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자랑 ⑬] 1800명 우도 주민의 유일한 마을신문, 달그리안의 오늘

윤유경 기자 2024. 5. 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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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자랑⑬-2] 제주 우도 소라축제 '달그리안' 부스에서 만난 주민들
작은 섬과 좁은 지역사회, 비판 목소리 내기 어려워…지속가능성 걱정도
"우도의 역사 만들어" 주민들이 응원하는 이유 "타지 가면 제일 먼저 자랑"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 지난달 26일 미디어오늘이 찾은 제주시 우도면 달그리안 사무실. 사진=윤유경 기자.

제주시 우도면에선 현재 '하우목동항 권역 어촌뉴딜300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낙후된 어촌을 지역 특성에 맞게 개발해 해양 관광 활성화를 추진하는 사업으로 우도도 대상지에 선정됐다. 2017년을 정점으로 이뤄진 급속한 관광 개발에 환경 파괴가 이어지던 중 해당 사업을 접한 달그리안은 기사를 통해 구체적 의견을 제안했다. 하지만 달그리안은 곧장 사업을 찬성하는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27일 우도 천진항 부근에서 열린 소라축제에서 만난 우도면 이장단협의회장 김경철(53세)씨는 해당 사업을 언급하며 개발에 반대하는 달그리안을 비판했다. 김씨는 “살고 있는 대다수 지역민이 하겠다고 하면 반박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우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1, 2차 산업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할 건 개발하고 보호해야 한다”며 “작은 섬에서 우리가 같이 가야 하는데, 안좋은 건 숨기고 발전적인걸 써줬으면 한다. 환경이니 뭐니 모든 걸 건드리니까 지역 사람들은 불편해한다”고 했다.

달그리안은 해당 사업이 최종 선정된 2019년 겨울호에서 <'우도 하우목동항 권역 어촌뉴딜300사업'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주민들에게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알리고 주민 참여 필요성을 알리는 내용이다. 사업을 향한 강한 비판이 담겼다기보다는 자연 훼손을 경계하며 방향성을 제안하고 사업 진행에서 주민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기사다.

▲ 우도마을신문 달그리안 2019년 겨울호에 실린 '우도 하우목동항 권역 어촌뉴딜300사업에 대하여' 기사 갈무리.

1800명 남짓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고 고립된 섬에서 마을신문이 강한 비판 목소리를 내긴 쉽지 않다. 특히 주민들의 수익과 직결되는 개발 사업에 더 예민한 반응이 돌아온다. 김영진 달그리안 대표는 “개발 문제 관련해 우리 신문에 표현되는 게 아직 많이 미약하다”며 “문제점을 드러냈을 경우 계속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갈 주민들과 갈등이 생겨 부담이 크다”고 털어놨다. 이에 '신문이 너무 다양한 이슈를 못다루고 있다'고 평가하는 독자들도 있다. 달그리안은 이런 섬마을 특유의 문화 속에서 7년 째 '우도 지역 언론'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달그리안은 우도의 역사” 주민들이 응원하는 이유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26일부터 사흘 간 만난 달그리안 후원자이자 우도 주민들은 미약할지라도 공론장에 목소리를 던지는 달그리안을 응원하고 있었다. 우도바당땅콩영농조합법인 대표 강세붕씨(68세)는 “쟁점 사안이 있으면 공론에 붙이고 얼마나 좋나”라며 “지속적으로 우도가 보존해야 할 역사를 발굴하고 있다”고 했다. 창간호부터 달그리안에 시와 글을 기고하고 있는 시인 강영수씨도 “좁은 지역이다보니 바른 말하는 사람은 밉게 보여 주민들에게 호응받지 못한다”며 “지금까지 온 것도 다행이지만 한계가 왔을 경우 무너져버릴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 달그리안 부스를 찾은 이호해녀 이유정씨(오른쪽)와 강윤희 기자. 사진=달그리안 제공.

달그리안을 응원하는 주민들은 “달그리안이 우도의 역사가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의 관광화로 빠르게 사라져가는 우도의 자연과 역사를 글로써 풀어 기록하는 건 우도 지역신문으로서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다. 개발 앞에서 자연의 중요성을 잊기 쉬운 분위기 속에서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주민들에게 다시금 일깨워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 달그리안 부스에 놓인 '우도 섬마을 생활사 아카이브' 책자들. 사진=윤유경 기자.

달그리안은 점차 사라져가는 우도 해녀의 목소리를 기록해 '우도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책을 발간했다. 지하수에 염수가 섞여 식수로 이용할 수 없었던 과거 삼춘(성별을 불문하고 윗사람을 칭하는 제주 방언)들이 30kg의 물허벅(물동이)을 지고 물을 길어온 노동도 '물 길러 가는 길'이라는 책자에 담아냈다. 이밖에도 어르신들을 인터뷰해 삶의 역사를 풀어내고, 집집마다 보관하고 있던 옛 사진들을 스캔해 '그땐 경허멍 살아수다'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싣고 있다.

우도 소라 축제 첫날 일찌감치 달그리안 부스를 찾은 전 우도면장 여찬현씨(68세)는 “처음엔 이게 될까 말까 했지만 계속 발행되고 있다. 주민들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돼 우도가 새롭게 느껴진다”며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고 '신문이 참으로 좋은 거로구나' 생각하고 있다. 우도 역사 문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지난달 26일 우도 소라 축제 달그리안 부스에서 만난 여찬현씨. 우도 소라 축제는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우도에서 가장 큰 대표 축제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해 부스를 운영하고 음식을 만든다. 사진=윤유경 기자.

해녀 김혜숙씨(66세)도 “지금 아이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고생했던 세대라 새록새록 피부에 와닿는다. 우리도 기억했다가 나중에 후 세대들에게 알려야되겠다는 자부심도 있다”며 “'아이고 맞다맞다' 하면서 본다. 이 신문이 있다는 것에 우린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개발 이슈에선 달그리안을 비판하던 김경철씨도 “기자들이 우도의 옛 것을 지금 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옛 사람들한테 상기시켜주고 얼마나 좋은가”라며 달그리안이 기록하는 역사의 의미를 짚었다.

▲ 지난달 26일 우도 소라 축제 식당 부스에서 만난 해녀 김혜숙씨. 사진=윤유경 기자.

우도를 알려야 한다며 기자를 데리고 2시간의 '우도 투어' 가이드를 자처한 이도 있었다. 우도면 지역사회보장협의회 위원장 고성종씨(66세)는 우도 곳곳을 다니며 달그리안의 역할을 설명했다. 고씨는 “우도는 해가 뜨고 배가 다니기 시작하면 관광객의 섬이고, 배가 끊기면 오롯이 우도 주민들의 섬이 된다”며 “우도가 관광지로 알려지다보니 옛날 전통이 사라져 아쉽다. 문화를 지키려는 역할을 달그리안에서 하고 있다”고 했다.

고씨는 옛날 빗물을 받아 마시던 물통을 보존하고 있는 강성호·강한승 삼춘(92세) 집을 찾았다. 달그리안이 '물 길러 가는 길' 기획을 통해 인터뷰한 삼춘들이다. 뒤이어 들른 김진사 생가터에선 옛날 곡식을 찧던 연자방아가 보존돼 있다. 역시 달그리안이 보도하고 '섬마을 우도 생활사' 전시도 기획했던 곳이다. “옛날 방앗간 유적인데, 우리 어렸을때 새마을 운동하면서 다 길에 깨 도로 포장하는데 써버렸다. 우리의 무지 때문에 문화와 역사가 중요하다는 걸 몰랐다.” 고씨의 아쉬움이다.

▲고성종씨는 옛날 빗물을 받아 마시던물통을 보존하고 있는 강성호·강한승 삼춘(92세) 집을 찾았다. 물통에서 물을 퍼올리고 있는 고성종씨(왼쪽)와 강성호 삼춘. 사진=윤유경 기자.

처음 받아본 '우리 동네' 신문 “타지에 가면 제일 먼저 자랑”

우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에게 마을신문 달그리안은 처음으로 접해본 '우리 동네' 신문이다. 고성종씨는 “신문이 있는 마을이 몇이나 될까”라며 “나는 타 지역에 가서 우리 마을에 달그리안이라는 신문이 있다는 걸 제일 먼저 자랑한다”고 말했다. 동네 소식을 기록하는 언론이 있다는 사실이 자부심이 됐다.

초·중학교 밖에 없는 우도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하려면 타지로 가야 한다. 출향한 이들에게 달그리안은 우도 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동뫼종합건설주식회사 대표 윤찬국씨는 “우리같이 밖에 나간 사람은 고향에 대해 들을 수가 없다”며 “신문이 도착하면 '오늘은 무슨 소식이 들었을까' 설레는 가슴으로 본다”고 말했다.

▲ 지난달 26일 우도 소라 축제 달그리안 부스에서 만난 윤찬국씨. 사진=윤유경 기자.

주민들은 달그리안 부스에 놓여진 신문과 사진들을 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물 길러 가는 길' 책자를 보던 윤양식 우도 부면장은 과거 빗물을 받아 물을 먹던 기억을 떠올렸다. 고성종씨는 부스 벽면에 걸려있는 우도 해녀들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읊었다. 그들에게 달그리안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성실히 담아내고 있는 한 권의 기록집이었다.

▲고성종씨는 달그리안 부스 벽면에 걸려있는 우도 해녀들의 어릴 적 진을 보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읊었다. 사진=윤유경 기자.

달그리안 기자들이 처음 신문을 만들기로 결심한 2017년 마을미디어 교육을 담당했던 마을미디어 연구소장 정수진씨는 당시 느꼈던 기자들의 열의를 떠올렸다. 정씨는 지금도 종종 기자들의 미디어 교육을 맡는다. 정씨는 “우도는 날씨가 안 좋아 배가 안 다녀도 방송이나 신문이 없으니 주민들끼리 문자로 주고받는다고 하더라”며 “현수막을 붙이거나 면사무소에서 방송하는 정도였다. 매체가 정말 필요한 지역이구나 생각했던 게 첫 수업때 가졌던 인상”이라고 말했다.

▲ 달그리안 사무실에서 마을미디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달그리안 기자들과 정수진 마을미디어 연구소장(왼쪽 위에서 세번째). 사진=달그리안 제공.

정씨는 “마을미디어 교육을 통해 다양한 시민을 만나왔지만 이분들은 달랐다. 교육에 대한 기회가 잘 없다보니 열정과 기대가 엄청 컸다”며 “우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깨끗하고 공동체가 남아있는 우도를 지키고싶은 마음이 깊었다. 그러나 이 걱정을 실을 곳이 없었고 이분들에게 정말 신문이 필요하구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달그리안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하는 주민들

후원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달그리안의 지속가능성이다. 달그리안은 신문 구독료를 받지 않고 후원금과 지자체 지원사업에만 의존하고 있다. 대표의 사비로 발행 비용을 충당한 적도, 외상으로 신문을 낸 뒤 후원금을 모아 갚은 적도 있다. 최근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연간 200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1년에 네 번 신문 인쇄비용으로 쓰기에도 빠듯하다. 목소리 내기를 어려워하는 분위기 탓에 기고 하나 받기 어렵고, 새로운 기자를 모집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고성종씨는 기자들이 후원금을 예측할 수 있게끔 정기적으로 단돈 10만 원이라도 동창회 등에서 후원하자는 의견을 냈다. 전 제주도 해양연구원장 양희범씨(67세)는 성산항에서 우도로 배를 운영하는 도항선이 달그리안을 후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씨는 “우도 사람들이 달그리안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며 “관광객들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도항선이 돈을 많이 버는데, 그 돈을 공적인 데 투자했으면 좋겠다. 달그리안은 우도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신문이야말로 공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우도 소라 축제의 '달그리안' 부스를 찾은 독자와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들. 왼쪽부터 김애경 달그리안 편집장, 강윤희 기자, 달그리안 독자인 양희범 전 제주도 해양연구원장, 김영진 대표. 사진=달그리안 제공.

정수진씨는 “요즘은 기자들이 신문을 만드는 방법보다 어떻게 달그리안을 운영하고 신문의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을지, 새로운 기자를 어떻게 모집하고 역량을 높일까를 주로 고민하고 있다”며 “나중에 구독모델을 만들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주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주민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기는 신문을 만드는게 지속가능성에 있어 중요하다”고 했다. 정씨는 “우도를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달그리안의 독자가 될 수 있다”며 “독자들의 힘이 후원으로 더 많이 모일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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