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한국 정점론’의 불편한 진실과 대응

2024. 5. 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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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지난달 총선 참패의 충격파 속에 윤석열 정부 출범 2주년이 내주로 다가왔다. 축구 경기에서 전·후반에 골대가 바뀌듯 이제는 더 거세진 맞바람을 안고 뛰어야 할 힘든 후반전에 돌입했다. 외신들이 현 정부의 국정 동력과 글로벌 위상 약화에 우려 목소리를 앞다퉈 내는 가운데 대내외 환경도 만만치 않다.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신 3고(新 3高) 우려에다 과도한 부채와 높은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우리는 만성적 퍼펙트 스톰 앞에 섰다.

「 일부 외신 “한국 경제 기적 끝났다”
연금개혁·저출산 대책 마련 시급
재정 건전성과 금융 혁신도 절실
G7→G10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야

선데이 칼럼
한국 경제의 기적은 끝났다는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기사가 눈길을 끈다. 한국 경제가 성인병에 걸렸다는 뉴스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선거 후 어수선한 정치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의 미래에 불안을 키우고 있다.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구조개혁의 좌초로 동력이 급속히 약화했고, 값싼 노동력과 에너지에 의존하는 건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전기료 정상화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 경제는 1970~2022년 연평균 6.4% 성장에서 2020년대 2.1%, 2030년대 0.6%, 2040년대 -0.1%로 추락한다는 예측도 나온다. 2050년까지 생산가능인구 35% 감소(GDP 28% 축소) 전망에다 GDP 100%에 달하는 아시아 최악 수준의 가계부채 부담도 추가적인 걸림돌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제적 화두로 떠오른 ‘중국 정점론’은 과도한 국가부채(Debt), 부동산 시장 부실화(Default), 저출산·고령화의 취약한 인구구조(Demography)라는 ‘3D’ 악재에서 기인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가 빼닮았으니 ‘한국 정점론’도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저성장 고착화를 반전시킬 우리의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권고 사항이자 현 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한 파격적 구조개혁이라는 정답은 다 아는 사실인데 실천이 문제다.

첫째,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특히 연금 개혁에 속도를 내고 저출산·고령화 대책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현재 논란이 된 연금 개혁의 경우, ‘더 내고 더 받자’라는 접근은 국민적 수용성 개선의 장점이 있으나 장기적 재정 안정화라는 연금 개혁의 본래 목적에 부합 여부가 관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험료율의 절반 수준인 현 9%에서 충분히 올리고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는 범위 내에서 노후 보장성 개선이 정도(正道)다. ‘조금 더 내고 많이 더 받자’라는 개악은 피하되 세계 주요국 중 유일하게 지난 25년 동안 한 번도 보험료 인상을 안 한 무책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이 지구촌에서 최초로 사라질 나라로 꼽힐 정도로 심각한 초저출생의 비상사태는 파격적 인구 대책 없이는 극복이 불가하다.

둘째, 재정 건전성은 우리나라 경제의 최후 보루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식 현금 살포는 절대다수 야당 대표의 선거 공약이라도 막아야 한다. 양극화 해소의 바른길은 선택과 집중의 복지정책이고 재정지출의 효율성 극대화가 정답이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더욱 늘어난 국가부채의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신용평가기관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인플레 속 세수 급감의 현 불황 시기에 ‘돈 풀기보다 돈 안 드는’ 규제·노동 개혁의 경기 활성화 노력이 상책이다. 국가채무 증가율이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재정 준칙 도입도 지체해선 안 된다.

셋째, 금융이 살아야 나라 경제도 산다. 경제 역동성과 신성장 동력의 촉매제를 투자 활성화라고 볼 때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의 활력을 키워야 하며 잠재성장률 회복에도 금융혁신이 필수다. 선진 대한민국은 실물과 금융의 균형 발전을 요구하고 제조업 대비 취약한 금융경쟁력을 키워야 국가 경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명저 『금융의 지배』에서 금융 강국이 세계를 제패한다고 했다. 포스트 홍콩 경쟁에 싱가포르나 일본은 뛰는데 한국만 안 보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서울의 금융허브 구축이 앞서야 부산 등 지방 금융센터 발전도 가능하다. 런던의 후광이 없다면 에든버러 금융센터는 불가능하듯 말이다.

끝으로, 대외전략 차원에서 주요 7개국(G7) 체제의 G10 확대 가능성 논의에 대비해야 할 때다. 글로벌 지경학적 변화로 새로운 국제적 공조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배경 하에 기존 G7에 호주, 스페인, 한국 등의 G10 회원국의 합류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일 공조 체제를 포함한 자유민주동맹 강화를 위한 현 정부의 성과는 지속돼야 한다. 이는 미·중 갈등의 신냉전 시대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필수적인 데다 미국 대선 후보인 트럼프 리스크 대비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참여도 경제·안보 전략적 가치가 크다.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라는 말은 국가의 기초를 쌓기 위해 신중하게 결단하되 신속히 실천하라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 후반기 미션은 초심으로 돌아가 대한민국 미래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다. 분명한 국정 비전과 강력한 돌파력이 도약의 관건이고 여기서의 정책 추진력은 국민과 시장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겸손한 자가 나아간다(謙則進)’는 공자의 경구처럼 소통과 협치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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