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눈 높에서 본 긴 이별 ‘언니를 만나는 밤’

손봉석 기자 2024. 5. 4.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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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출판사



어린이 눈으로 본 죽음이라는 긴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사이그림책장’ 첫 책인 ‘언니를 만나는 밤’(글 윤수란 그림 김은진 펴낸곳 가나출판사)으로 출간이 됐다.

‘언니를 만나는 밤’은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운명이 주는 슬픔 보다는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과정이라는 것과 남아 있는 사람들 가슴속에는 계속 추억으로 남아있음을 담담하고 따스한 시각으로 설명한다.

이야기는 “목공소 안집에는 늘 톱밥이 날렸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쾌활하고 신나는 분위기로 도시 변두리에 사는 공부 잘하는 큰 언니와 싸움 잘하는 작은 언니 그리고 막내까지 세 자매를 둔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을 보면서 막내 딸은 “아줌마들도 학교에 다녔을까? 다녔으며 공부는 잘했을까? 아줌마들 중에선 누가 달리기가 빨랐을까?”를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달리기를 잘하는 작은언니 다리에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개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다시 세 개로 점이 늘어나자 엄마가 아빠한테 말한다. “이상하지 않아? 점이 생기고 있어” 엄마와 아빠는 병원비만큼이나 작은언니에 대한 걱정도 컸기에 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에겐 비밀이 생겼다.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니 더 말하고 싶어지는 비밀이다. 그 비밀은 곧 다가올 긴 이별과 큰 슬픔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집에 목공소가 있고, 동네 아줌마들은 마당에 모여 빨래를 하고, 연탄을 때고, 골목에서 고무줄놀이 딱지치기를 하는 20세기 후반 동네 모습들이 펼쳐지는 글 묘사와 삽화는 마치 우연히 손에 넣은 옛날 초등학생의 그림 일기를 보는 듯 생생한 흥미를 준다. 책속 화자인 ‘어린 나’는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주인공인 작은언니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건강한 어린이였다. 동네에서 딱지치기, 구슬치기뿐만 아니라 달리기도 따라올 친구가 없었다. 작은언니는 비가 오는 날이면 동생인 나와 함께 주인집 목공소 바닥에 흩어진 톱밥으로 소꿉놀이를 하는 다정한 언니였다. 하지만 어느 날, 작은언니 몸에 회색 점이 생겼다. 회색 점은 한 개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난다.

작은언니 몸에 점이 늘어날수록 작은언니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작은언니가 아니게 된다. 활달하게 집 밖에서 뛰너 놀던 작은언니는 이제 집 안에만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가족에게는 비밀이 생긴다. 비밀이 생긴 후, 마당 수돗가에 모이던 동네 아줌마들은 이제 대문 밖에 모여 소곤거린다. 어린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가족의 ‘죽음’은 매우 낯설다. 평소와 달라진 작은언니와 가족을 보며 아낌없이 사랑받던 자신의 ‘막내 자리’를 빼앗긴 것만 같아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서럽고 작은언니가 부럽기까지 한다. 이런 어린 마음을 작가는 솔직하게 들려 준다.

마지막에 자꾸만 작아지는 작은언니를 위해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모인다. 작은언니가 떠나고 난 후 몯 함게 모여서 추억을 ‘이야기’한다. 죽음이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겨지는 것임을 ‘이야기함으로써’ 함께 애도한다.

작은언니가 아픈 이야기를 회색 점과 점점 작아져서 사라지는 존재로 묘사를 한 동화적인 상징과 은유로 승화 시킨 점이 인상적이다. ‘언니를 만나는 밤’이 어린이에게 죽음을 전하는 다른 동화들과 다른 울림과 감동을 주는 지점은 죽음 보다 더 큰 사랑과 망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롯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화는 너무 일찍 가족의 곁을 떠난 작은 언니의 모습을 담은 소박한 전기로도 읽힌다.

그림을 그린 김은진 작가는 톱밥 향기를 좋아하던 어린 소녀의 이미지와 남겨진 가족이 지닌 추억을 노란색과 검은 먹으로 잘 시각화 했다. 담담한 먹선 그림체는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의 글과 함께 인물들 표정, 밥상, 병원풍경, 의사선생님 안경에 비친 아빠와 엄마 얼굴, 작은 언니가 없는 가족의 잠자는 모습 속에서 죽음을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한 톤으로 이별을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김 작가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어 주인공 아이의 추억과 마음을 담담한 먹선에 담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언니를 만나는 밤’을 쓴 윤수란 작가는 “작은언니와의 이별의 순간을 정말 아름답게 그리고 싶었다”며 “마지막 날, 밤새 함께 울어 주던 이웃들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 낸다면 아름다울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언니를 만나는 밤’ 책장을 덮으면 톱밥 향기가 떠오르고 우리 곁을 떠난 이들과의 추억이 생각난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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