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격동의 시대를 이겨낸 목각인형
‘피노키오’(Le avventure di Pinocchio·1883)를 읽지 않았더라도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에 대해선 누구나 안다. 출간된 지 140여 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서 책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뮤지컬, 그리고 오페라를 통해 여전히 피노키오를 만난다. 때론 ‘피노키오’를 주제로 한 전시도 열릴 정도니 이쯤이면 말 다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한 목수의 손에서 탄생한 인형이 갖은 모험을 겪고 사람 아이가 된다는 이야기가 이처럼 오래도록 널리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피노키오’가 그것을 낳은 시대를 놀라울 정도로 기민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답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피노키오가 속한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곳은 여우와 고양이가 나무인형을 농락하거나 돈을 빼앗기 위해 나무에 매달고, 잠시 도락(道樂)을 맛본 대가로 아이들이 당나귀로 변하며, 바다에선 거대한 상어가 사람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세계다. 그곳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배(梨)의 껍질과 속까지도 남김없이 먹어야 하고, 옷을 팔아 책을 마련하나 인형극을 관람하기 위해 다시 그 책을 되팔아야만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
1826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즉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격랑(激浪)을 온몸으로 겪었을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경험한 세계 또한 아마도 그러했으리라. 이처럼 ‘피노키오’의 거친 세계는 작품 당대인 19세기 말을 반영하면서, 한편으론 이어지는 격동의 20세기를 예견한 것이었다.
콜로디는 1881년과 1882년 한 어린이 신문에 ‘피노키오’를 연재했는데, 당시 원고료를 제때 못 받은 작가가 홧김에 피노키오가 강도에게 목매달려 죽는 것으로 연재를 끝내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독자들의 성화에 시달린 신문사가 원고료를 지급하자, 작가는 요정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피노키오가 결국 사람이 된다는 잘 알려진 내용으로 결말을 수정했다.
‘피노키오’는 지금껏 약 300개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국내에도 엔리코 마잔티, 아틸리오 무시노, 야센 유셀레프, 로베르토 인노첸티 등 작가들의 삽화가 수록된 다양한 번역본들이 나와 있으니 비교하여 읽어본다면 여러모로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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