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악마의 자식, 피에 굶주린 사냥개”…끝없는 탄압, 그 이유는 [남기현의 해설]

남기현 기자(hyun@mk.co.kr) 2024. 5. 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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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反유대’ 반전운동 잇달아
美대학 ‘친팔레스타인’ 시위 격화
반유대주의 기원은 AD 2세기
기독교 받아들인 유럽 사람들
“유대인은 예수 처형한 민족” 낙인
최근 이슬람·PC운동 확산에
반유대주의도 새로운 양상
미국 대학생들의 ‘친팔레스타인’ 반전시위 [AFP 연합뉴스]
2023년 10월7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무력 침공했다.

이로 인해 최소 1300명의 이스라엘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 사회에서는 오히려 침공 당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최근엔 미국 대학들의 ‘반유대·친팔레스타인’ 성향의 반전 시위가 심상치 않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된 시위는 3일(현지시각) 현재 미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 대학에선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거나 체포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서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가 대표적인 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반전 시위가 거세지자 지난 2일 경찰이 이 대학 캠퍼스에 들어가 강제해산에 나섰다.

미국 뉴욕시 경찰이 뉴욕대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체포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남부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선 주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다. 오하이오주립대에서도 시위 도중 학생 2명이 체포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들 시위에 대해 “반유대주의적 흥분 상태”라며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1930년대 독일 대학에서 벌어진 상황을 연상시킨다”며 “반유대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반유대주의,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 종교개혁의 선구자, 그의 두 얼굴

“유대인은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거짓말쟁이다. 피에 굶주린 사냥개들이다. 그들의 회당과 집을 불태우고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 독일에서 추방해야 한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런 말까지 한다. “유대인을 죽이고 매장하고, 탈무드를 빼앗으라”

이 말을 한 주인공은 과연 누굴까.

주인공은 위대한 종교개혁 선구자, 마르틴 루터다. 1517년 가톨릭의 부패를 고발하며 비텐베르크 성당 문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써 붙였던 바로 그다.

마르틴 루터
루터는 1543년에 쓴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서 유대인을 향해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냈다.

같은 해 출간된 ‘셈 함포라스와 그리스도의 성에 관하여’에도 유대인에 대한 루터의 생각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루터는 유대인을 “고삐 풀린, 못된 망나니”라고 지칭했다.

루터는 왜 그리 유대인을 경멸하고 증오했던 걸까.

그는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며 우리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이 날로 커졌다. 급기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유대인을 말살해야 한다는 신념이 루터의 마음을 지배하게 됐던 것이다.

그가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을 쓴 날로부터 395년 후인 1938년 11월10일 새벽.

독일 나치는 유대인 핍박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돌입한다. 유대인들을 상대로 방화와 약탈, 살인을 저질렀다. 수많은 집의 유리창이 깨졌다. 그날 밤, 유리 파편들이 달빛에 반사돼 수정처럼 빛났다 해서 이 날을 ‘크리스털 나이트(Crystal night)’라고 부른다.

‘크리스털 나이트’가 발생한 11월10일은, 공교롭게도 마르틴 루터의 생일이었다.

유대인 탄압이 나치의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히틀러의 나치는 ‘유대인 말살’의 사상적 명분을 마르틴 루터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날 밤 목숨을 잃었다. ‘크리스털 나이트’는 훗날 유대인 6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홀로코스트의 ‘리허설’이었다.

‘크리스털 나이트’가 발생한 이듬해(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독일은 폴란드 곳곳에 유대인 멸절 수용소를 만들었다.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수용소가 대표적이다. 트레블링카와 소비보르 등에도 멸절 수용소가 설치됐다.

나치는 이 수용소에서 가스실험과 총살, 생체실험을 시행해 무려 600만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로 이송되기 직전의 유대인 아이들
2차 대전이 끝난 후 뉘른베르크에서 전범 재판이 열렸다. 수백명의 나치 전범들이 재판대에 올랐다.

그 중 한사람이 율리우스 슈트라이허였다. 나치의 장교였던 그에게 재판관이 물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자행할 수 있는가”

그랬더니 슈트라이허는 대뜸 이렇게 외쳤다. “나에겐 죄가 없다. 오로지 나는 마르틴 루터가 시켜서 그런 일을 했을 뿐이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마르틴 루터를 불러서 먼저 재판하라”

물론 종교개혁에 공헌한 루터의 업적이 폄하되어선 안된다. 그는 부패한 로마 카톨릭에 정면으로 맞섰다. 면죄부 판매를 ‘회개 없는 거짓 용서’라고 비판하고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를 설파해 ‘구원론’의 새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이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반유대주의가 홀로코스트의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AD 2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반유대주의

이스라엘을 향한 반감은 루터가 처음은 아니다. 그 뿌리는 예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복음 24장 1-2절)

이 구절은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임을 제자들에게 예언하는 장면이다. 당시 유대 땅은 로마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예수는 AD 30년경 십자가에서 처형 당했다. 이후 40년(AD 70년)이 지나 예수의 예언이 성취된다.

AD 66년 로마 통치에 반대하는 유대인의 항거로 1차 유대-로마 전쟁이 발발한다. 전쟁 4년차인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성전을 파괴한다.

데이비드 로버트의 1850년작 ‘예루살렘 공방전과 파괴’ [위키백과]
이때 상당수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 중동과 유럽 등으로 피신(디아스포라)했다. 당시 성전에서 파괴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겨진 부분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통곡의 벽’이다.

그로부터 62년후인 AD 132년, 유대인들은 또한번 반란(2차 유대-로마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AD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이를 완전 진압했다.

이스라엘에 질린 하드리아누스는 ‘유대’라 불리던 그 지역 이름을 아예 바꿔버린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팔레스티나’(블레셋)다. 이때부터 이 지역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앙숙이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교체된다. 반면 유대인들은 거의 100% 고향 땅에서 추방돼 전 세계로 흩어진다.

유대 땅에서 쫓겨난 이스라엘 민족은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각지로 흩어져 온갖 고초를 겪었다.

2세기 이방인 철학자 플라비우스 저스틴은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당신들(유대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당신들이 의로우신 분(예수)과 그 분 앞서 온 그의 예언자들을 죽였으며, 지금 당신들이 그 분에게 희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삼위일체 교리의 토대를 마련한 터툴리안과 ‘행동의 변증학’으로 유명한 오리겐 등 다른 초대 교부들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살해한 죄인”이라고 적시했다.

초기 교부들에 의해 정교한 교리를 갖추게 된 기독교는 313년, 로마에서 공식 종교로 인정받게 된다.

380년엔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제국의 유일무이한 국교로 선포한다.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는 유럽 전역과 아시아, 아프리카로 퍼져 나갔고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 복음이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유럽이 유대 땅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종주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유럽은 11~13세기 십자군 전쟁과 14세기 흑사병 등을 거치면서 유대인을 상대로 대규모 학살을 저질렀다.

◆ 이슬람의 확장, 사회주의의 부활 : 반유대주의 새로운 국면

기존 반유대주의는 유럽의 기독교가 주도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회복, 이슬람 확장, 사회주의 확산이 이전과 다른 내용의 반유대주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대 이스라엘은 1948년 5월14일 건국됐다. 그것도 쫓겨났던 유대땅 바로 그곳에 다시 국가가 세워졌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이스라엘이 무려 1813년만에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1948년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초대 총리가 텔 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제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 건국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이집트와 요르단, 사우디, 이라크, 시리아 등이 공격을 주도했지만 이스라엘을 막지 못했다.

이후 4차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스라엘 영토는 오히려 확장됐다. 심지어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까지 되찾았다. 그럴 수록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들의 적대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2000년대 들어 시리아 내전 등 여파로 수많은 무슬림 난민들이 유럽과 미국에 유입됐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그들을 받아들인 결과 유럽의 기독교는 침체 일로를 걸었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PC(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이슬람 확장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PC주의는 기존 통념을 깬 정치혁신 운동이다. 자연스레 미국을 지배해 왔던 기독교 전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무실 창문 앞에 등장한 크리스마스 눈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는, 익살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악관 전속사진사 피트 수자 인스타그램]
예컨대 지난 2016년 오바마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대신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s)’를 썼다. 크리스마스란 단어에 특정 종교 분위기(예수 그리스도)가 난다는 이유에서다.

기독교에 거리를 두자 PC주의는 자연스레 친무슬림 양상을 띄게 됐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 당시 다수의 무슬림들이 연방 정부 곳곳에 포진했다. 현재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크게 늘어난 상태다.

PC주의는 또 기후위기 어젠다와 젠더 이데올로기(성 다양성 인정)를 강조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PC주의가 사실상 사회주의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렇게 해서 PC주의를 매개로 ‘이슬람-사회주의’ 연결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전시위는 바로 이 연결고리가 만들어 낸, 새로운 양상의 반유대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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