 뻔뻔함의 뒤에는 이렇게 괴물처럼 커진 힘이 있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견제 받지 않는 기관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선관위는 국민의 주권 행사를 공명하고 무결하게 관리하는 기관 본연의 직무 범위를 넘어서 헌법기관이라는 ‘기관 위상’을 내세워 스스로 부패하고, 헌법을 유린하며, 국가기강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선관위는 해체 수준으로 손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선거관리위원회를 헌법에 두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외에 필리핀, 인도, 엘살바도르 정도이다. OECD 국가 중에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선거관리를 전국적 행정관리체제를 갖춘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도록 하고, 정치자금의 모집과 사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관을 별도로 두고 있을 뿐이다. 이에 더하여 관례를 이유로 선거관리 위원장을 대법관, 지방법원장을 두는 것은 헌법 114조 2항에 위배된다. 행정기능과 사법기능이 하나가 됨으로써 선거재판에서의 공정성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삼권분립이 토대인 근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61년 3·15 부정 선거의 트라우마로 우리는 헌법으로 선거관리기구를 두게 되었지만, 지난 선관위의 행태를 통해 오히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악성 종양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이번 감사원 감사결과를 통해 암적 존재임이 최종 확인된 것이다.
 
선관위의 존폐는 개헌 사항이지만, 그 전이라도 더 이상 헌법기관이라는 탈을 쓰고 대한민국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첫째, 감사원법 제24조 감찰대상에 선거관리위원회를 추가하여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에 감사의 대상 및 범위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종식시켜라. 그리하여 선거업무를 포함 전반적인 선관위 업무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둘째, 상임위원을 복수로 두어 상호 견제가 가능토록 하고, 위원장은 헌법 정신으로 돌아가 상임위원 중 한 명이 맡도록 하라. 그리하여 현재처럼 대법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토록 하는 허수아비 위원장 관행을 종식시키고, 사무총장과 그 이하 직원들을 제어토록 해야 한다.
 
셋째, 민관 합동 TF를 구성하여 지금까지의 부정 채용 사례를 전수 조사하라. 그리하여 부정하게 채용된 자들에 대하여는 신속하게 면직 내지 해임 절차를 밟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조치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선관위 문제 해결이 정치권이 대한민국을 위해 해야 할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동영 온라인 뉴스 기자 kdy031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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