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요리외교

신경진 2024. 5. 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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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중국어
“펑런(烹飪)외교의 완벽한 실천가.” 지난달 초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본 중국 관영 매체의 평가다. 한자 삶을 팽(烹)과 익힐 임(飪)을 합친 중국어 펑런(烹飪)은 요리라는 뜻이다.

펑런외교는 지난 2002년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가 처음 만든 신조어 ‘미식외교(gastro-diplomacy)’의 중국식 표현이다. 미국의 포린폴리시는 2022년 미식외교를 “요리에 대한 관심을 높여 국가 인지도를 높이고 호감을 얻어 경제·상업적 이익을 누리는 소프트 외교”라고 설명했다. “위장(胃腸)을 통한 마음 얻기”라고도 했다.

지난달 6일 옐런 장관은 베이징에 도착하자 곧바로 쓰촨(四川)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라오촨반(老川辦)식당을 찾았다. 주인은 옐런 장관에게 1915년 파나마 엑스포에서 금상을 받은 명주 우량예(五糧液)와 쓰촨성의 싼싱두이(三星堆) 유물, 송나라 도자기를 소개했다. 미국에서도 쓰촨새우요리(四川蝦)를 즐겼다는 옐런 장관은 이날 수이주뉴러우(水煮牛肉), 후이궈러우(回鍋肉), 모포더우푸(麻婆豆腐) 등 정통 쓰촨요리 12접시를 주문했다.

관영 CC-TV는 SNS에 “중국 요리는 불 다루기의 예술이며, 쓰촨요리는 더욱 그렇다. 볶음요리들 모두 불의 세기에 통달해야 잘 만들 수 있다”면서 “옐런에 적용한다면 미국은 중·미 관계의 불조절에 능통해야 하며 중·미 관계가 항로를 벗어나지 않고 속도를 잃지 않으며 충돌하지 않도록, 소통과 상호작용 속에 공존의 길을 정확하게 탐색해야 한다”고 썼다. 외교의 이치가 요리와 통한다는 이야기이다.

24~26일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에서 만두외교를 펼쳤다. 상하이에서는 샤오룽바오(小籠包) 전문점을 찾아 수행원과 식사 모습을 공개했다. 베이징에서는 류자이스푸(劉宅食府)라는 베이징 요리 식당을 찾아 식객 블로거와 함께 자오쯔(餃子)를 먹으며 중국요리를 칭찬했다. 그는 “중국요리는 미국 각지에서 환영받는다”며 “미식은 서로를 연결하는 매우 좋은 방식”이라고 했다. 미 대사관은 블링컨의 젓가락질을 클로즈업한 영상을 SNS에 올려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통시대부터 중국은 주객(主客)이 어울리는 판쥐(飯局·연회)를 외교의 주무대로 삼았다. 유방을 초대해 칼춤을 선보였던 항우의 홍문연(鴻門宴)도 실은 식사 자리였다. 한국 외교장관이 이달 중순 7년 만에 베이징을 찾는다. 요리외교 일정을 마련해 중국인의 침샘을 자극해보면 어떨까.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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