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역시 비거리” 장타 시대 이끄는 방신실·황유민 그리고 윤이나

조수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2024. 5. 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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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투어의 평균 비거리 감소가 LPGA 부진으로 이어져
장타자 시대 열리면서 한국 여자골프 전성기 부활 기대감

(시사저널=조수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You drive for show, but putt for dough)." 골프에서 오래도록 내려온 보비 로크(남아공)의 명언이다. 보기에 좋은 호쾌한 드라이버샷보다는 정교한 퍼트가 스코어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2024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는 "드라이버도 돈, 퍼팅도 돈"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평균 260야드(237.7m) 이상을 때리는 장타자들이 필드로 돌아와 리더보드 상단을 꿰차면서다. 300야드(274.3m)를 넘나드는 장타를 앞세워 여자골프 흥행을 되살린 방신실(20), 황유민(21)이 올 시즌에도 활약을 이어가는 가운데 2022년 260야드 시대를 연 윤이나(21)가 '오구 플레이' 논란을 딛고 복귀해 장타 경쟁에 불을 지폈다. 대회장 곳곳에서 "볼 맛이 난다"는 찬사가 나오고 있다.

4월7일 KLPGA투어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 1번홀에서 황유민이 아이언샷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장타자 줄면서 한국의 국제 경쟁력 떨어져

한국 여자골프에 장타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KLPGA투어의 전체 평균 비거리는 243.53야드(222.7m)였다. 박성현(31)이 평균 265야드가 넘는 장타를 앞세워 공격적인 플레이로 한국 여자골프 최고의 팬덤을 이끌었고, 김아림(29)이 장타 계보를 이어받았다. 이들은 모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로 무대를 옮겨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후 KLPGA투어의 비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투어 전체 평균 비거리는 2019년 240.03야드로 떨어졌고 2020년부터 235야드(214.9m)대에 머물러있다. 장타를 앞세워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보다는 정타와 정교함을 앞세운 '또박이 골퍼'가 늘어났다는 얘기다. 그린 주변에서 펼치는 AI 같은 정교한 플레이 역시 보는 재미가 있지만 호쾌한 플레이가 주는 짜릿함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장타자 퇴조는 한국 여자골프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2020년을 기점으로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우승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국에서 상위권을 달리는 선수들의 LPGA투어 진출이 감소한 결과다.

한국 선수들이 LPGA투어 진출을 꺼리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비거리다. 세계적으로 모든 스포츠가 더 빠르고 길고, 강력해지는 추세 속에서 골프 역시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 LPGA투어도 예외가 아니다. 2003년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269.76야드(246.7m)로 비거리 1위에 올랐다. 2006년 카린 쇼틴(스웨덴)이 평균 284.47야드(260.1m)로 평균 비거리 280야드 시대를 열었고 2021년에는 애너 판 담(네덜란드)이 평균 290야드를 돌파했다. LPGA투어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본으로 장타가 받쳐줘야 하는 셈이다.

올 시즌 LPGA투어 비거리 1위인 오스턴 김(미국)의 평균 비거리는 280.6야드. 평균 270야드가 넘는 선수가 17명, 260야드 이상을 치는 선수는 65명에 이른다. 올 시즌 LPGA투어에 진출해 두 대회 연속 톱10을 기록 중인 임진희의 평균 비거리는 261야드다. 지난해 KLPGA투어에서 평균 243.36야드를 쳤던 데 비해 18야드 정도 늘렸다. KLPGA투어에서 다승을 거둔 한 선수는 "제가 LPGA에 가려면 비거리를 30야드 이상 늘려야 하는데 몸이 견뎌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여자골프의 장타자 가뭄을 끝낸 선수는 2022년 등장한 윤이나다. 화려한 미모에 320야드가 넘는 장타를 선보이며 '윤이나 신드롬'을 일으켰다. 수년간 이어진 정교함 중심의 아기자기한 플레이에 지친 팬들의 갈증을 단번에 날렸다. 그는 KLPGA투어 데뷔 4개월째 만에 첫 승을 거두며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공으로 경기한 사실을 뒤늦게 밝혀 '3년간 출전 정지' 징계를 받고 투어 활동을 중단했다. 그해 전반기만 뛰었지만 드라이버 비거리 263.45야드로 시즌 1위를 기록했다. 팬들이 윤이나의 복귀를 간절하게 기다린 이유다.

이듬해 등장한 방신실과 황유민은 윤이나의 빈자리를 빠르게 메우고 그 이상의 인기를 이끌어냈다. 방신실은 173cm의 큰 키로 300야드 이상의 장타를 날리며 팬들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지난해 조건부 시드로 투어에 진출해 출전 5개 대회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KLPGA투어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지난 시즌 기록한 평균 비거리는 262.47야드였다.

황유민은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폭발적인 장타, 이를 앞세운 공격적인 플레이로 스타로 떠올랐다. 163cm의 작고 여린 몸으로 장타를 펑펑 날리며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그에게 팬들은 '돌격대장'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3월7일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에서 방신실이 티샷을 하고 있다. ⓒ뉴시스
4월7일 KLPGA투어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 10번홀에서 윤이나가 티샷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선두 황유민·방신실, '돌아온 윤이나'가 추격

6개 대회가 마무리된 시즌 초반이지만 장타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황유민은 일찌감치 시즌 1승을 올려 선두로 치고 나갔다. 비거리 경쟁에서도 평균 260.6야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올 시즌을 시작하며 "비거리에 욕심을 버렸다"고 선언했던 방신실은 평균 258.17야드로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안정적인 장타에 정확도 높은 그린 주변 플레이를 더하면서 거의 매 대회 우승 경쟁에 나서며 확고한 강자로 자리 잡았다. 방신실은 올 시즌에만 17번 280야드 이상 날렸다. 240야드 미만에 그친 것은 단 5번에 불과했다.

여기에 1년6개월 만에 투어로 돌아온 윤이나 역시 '원조 장타 퀸'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올 시즌 출전 4개 대회 만인 시즌 첫 메이저대회 크리스에프앤씨 KLPGA챔피언십에서 톱10에 들며 적응을 마무리했음을 알렸다. 비거리 평균 251.4야드. 다만 다소 기복이 있는 모습이다. 280야드 이상을 보낸 것이 17번이지만 240야드 아래 티샷이 30번이었다. 200야드에 못 미친 티샷도 한 번 나왔다.

'베테랑 장타 퀸'도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리스에프앤씨 KLPGA챔피언십 우승자인 이정민(32)이 주인공이다. 이번 시즌에도 평균 248야드 이상을 기록하면서 현재 비거리 8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22언더파 265타로 KLPGA투어 72홀 최소타 타이기록을 세우며 생애 첫 메이저컵을 품에 안았다. 자신의 장점인 비거리와 날카로운 아이언샷, 여기에 약점이던 퍼팅까지 개선하면서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KLPGA투어에 장타자의 시대가 열리면서 세계 무대에서 한국 여자골프의 전성기를 다시 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황유민과 방신실, 윤이나는 해외 진출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방신실은 지난달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셰브론 챔피언십에 출전해 공동 40위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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