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병뚜껑 열면 생기는 꼬리 부분…근데 그게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5. 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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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15] 소주 병뚜껑에 달린 황비홍 머리 같은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소위 ‘병뚜껑 치기’라고 부르는 술자리 게임. 스타크래프트 수준은 아니지만 소주의 탄생과 궤를 같이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보편성을 고려하면 민속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출처=하이트진로]
명사. 1. 스커트, 링 2. 개봉 확인 밴드(tamper-evident band) 3. 시큐리티 링, 위조 방지 링(pilfer proof ring), 브레이크 어웨이 밴드(break-away band)【예문】남자친구는 소주 뚜껑의 스커트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하트 모양으로 만들었다. 하지 마.

스커트(skirt)다. 국내 제조 현장에서는 간단히 링(ring)이라고 부른다. 엄연히 이름이 있지만 낯설다 보니 주류업체 홈페이지나 SNS 계정에서는 ‘병뚜껑 꼬리’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스크루 형태의 뚜껑을 비틀어 열면 뜯어지는 뚜껑의 밑부분을 말한다. 뚜껑의 스커트 상태를 살펴보면 개봉된 적이 없는 새 음료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어 개봉 확인 밴드(tamper-evident band)라고도 한다.

소주병 뚜껑처럼 알루미늄을 재료로 하는 병마개는 ROPP(Roll On Pilfer Proof) 캡이라고 한다. 스크루 캡이라고도 부르는 ROPP 캡은 녹에 의한 내용물 변질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별다른 도구 없이 손으로 개봉할 수 있다 보니 널리 사용된다. 페트병 뚜껑으로는 위조 방지 스커트가 달린 플라스틱 PP 캡이 주로 쓰인다.

ROPP 캡 제조 공정 중 일부. 뚜껑 형태로 성형한 셸(쉘)을 병 입구에 씌운 상태로 기계 안에 위치하면, 성형 휠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회전해 병 입구의 나사산을 따라 병을 밀봉하게 된다. [영상 출처=Universal Filling社 홈페이지]
소주처럼 개봉 시 끊어진 스커트가 꼬리처럼 뚜껑에 달린 형태는 스플릿 밴드, 콜라 등 페트병 음료수처럼 개봉 이후에도 온전한 스커트가 병목에 남아있는 형태를 드롭 밴드라고 한다. 스커트의 길이에 따라 숏 스커트, 롱 스커트로 나누기도 한다. 코르크 마개 대신 ROPP 캡을 쓰는 편의점 와인이 대표적인 롱 스커트 형태.

까드득-. 소주 뚜껑을 돌려 여는 익숙한 소리와 함께 내용물의 위·변조를 방지하는 스커트의 중요한 임무는 끝난다. 하지만 끝은 아니다. 소주병 뚜껑의 스커트를 꼬아준 뒤 돌아가며 손 끝으로 튕겨 스커트가 끊기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는 술자리 게임이 있기 때문. 마치 깐깐하고 빈틈없던 감사실 직원이 노래방에서 미친 분위기 메이커로 거듭나는 것처럼, 스커트는 의외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고 장렬히 산화한다.

대표적인 술자리 게임인 ‘병뚜껑 게임’. 적당히 꼬아둔 소주 뚜껑의 꼬리 부분을 돌아가며 손가락으로 쳐서 먼저 떨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걸리게 된다. [사진 출처=롯데주류]
2020년 하반기부터 일부 소주의 스커트는 두 갈래로 떨어지게 바뀌었다. 더 이상 황비홍의 변발이 아닌 말괄량이 삐삐의 양 갈래 머리가 된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스플릿 밴드’ 방식으로 제조된 소주 병뚜껑을 개봉하면 스커트 중간이 끊어져 뚜껑과 함께 제거되어야 하지만, 가끔 스커트가 끊어지지 않고 병목에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를 ‘잔류 링’이라고 한다. 하이트진로 측에 따르면 공병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잔류 링을 제거하기 위한 공정이 추가되기 때문에, 잔류 링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낮추기 위해 스커트가 갈라지는 부분을 2곳으로 늘렸다고 한다. 재활용 편의성을 위한 개선책인 셈.
예시로 든 두 작품이 너무나 올드하다. 왼쪽은 청나라 말기 무술가인 황비홍(黃飛鴻)을 주인공으로 한 서극 감독, 이연걸 주연의 영화 ‘황비홍 : 천하무인’(1991). 주인공의 변발이 인상적이다. 오른쪽은 잉거 닐슨이 열연한 스웨덴 TV드라마 ‘말괄량이 삐삐’(1969). [사진 출처=골든하베스트, 베타필름]
주당들이 호기롭게 꺼내놓는 음주 무용담 중에는 허무맹랑한 게 많다. 그중에는 ‘소주 뚜껑의 스커트를 다른 뚜껑에 걸어서 늘어트렸더니 천장에서 바닥까지 닿더라’라는 얘기도 있다. 병뚜껑이 곧 ‘음주의 영수증’이 된 셈이다. 국세청 입장에서도 술 병뚜껑은 중요한 영수증이다. 소주와 맥주 뚜껑을 잘 살펴보면 ‘납세필’ 글자가 인쇄돼 있는데, 이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병뚜껑을 통한 납세 증명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는 1만㎘ 이상 출고하는 막걸리(탁주)에도 증지 부착을 의무화했다. 덕분에 소주와 맥주 병뚜껑의 세법상 이름은 ‘납세병마개’ 되시겠다.
술 병뚜껑을 자세히 살피면 ‘납세필’ ‘국세’ 라고 적혀있는 납세 증지(證紙)가 보인다. 증지라는 단어는 특정 상황이 증명되거나 요금 등이 납부 되었음을 알리는 붙임종이를 뜻하지만, 이렇게 뚜껑에 증지를 인쇄하기도 한다. [사진 출처=KBS]
  • 다음 편 예고 : 배나 사과를 감싸고 있는 하얀색 그거

지난 연재물 A/S

도어스토퍼의 우리말 단어는 ‘노루발’이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노루발, 노루발 스토퍼, 말발굽 등의 단어 역시 도어스토퍼를 검색하기 위한 단어로 쓰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표준어는 아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관리하는 표준대국어사전에 등재된 노루발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1. 과녁에 박힌 화살을 뽑는 도구(=장족 獐足) 2. 한쪽은 뭉뚝하여 못을 박는 데 쓰고, 다른 한쪽은 넓적하고 둘로 갈라져 있어 못을 빼는 데 쓰는 연장(=노루발장도리) 3. 재봉틀에서 바늘이 오르내릴 때 바느질감을 눌러 주는 두 갈래로 갈라진 부속 4. 쟁기의 볏 뒷면에 붙어 있는 삼각형의 구멍이 있는 물건 5. 노루발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녹제초)

노루발이란 이름을 쓰는 물건들. 좌측부터 화살을 과녁에서 뽑을 때 쓰는 노루발(장족), 올드보이 생각이 절로 나는 노루발(노루발장도리), 녹제초, 그리고 재봉틀의 부속품인 노루발. [사진 출처=세계 약용식물 백과사전 외]
하지만 표준대국어사전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다. 국립국어원과 표준대국어사전의 표준어 갱신 속도가 매우 늦고, 대중의 언어 습관을 그때그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 짜장면을 자장면과 함께 표준어로 인정하는 데 무려 25년이 걸렸다 - 을 고려하면 ‘노루발은 아직 등재된 표준어가 아닐 뿐’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는 이미 자리 잡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일례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노루발의 뜻풀이에 ‘현관문 따위를 열린 채로 고정하는 데 쓰이는 물체’가 이미 등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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