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울산의 봄...강과 바다의 노래

2024. 5. 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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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다시 만난 울산은 푸르고 또 푸르렀다. 그리고 새로웠다. 도시의 상징이었던 태화강과 장생포는 ‘핫플’로 변모했다. 서울을 출발한 지 약 2시간 20분. 울산(통도사)역까지 오는 여정은 빠르고 쾌적했다.1962년 한국의 첫 번째 공업지구, 거대한 산업 도시로 각인되었던 울산을 여행지로 먼저 생각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최근의 울산은 완벽히 달라진 도시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
PM 2:00 태화강국가정원
기억 속의 태화강은 급격한 도시화로 질식 일보 직전의 불모지였다. 가지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흐르는 47.5km의 태화강은 울산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도시의 역사와 운명을 함께 한 물줄기다. 울산의 비약적인 성장 뒤에 아낌없이 모든 걸 내준 강의 운명은 그러나 비극으로 향했다. 오폐수 방류로 강은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없을 만큼 오염된 것.
봄꽃 축제가 한창인 태화강 국가정원
생명이 떠난 강을 살리기 위한 각성의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하천 살리기’를 목표로 시민과 기업이 태화강의 수질 정화운동을 펼쳤고, 힘을 모은 지 10여 년 만에 마침내 수질 1등급 기준을 충족시켰다. 물이 맑아지면서 식물이 되살아나고 물고기와 철새가 되돌아 왔다. 기적과 같은 자연의 회복이었다. 2019년 산림청은 그 가치를 평가해 태화강을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했다.
야경 명소가 된 십리대숲 은하수길
태화강국가정원은 지금 튤립과 수선화, 양귀비와 샤스타데이지 등 봄꽃축제를 화려하게 장식할 꽃밭 가꾸기가 한창이다. 언제 가든 태화강국가정원에서 빼놓으면 안 될 곳이 있다. 바로 태화강국가정원의 시그니처 격인 십리대숲이다. 국가정원 서쪽 오산부터 용금소까지 약 10리 구간 펼쳐진 국내 최대 규모의 대나무 군락지로, 왕대를 비롯, 맹종죽, 오죽, 구갑죽 등 다양한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있어왔던 대나무 숲이란 얘기도 있고, 오래 전부터 홍수를 대비해 주민들이 조성했다는 얘기도 있다.
십리대숲 맨발 걷기 황톳길
70만 그루 이상의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에서는 음이온이 쏟아지고, 한여름엔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최고의 산책로로 꼽힌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 십리대숲은 죽순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이맘때 새로 돋아나는 죽순이 장관을 이루는데 그것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어둠이 내린 후 십리대숲은 특별한 풍경이 더해진다.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조명으로 물드는 ‘십리대숲 은하수길’은 야경 명소이자 인증샷 성지로 바뀐다.
PM 5:00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태화강은 굽이져 흘러 장생포항으로 유입된다. 장생포에 닿고서야 울산이 바다와 접한 도시라는 새삼 깨닫게 된다. 파란 바다를 품은 장생포는 울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장생포는 ‘고래의 고향’이라 불린다. 예부터 장생포 연안은 귀신고래가 많이 서식하는 바다로 알려졌다. 또 밍크고래, 참고래 등 다양한 고래 어종이 서식하면서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고래잡이의 중심이었던 장생포
다만 한국인에게는 고래를 먹는 풍습이 없어 스스로 고래잡이에 나선 경우가 없었고 미국과 러시아, 이후 일본에 의해 고래잡이가 이루어져 왔다. 특히 1905년 러일전쟁 이후 포경허가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장생포의 고래잡이는 활황을 맞는다.
그렇게 장생포가 고래잡이의 중심항이 되고, 해방과 함께 한반도의 고래잡이가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면서 1970년대 말에는 장생포에만 포경선 20여 척, 인구가 1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지나친 포획으로 개체수가 감소하고 일부가 멸종 위기를 맞으면서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포경금지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장생포의 고래잡이는 중단되었고 풍요롭던 고래 마을은 급격히 쇠락했다.
장생포고래문화마을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는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이 있고, 포경산업이 절정에 달했던 1960~70년대의 장생포 마을을 복원한 고래문화마을과 고래조각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고래마을 안에는 몰입형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관인 웨일즈 판타지움이 있고, 장생포만의 옛 냉동창고를 리뉴얼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장생포문화창고도 여행 명소로 꼽힌다.
웨일즈 판타지움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는 크게 고래마을, 고래박물관과 생태체험관, 장생포문화창고 이렇게 세 구역으로 나눠 관람하면 되는데, 고래박물관이 있는 고래문화광장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고래문화마을에서 내려 옛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와 장생포문화창고까지 다녀오는 것이 대표 탐방 코스다.
장생포 고래마을은 모노레일로 돌아보기 좋다.
Tip 바다와 고래를 동경하는 여행자의 마음을 유혹하는 ‘고래바다여행선’ 상품도 있다. 고래의 이동 동선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바다를 누비는 매력적인 관광 상품으로 실제 돌고래 떼를 만날 수도 있다. 연안 투어와 고래탐사투어, 두 가지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PM 8:00 명선도
울산에서 밤을 맞는다. 과거 울산을 대표하는 야경으로는 울산석유화학단지와 온산국가산업단지가 꼽혔다. 거대한 공장 지대, 압도적 스케일의 설비들이 위압감을 주지만 환하게 불을 밝힌 밤의 풍경은 야경 투어가 생길 만큼 멋지다. 그런데 최근 울산의 야경을 대표하는 명소가 새롭게 등장했다. 울산의 남쪽 진하해수욕장 앞 작은 섬 ‘명선도’다. 섬이라고 하기에 지나치게 작은 무인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명선도의 미디어아트
울산의 대표적 야경 명소인 데다 간절곶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이니 울산의 아침을 맞기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진하해변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명선도로 향한다.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는 명선도까지 절반은 돌길, 절반은 부교다. 명선도는 둘레 330m의 작은 섬으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LED 경관조명과 증강현실을 활용해 섬 전체를 흥미로운 미디어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명선도
명선도란 이름은 원래 매미들이 많이 우는 섬이라 해서 ‘울 명(鳴)’ ‘매미 선(蟬)’을 썼는데 요즘은 ‘신선이 내려와 놀았던 섬’이라 해서 ‘명선도(名仙島)’로 바뀌었다. 밤이 되고 조명이 켜진 섬을 한 바퀴 돌아보면 신선이 내려와 놀았음직할 만큼 환상적이다. 명선도에서 바라보는 명선교의 야경도 멋지다.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이보다 좋은 풍경이 있을까.
AM 05:50 간절곶
울산에 왔으니 간절곶의 일출 정도는 봐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새벽 간절곶으로 향한다. 새벽하늘 별이 지고 바다 위 어둠이 걷히면 옅게 깔린 해무를 헤치고 서서히 빛이 들어선다. 눈썹처럼 가는, 이어 손톱만 한 붉은 기운이 번지더니 한순간 빨갛고 뜨거운 해를 수평선 위로 밀어 올렸다. “아~” 탄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그래진 해는 희망찬 아침을 열어 놓는다. 새 빛으로 물든 바다 위에 온갖 마음의 찌꺼기와 세상사 시름을 풀어놓고 기꺼이 작별하는 그런 아침이다.
간절곶
무리를 지어 바닷가에 선 사람들의 환호가 잠시 간절곶 허공위로 메아리친다. 해가 뜨면 얼마 가지 않아 간절곶에는 고요한 아침이 찾아온다. 단 몇 초의 환호와 감동 후 사람들이 떠난 간절곶은 그야말로 평화롭다. 일출을 감상한 후 시간 여유가 좀 있다면 간절곶 옆에 숨은 작은 바다 나사해변까지 산책하면 좋다. 작은 방파제와 앙증맞은 등대, 하얀 백사장에 인상적인 이곳에서는 이른 아침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사리해변에서는 물질하는 해녀를 만날 수 있다.
AM 10:00 슬도 그리고 대왕암공원
울산에서 지금 가장 핫하게 뜨고 있는 곳이 슬도다. 슬도는 방어진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이다.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해 거문고 슬(瑟)자를 써서 슬도(瑟島)라 부른다. 원래는 무인도였는데 성끝마을에서 슬도까지 연결되는 방파제가 있어 언제든 통행이 가능하다. 방파제 끝에는 1958년부터 슬도를 지키고 있는 슬도등대가 있는데 수려한 외관으로 최고의 포토존이 되었다.
슬도아트는 지자체에서 만든 문화예술 공간이다. 슬도등대가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슬도아트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진행하면서 슬도와 성끝마을, 방어진항 등 인근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하고 있다. 전시 공간에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한 후 전망대로 올라가 바라보는 주변 풍경도 제법 멋지다. 슬도에서 해파랑길 8코스를 따라 가면 대왕암공원까지 이어진다. 대왕암은 경주 봉길리 앞바다의 수중릉인 신라 문무대왕릉과 관련이 있는 바위다.
슬도
경주의 대왕암이 문무대왕이 누운 곳이라면 울산의 대왕암은 문무대왕의 아내가 누운 곳이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신라시대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은 후 문무대왕을 따라 호국룡이 되어 울산 동해의 대왕암 밑으로 잠겼다는 신비한 전설이다.
대왕암까지 가기 위해서는 100년 전 방풍림으로 조성된 1만5,000그루의 소나무숲을 지나야 한다. 소나무숲을 지나면 일순 시야가 트이고 창창한 바다가 펼쳐진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왕암공원의 북쪽, 일산해수욕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맞은편 절벽으로부터 흘러내린 출렁다리가 비현실적으로 아슬아슬한 자태를 드러낸다. 지난 2021년 7월에 개장한 이 다리는 최대 높이 42m, 길이가 303m에 달한다.
울산대왕암과 출렁다리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바다와 해안 절벽이 빚어낸 엄청난 비경이 연이어 나타나고, 비탈을 몇 번 오르고 내리자 바다에서 솟구친 듯한 돌 무리 대왕암이 기괴한 형상을 드러낸다.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라의 왕비가 저 돌덩이 아래 묻혔다는 전설은 바위 무덤의 신비로운 형상과 분위기로 인해 명백한 사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AM 15:00 주전몽돌해변
대왕암공원을 떠나 동해안 바닷길을 타고 오른다. 1박2일의 길지 않은 여정을 서서히 마무리할 시간이다. 울산을 떠나기 전 망망한 바다를 한 번 제대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왕암공원에서 한 시간 정도 올라가면 주전몽돌 해변이 나온다. ‘울산12경’에 들 만큼 멋진 바다 풍경을 지닌 곳이다.‘주전’이란 땅이 붉다는 뜻, 아닌 게 아니라 땅 색깔이 온통 붉고 해변가는 온통 몽돌로 뒤덮여 있다.
주전몽돌해변
무려 1.5km의 해안을 직경 3~6cm 정도 되는 까맣고 동글동글한 몽돌이 덮인 풍경은 이색적이다. 가까이 갈 수록 파도에 밀리는 몽돌의 소리가 귓가에 부딪힌다.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맑고 경쾌한 몽돌의 소리는 울산 동구의 ‘소리 9경’에 꼽힐 만큼 신비하다.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 보며 달그락거리는 몽돌의 부딪힘을 듣고 있노라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울산 여행의 말미, 문득 ‘바다멍’에 한참 빠져 봤으면 하는 생각이 스친다.
[글과 사진 이상호 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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