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마석도 형사는 영화아닌 현실에서도 통할까

2024. 5. 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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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변호사
영화 ‘범죄도시4’는 마약 단속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마석도(마동석 분) 형사는 스마트폰 앱으로 필로폰을 주문하면 배달 음식처럼갖다 주는 마약조직의 본거지를 찾아가 우람한 주먹으로 퍽, 퍽, 퍽, 퍽 때려서 일망타진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마약 판매 조직을 이렇게 잡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요즘 마약 거래는 텔레그램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텔레그램은 수사에 협조해주지 않기 때문에 판매조직의 최고 윗선을 잡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마약 구입 대금도 가상자산으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가상자산 전자지갑은 누구나 익명으로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가상지갑들 사이의 거래를 포착하더라도 그 지갑 주인의 신원을 알기는 쉽지 않다. 마약 배달은 소위 ‘던지기 수법’으로 이루어진다. 판매자가 미리 마약을 어느 장소에 심어둔 다음에 마약을 사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그 마약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는 식이다. 그 장소는 CCTV가 없는 주택가의 우편함, 소화전, 에어컨 실외기, 계단 난간, 계량기, 화분 밑 등 다양하고 기상천외하다. 마약을 심는 사람을 잡아봤자 그것이 마약인 줄도 모르는 중고생 알바인 경우가 많다.

「 마약사범 지난 8년간 3.7배 증가
마약 청정국서 신흥국으로 전락
중독되면 주변인들 모두 떠나
젊은이에게 진짜 행복 가르쳐야

ON 선데이
법무부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사범은 지난 8년 동안 3.7배 증가했다. 하지만 은밀하게 벌어지는 마약 범죄의 특성상 실제 건수는 10배, 20배로 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때 ‘마약청정국’으로 불리던 우리나라는 어느 새 ‘마약신흥국’으로 불린다. 마약 생산비가 낮아지고 경찰에 잡힐 확률이 떨어지니 마약 가격도 떨어져서 더욱 쉽게 확산되고 있다. 필로폰은 피자 한 판 가격에 구할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0대 투약자들이 가장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미국, 남미, 필리핀 같은 나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되듯이 순식간에 급속도로 온 사회에 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필라델피아 켄싱턴 마약 거리는 ‘좀비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온 몸을 구부정하게 굽힌 채 마약을 흡입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1만 명 정도가 돌아다닌다고 한다. 이들이 주로 흡입하는 건 펜타닐이다. 펜타닐은 말기암 환자가 붙이는 패치에 들어가는 성분으로 호흡 억제가 일어나서 뇌가 손상되거나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며 연필심 끝에 묻은 아주 소량의 흡입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청장년층 사망 1위가 펜타닐 중독으로 한 해 6만 명 이상이 죽는다. 우리나라에도 펜타닐 패치를 잘라서 흡입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단현상이나 중독성이 필로폰보다 훨씬 강하다고 한다.

어느 사회나 음지가 존재한다. 도박, 매춘, 마약, 조폭은 그 음지에서 피어나는 곰팡이 같은 현상이다. 음지를 없앨 수 없는 이상 곰팡이도 완전히 박멸할 수는 없다. 다만 양지를 침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대낮에 (배트맨의 고담시티처럼) 길바닥에서 마약 사범이나 조폭이 설치고 살인과 폭력이 버젓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점차 마약이 양지로 기어나오는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것도 걱정이다. SNS에는 아이스, 작대기, 크리스탈, 빙두 등의 은어로 필로폰 광고가 살포되고 있다. 작년에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모 제약회사의 행사로 가장한 채 필로폰을 탄 음료를 공부 잘 되는 약이라며 중고생에게 먹이고는 그 부모를 협박한 범죄조직이 출현하기도 했다.

판사 시절 마지막 해에 형사재판장을 맡았는데 전담 사건 중에 마약범죄가 있었다. 마약 사범들은 눈빛이 흐리고 목소리가 성마르고 몸에 힘이 없었다. 중독자 곁에는 결국 아무도 남지 않았다. 처자식도 함께 마약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결국 곁을 떠났다. 상습 필로폰 투약으로 기소된, 인상이 유난히 선하고 인물이 훤하던 스무 살 여성 피고인이 떠오른다. 구속되기 전 임신한 그녀는 교도소에서 딸을 출산했다. 엄마와 딸의 앞날을 생각하자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인간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이 주먹만 한 것이라면 필로폰으로 느끼는 쾌락은 수영장의 물만큼 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마약은 한 번 손대면 끝이다. 단 한 번을 하지 않도록 마약의 무서움을 교육해야 한다. 중고생, 대학생들에게부터 마약의 무서움에 대한 생생한 교육이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약물에 기대지 않고 진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마약 퇴치 해법이 될 것이다.

정재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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