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이 본능이라고요? 뇌에 ‘돌봄 회로’가 생긴 겁니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5. 3. 09: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부모됨의 뇌과학
첼시 코나보이 지음│정지현 옮김│코쿤북스
아이가 주는 시청각적 요소
‘육아의지’ 발달 자극제로 작용
‘경험’의 강도따라 변하는 뇌
입양아에게도 같은 감정 느껴
“모성, 가슴 아닌 머리서 나와
부모되면 다시 태어나는 수준”
게티이미지뱅크

모성 본능은 신화에 가깝다. 약 40주에 이르는 임신 기간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순간 이전에 없던 무한한 사랑이 샘솟아 자신의 아이에게 지극정성을 다하게 되는 극적인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신화는 이제 막 부모가 된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출산 이후 심장 기능부터 면역 기능까지 어마어마한 신체적 변화를 겪었음에도 기대하던 모성 본능은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아 지레 겁을 먹는 이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물론 이것이 모성 자체가 허구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몸은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보호하기 위해 치밀하게 만들어졌다. 다만 모성은 가슴이 아닌 머리에서, 그것도 ‘뇌’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핵심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건강·과학 저널리스트 첼시 코나보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4개월간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회사 내 작은 유축실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고 이내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 신경과학자를 찾아 나선다. 수많은 연구와 실제 사례를 살펴본 그가 내린 결론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탁’ 하고 켜지면서 불이 들어오는 모성애의 스위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부모들이 본능과 같이 행하는 돌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는 사실 우리 뇌가 경험의 강도에 따라서 변화한 결과다. 최근의 연구자들은 아기의 존재가 다양한 방법으로 뇌를 재구성한다는 증거를 내놓았고 엄마만이 아닌 모든 부모의 뇌가 경험의 강도와 그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실상 우리는 부모가 되면서 새로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책의 제목이 모성의 뇌과학이 아닌 ‘부모됨의 뇌과학’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서 완성된다고 여겨졌던 영역이 아이와의 경험을 통해 채워진다는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수많은 과학자의 노고가 있었다. 책에 따르면 기존 통념과 맞선 연구 가운데 특히 1963년 제이 로젠블랫과 대니얼 러먼이 발표한 내용은 ‘모성 행동’에 대한 정의를 바꿨다.

이들은 실험 쥐 연구를 통해 이전까지 암컷에게 모성 행동이 타고난 것이라던 본능 이론을 뒤집었다. 어미 쥐가 새끼 쥐에게 젖을 먹이고 둥지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새끼가 해당 부모와 가까이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임을 밝혀낸 것이다. 갓 태어난 새끼를 둥지에서 떼어내면 어미 쥐의 모성 행동은 빠르게 사라졌고 다른 새끼를 위탁해도 이전에 본능으로 여겨졌던 돌보는 행동들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나아가 최근 연구에서는 육아의 과정에서 부모의 뇌에 돌봄 회로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아이가 주는 강력한 자극에 따라 점차 발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아이를 출산한 엄마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돌봄 회로를 생성할 수 있고 입양 부모를 넘어 이웃까지도 양육자가 될 수 있다.

아이가 부모의 뇌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극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사실 아기는 자극 덩어리 그 자체다. 끊임없이 울면서 소음을 일으키고 큰 머리와 비율적으로 큰 눈, 작은 턱과 동그란 볼로 보여주는 귀여움도 시각적인 자극이 된다. 포유류 새끼들에게 어느 정도 비슷한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시청각적 자극은 결과적으로 돌봄 회로에 강력한 반응을 일으키고 부모에게 단기간에 여러 경험을 축적하게 한다.

물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친 여성이 돌봄 회로 형성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저자 또한 출산에 따르는 호르몬 수치의 급증이 새로운 신경 회로 생성을 위해 뇌를 예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출산 직후 처음 며칠 동안 아이를 돌보고 장기적으로 육아를 배울 준비를 하도록 하는 신체 작용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출산이 돌봄의 시동이 될 수는 있지만, 부모로 발달하게 하는 것은 아이와의 시간이다.

이처럼 부모에 관한 연구가 그간의 오해를 해결했음에도 부모 됨의 원리를 추적하다 보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현상들을 마주하게 된다. 출산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가정의 달에 출간된 책이 예비 부모와 초보 부모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는 명확하다. 부모 됨은 순간이 아닌 과정이다. 512쪽, 2만5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