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 무릎 꿇었다”…‘휴진’ 통보에 눈물흘린 보호자

정윤경 기자 2024. 5. 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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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유일 상급종합병원…울산대병원 3일 휴진
보호자 “사람 목숨 걸린 일…더 이상 휴진 안돼”
교수 “최대 주 90시간 근무…심각한 과로 상태”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5월3일 휴진에 들어간 울산대병원에서 환자 및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무릎 꿇고 의사 앞에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으니 제발 의료진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3일 울산대병원 응급·중환자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서 만난 류아무개(44)씨는 폐기흉이 발생한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고 했다. 류씨는 "종합병원에서 더 큰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하기에 병원을 수소문해 봤지만 전국적으로 의료진이 부족해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병원에서 조심스럽게 '병원 뺑뺑이'를 돌 수도 있다고 했다"며 "담당 의사에게 '주변에 아는 대학병원 의사가 있으면 제발 연계 요청을 해달라'고 싹싹 빌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날 울산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울산대병원의 교수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하루 외래 진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울산대병원 휴진은 울산대의대 교수협의회(교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울산대의대 산하인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교수들도 함께 휴진에 들어갔다.

류씨는 "울산대병원마저 교수들이 외래나 수술을 중단하면 우리는 정말 갈 곳이 없다"면서 "대체 보호자들이 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울산대병원 응급·중환자실 앞에는 환자를 기다리는 10여 명의 보호자들로 붐볐다. 그들 옆에는 울산대병원 비대위가 작성한 '휴진과 사직에 앞서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직원분들께'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휴진 안내문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함에 따라 교수들은 최대 주 90시간 이상 근무하는 등 심각한 과로 상태"라며 "교수들의 정신과 신체가 더는 버티기 어렵고 현재 환자들을 안전하게 진료하기 힘들다"고 나와 있었다.

그러면서 "교수들의 과로를 관리하기 위해 5월3일부터 일부 휴진 및 진료 시간 조정이 이뤄질 예정"이라면서 "일부 교수들이 사직하는 현상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돼있었다.

5월3일 울산대병원 곳곳에 붙은 게시물 ⓒ시사저널 정윤경

"절대 아프지 말자"…의료공백 장기화에 조마조마한 환자들

중환자실 대기실에서 만난 김아무개(36)씨도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인데 더 이상 의료진 휴진은 안 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아버지의 제세동기 삽입술을 위해 강원 삼척시에서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인근 상급종합병원인 강릉아산병원으로부터 의료진 부족으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버지를 수술해 줄 수 있는 교수가 울산대병원에 한 명 밖에 없다"며 "그마저 휴진하면 정말 대안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날 울산대병원에서 만난 보호자들은 진료와 수술이 가능하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언제 의료진이 휴진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었다.

울산 북구에서 온 김아무개(67)씨는 신장암 수술을 앞둔 남편 이아무개(69)씨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김씨는 "의사가 없다기에 수술이 불가능할까 봐 조마조마했다"면서 "울산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 이곳을 찾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픈 환자들을 봐서라도 이젠 집단행동을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병원으로 돌아와 환자들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고 덧붙였다.

녹내장 치료를 받기 위해 울산 동구에서 온 김아무개(79)씨는 백내장 환자인 아내에게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기간 동안 절대 아프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2차 병원을 다니다 증세가 악화돼 상급종합병원인 울산대병원으로 오게 됐다는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곳을 다닐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울산대병원 측은 휴진에 들어간 교수 규모가 작아 별다른 혼선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병원 관계자는 "이날 휴진한 교수는 극소수에 불구하고, 환자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게 진료가 연기된다고 사전에 통보했다"면서 "전 진료과목이 정상 운영된다"고 밝혔다. 다만 병원 관계자는 "(사태가) 5월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휴진에 들어간 울산대병원 일부 교수들은 울산대의대가 주최한 '2024 의료 대란과 울산대의대 교육 병원의 나아갈 길'이라는 비대면 세미나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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