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시론] 결혼·출산에 대한 문화와 인식 바꿔야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2024. 5. 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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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우리나라가 저출산 관련 예산을 별도로 편성해 출산율을 높이려는 시도를 한 것은 2006년부터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약 530조원의 예산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투입됐다. 그 결과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집값이 비싸기 때문이라는 진단에 따라 신생아 특별공급과 특례대출 등 각종 지원을 쏟아부었고, 육아가 힘들어서 그렇다는 목소리를 반영해 육아휴직과 관련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예산을 늘렸다. 물론 그 예산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나라 출산율은 더 낮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저출산 관련 예산은 효과적으로 투입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저출산 예산 증가율과 우리나라 출산율을 그래프로 그려놓고 나면 저출산 예산이 늘어날수록 우리나라 출산율은 더 빠르게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나라별로 조사해 보면 아이를 기르는 데 드는 비용과 출산율은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 기간과 출산율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고, 아기를 출산한 가정에 지급하는 보조금 규모가 많은 나라와 적은 나라를 비교해도 출산율과 별다른 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육아와 관련한 환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반면 엄마가 아이를 직접 돌보는 시간이 긴 나라일수록 출산율은 꽤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보이면서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인 남녀가 동거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이런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저출산을 막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택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육아비용을 줄여주는 것보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문화와 인식을 바꾸는 게 더 시급하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저출산 예산은 필요한 부서와 지자체의 예산 따먹기 용도로 활용된 경향이 강하다. 출산율이 낮은 것은 아이를 기를 환경이 나쁘기 때문이니 더 좋은 나라를 만들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면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겠느냐는 논리로 각종 복지제도나 인프라 구축에 모두 저출산 대책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입맛에 맞게 예산을 써왔다.

생각해 보면 저출산 원인이 비싼 집값 때문이라면 집값이 저렴한 지방도시 출산율은 높아야 하는데 우리는 집값을 낮춰야 출산율이 올라간다는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집값을 낮춰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적어도 그게 저출산 원인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저출산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진단하고 대책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예를 들면 결혼이라는 선택이 엄마와 아빠의 삶을 힘들게 만든다는 주제를 담은 드라마나 영화가 실제로 결혼을 경험해 보지 않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면 법규를 만들어 금지하는 것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흡연이나 음주를 줄여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로 이미 흡연이나 음주 장면을 드라마에서 없애버린 것이 좋은 선례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을 담은 영상물에 연령 등급을 매긴 것도 영상물을 시청하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서라면 출산과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상물에도 비슷한 규제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성이나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은 그 어떤 곳에서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미 우리에게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결혼이나 출산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도 비슷한 사회적 시선이 필요한 때가 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시도하지 않았던,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던 여러 아이디어까지 총동원되어야 할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생각의 범위를 좀 더 넓혀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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