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제국주의’ 추구는… 결국 패망을 불렀다

김신성 2024. 5. 4.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때 동아시아 최대 탄광도시 푸순 통해
‘탄소가 만든 세계’에 대해 역사학적 비판
제국 일본에서 공산 중국에 이르기까지
근시안적이고 낭비적인 채굴 관행은 계속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산업화 혜택 이면엔
막대한 ‘에너지 소비’의 역사 존재·답습

탄소 기술관료주의―동아시아 탄소 중독의 기원과 종말을 찾아서/ 빅터 샤우/ 이종식 옮김/ 빨간소금/ 3만2000원

푸순은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 랴오닝성(遼寧省)에 있다. 도시 지하에는 막대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는데 20세기 초 일본제국 기업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대규모 채굴에 나섰다. 1933년 푸순은 만주 석탄 생산량의 5분의 4를, 일본 본국과 식민지 전체에서 생산된 석탄 6분의 1을 책임지고 있었다. 일본제국 칠흑의 에너지 심장, 그곳이 바로 푸순이었다. 1928년에 이곳을 찾은 일본 시인 요사노 아키코는 노천광을 “마치 하늘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열어젖힌 지상의 괴물과도 같은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중국 상하이 황푸강을 따라 들어선 영국 담배회사 소유의 석탄 야적장. 만주사변 이후 ‘석탄 기근’이 발생한 1931년의 모습이다. 빨간소금 제공
한때 동아시아 최대 탄광지였던 푸순의 역사를 통해 화석 연료에 대한 우리의 지독한 의존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본다. 제국 일본에서 공산 중국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다른 여러 정치 체제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정권은 놀라울 만큼 유사한 경로를 따른다. 국제 경쟁과 경제 성장, 국가 안보, 자원 자립에 대한 국가주의적 집착 속에서 석탄 중심의 개발주의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막심한 생태·환경 파괴가 뒤따랐다. 인명피해도 컸다. 과도한 굴착이 초래한 위험 속에서 언제나 높아져만 가는 채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었다.
‘탄소가 만든 세계’에 대한 역사학적 비판서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산업화한 근대 세계의 혜택 이면에 막대한 에너지 소비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석탄과 석유로 대표되는 탄소 에너지를 끊임없이 퍼부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세계를 ‘에너지 집약적 산업 근대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후 위기, 여섯 번째 대멸종, 혹은 ‘인류세’를 둘러싼 최근 논의들이 보여 주듯, 오늘날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이 세계의 대단원을 목도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가로서 푸순으로 독자를 이끈다. 푸순이야말로 ‘탄소가 만든 세계’가 어떻게 동아시아에 도래해 발전하고 파탄에 이르렀는지 제대로 보여 주는 소우주라 여겼기 때문이다.
푸순 탄광의 장관. 왼쪽 아래 ‘무진의 보고’라는 일본어 문구를 기재함으로써 푸순의 석탄자원이 무한하다는 인식을 심어 준다. 이는 엽서에 사용된 사진이다. 1910년대 발행된 수많은 일본 엽서는 푸순과 같은 공업 현장을 담고 있다.
저자는 20세기 초 제국 일본의 만주 침략과 더불어 일본인 기술관료들에 의해 ‘탄소 기술관료주의’라는 구조가 형성됐으며, 일제 패망 후 만주와 푸순을 뒤이어 차지한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또한 이 같은 구조를 비판 없이 답습했다고 주장한다.
일본과 중국에서 탄소 기술관료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은 공교롭게도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과 중첩되었다. 국가는 과학의 힘, 관료주의적 계획에 대한 맹신과 푸순의 석탄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는 환상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석탄을 최대한 값싸게 채굴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근대 동아시아의 과학 만능주의, 생산 지상주의, 발전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빅터 샤우/ 이종식 옮김/ 빨간소금/ 3만2000원
저자는 일본제국이 원료를 찾아 과도한 팽창을 거듭했고, 이렇게 확장된 제국의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역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고 분석한다. 에너지 제국주의의 추구는 결국 1945년 제국의 패망을 부르고 만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석탄 및 에너지 자원에 대해 어떠한 접근법을 취했는지도 들여다본다. 국민당 정부 치하 중국인들은 일본산 석탄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푸순의 석탄이 일본산 석탄으로 오해받아 난징과 상하이 등으로 유입되지 못하자 심각한 석탄 기근 현상이 발생한다. 국민당 정부는 중국 본토 내륙의 탄광 개발과 에너지 자급자족을 위한 각종 사업에 박차를 가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자원위원회 소속 기술관료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중국 중앙정부가 탄소 기술관료주의를 내재화하게 된 것이다.
푸순탄광클럽. 3층짜리 건물은 식당, 독서실, 카드게임 시설, 살롱 그리고 다수의 객실을 갖추고 있었다. 1937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미국의 조사단원들이 1947년 7월 푸순을 방문했을 때, 국민당 관료들이 마련한 만찬. ‘중화민족의 국부’ 쑨원의 초상화가 보인다. 가운데 안경을 쓴 장자아오는 중국의 만주 접수를 놓고 소련과의 협상을 이끌었다.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낸 중국공산당은 어땠을까? 공산당은 일본 제국주의자와 국민당 반동분자 치하의 ‘구(舊)사회’와 고별하고 ‘신(新)중국’의 탄생을 공언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공산당 역시 탄소 기술관료주의를 답습해 그 전임 정권들과 한 치도 구별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산당은 전임자들보다 더욱 열화(劣化)된 탄소 기술관료주의를 선보였다. 석탄의 질, 광부의 안전, 탄광의 장기적 지속가능성까지 희생시키며 더욱 급진적으로 단기 생산량의 극대화만을 추구했다.

푸순에서의 근시안적이고 낭비적인 채굴 관행은 20세기 후반 내내 계속되었다. 인간과 환경의 건강을 대가로 자기 복제와 강화를 거듭해 온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채, 푸순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화석 연료를 태우며 대기를 향해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