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경제·권력 판도 좌지우지… 한국이 갈 길은 온디바이스AI”[현안 인터뷰]

김성훈 기자 2024. 5. 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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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국내 1세대 AI 연구자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GPT4·클로드3 놀라운 수준
AI가 인간 넘어설 것 같냐고?
인간이 이걸 어떻게 이기겠나
정부, AI반도체만 키우지말고
SW 회사와 연계해 육성해야
해외에 ‘한국AI’ 확산 전략을
제조역량 활용 온디바이스AI
갤24, 나아갈 방향 제시 의미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 전문서점 ‘책과얽힘’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하며 인공지능(AI) 패권경쟁 속 한국의 경쟁력과 정부 지원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인터뷰 = 김성훈 차장 tarant@munhwa.com

인공지능(AI)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각국의 AI 패권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AI 전쟁에서 뒤처지면 우리나라 경제·산업이 한순간에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지난달 29일 국내 1세대 AI 연구자로 불리는 한상기(64)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만나 AI 발전 전망과 국내 관련 산업의 전략 방향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그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운영하는 과학기술 전문 서점 ‘책과얽힘’에서 진행됐다. 오는 6월 4일 열리는 문화산업포럼 2세션 좌장을 맡는 한 대표는 “나는 AI 전문가가 아니고, AI 평론가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국내 기업이 집중해야 할 분야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지점 등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생성형 AI인 챗GPT의 등장 이후 AI 기술이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까지 올라와 있나.

“현재의 AI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중에 가장 놀라운 기술이다. 지금 가장 발전된 모델 2개가 오픈AI의 ‘GPT4’와 앤스로픽의 ‘클로드3’다. 텍스트를 생성하는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는 걸 확인했다. 이미지, 비디오 생성 등이 붙으면서 굉장히 활용도가 높다. 기업에서 AI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고, 이제 AI 활용은 기본이다.”

―AI를 악용한 왜곡이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오류 등은 해결될 것인가.

“AI의 텍스트 생성에 ‘환각’ 문제가 있다. AI는 자기가 생성하는 문장이 철저하게 맞는 것인지 검증하지 않는다. 현재 GPT4의 환각률이 8.3% 정도라고 한다. 편향적이거나 차별적이어서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식을 생성하는 문제점도 있다. 이런 걸 해결하는 게 ‘얼라인먼트’(AI가 인간의 의도된 목표나 윤리적 원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제어하는 기술)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는 AI를 만들겠다는 앤스로픽이 관심을 받는 이유다.”

―앞으로 AI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

“대규모언어모델(LLM)은 예를 들면 제주 여행 추천일정을 검색해서 답해주는 것이다. 지금은 대규모멀티모달모델(LMM)로 발전하면서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 음성, 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 양식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대규모행동모델(LAM)로 변화하고 있다. ‘제주 비행기 예약해줘’ 하면 AI 비서가 이용자의 정보, 특성을 파악해서 비행시간부터 좌석 선택까지 전 과정을 알아서 처리해주는 것이다. 기업들은 당분간 이런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말한 ‘5년 내 인간 수준의 범용인공지능(AGI) 출현’은 가능할 것으로 보는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내년에 된다고까지 하던데.

“AGI가 인간 수준을 능가하는 AI라는데, 그럼 인간의 수준이 뭐냐는 질문이 나온다. AGI는 ‘인간 중에서 가장 스마트(smart)한 사람보다 더 뛰어난 AI’로 요약되는 것 같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나 샘 올트먼 오픈AI CEO 같은 사람들은 5년 안에 가능하다고 한다.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20∼50년을 얘기하다가, 이제는 ‘20년 내 50% 확률로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시점은 알 수 없더라도,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가.

“인간은 생물학적인 지능을 만들려고 해왔는데, AI는 또 다른 유형의 지능이다. 디지털 지능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곧 인간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빠르게 학습하고 전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내용을 정리하고 검토하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 지식의 전달 측면에서 비효율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AI는 내용을 그냥 복사해주기만 하면 된다. 이걸 인간이 어떻게 이기나.”

―앞으로 각국의 AI 개발 경쟁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올트먼 CEO는 ‘AI를 제어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 달라. 우리는 그대로 따르겠다’고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했다. 이어서 이런 규율을 세계로 확대, 핵으로 비유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걸 만들자고 주장한다. 유수의 AI 기업 몇 개가 모여 ‘프런티어 포럼’을 만들어서 AI 규범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AI 주권’이나 ‘AI 안보’ 논의가 제기되는 지점이다. 미국에서는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의 주도로 안보 전략 차원의 AI 보고서가 나왔는데, 이 보고서 내용대로 하나둘씩 진행 중이다. AI는 기술로 시작했지만, 전 세계 군비 경쟁과 패권주의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동 등 아직 기술이 없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언어로 AI 모델을 만들어주면서 한국의 AI를 확산해야 한다. AI가 세계 경제와 권력 판도를 크게 좌지우지한다.”

―AI 패권경쟁에서 선도국가 대열에 서야 할 텐데. 정부가 어떻게 기업을 도울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 때는 지능 정보화를 외쳤다. 외국보다 뒤떨어진 AI 연구였지만, 나름대로 이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AI의 핵심 자원이 데이터라고 봐서 AI 데이터셋 구축이 국가과제가 됐다. 이번 정부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공공 분야에 AI를 많이 쓰겠다는 것 외에 뚜렷한 전략이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AI 시대의 1년은 과거의 10년만큼 빠르게 변하는데, ‘한국의 AI 전략이 이것이다’ 하는 테마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AI 반도체 강국’으로 가자고 제시하긴 했으나, AI 반도체도 학습용 반도체와 추론용 반도체,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반도체, 로봇이나 스마트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모두 다르다. 특히 AI 반도체 기업만 키울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와 긴밀하게 연계해서 최적화 개발을 하도록 함께 육성해야 한다.”

―대학 등 연구기관에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AI 연구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나 데이터 같은 많은 자원이 필요한데, 대학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캐나다의 ‘디지털 리서치 얼라이언스(DRI)’처럼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이를 총괄하는 조직을 설치해야 한다. DRI에는 토론토대, 몬트리올대,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등이 모두 참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AI 대학원 설립만 하게 하고, ‘빵빵한’ 데이터센터는 만들어주지 않았다. 물론 모든 대학원에 네이버 수준의 데이터센터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면 중간 규모의 센터를 만들고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이걸 모든 대학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원 설립자금을 주고 끝낼 게 아니라 연구·개발(R&D)을 할 수 있는 하드웨어나 컴퓨팅을 제공해야 한다.”

―해외 AI 선진국들은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가.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에 AI 정책 기본을 다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부정했는데, AI 정책은 계승했다. 법률 제정도 노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를 이어받았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에서 연방정부 전체 AI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의회가 관련 예산도 팍팍 늘려주는 걸 보면 너무 부럽다. 우리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정책을 다 새로 만든다.”

―한국 기업들이 AI 기술 경쟁에서 집중 공략해야 할 분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가 갈 길은 온디바이스(On―Device) AI(기기에 탑재된 AI)다. 한국의 전자, 자동차, 로봇 등 제조 역량을 활용한 온디바이스 AI로 가야 한다. 삼성 갤럭시24의 AI도 진정한 온디바이스 AI라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선점한 의미가 있다. 우리 기업들이 기존 오픈AI나 앤스로픽보다 LLM을 더 잘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의미 같은데,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결국 한국어 정보를 기본으로 할 수밖에 없다. 오픈AI나 앤스로픽, 딥마인드 등도 한국어로 서비스한다고 하지만, 한국이 직접 하는 것만 못하다. 한국의 법률, 부동산, 금융 관련 데이터는 인터넷에 노출이 안 돼 있다. 이걸 활용해서 전문적인 앱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또 ‘뤼튼’처럼 여러 개의 LLM을 사용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가능하다.”

―AI 전문인력 양성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AI는 응용학문으로 일종의 엔지니어링이다. 석·박사급 AI 인력 숫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인재들이 얼마나 많은 모델을 써보고 현업에 나왔느냐가 더 중요하다. 학교에 있을 때 의미 있는 연구를 경험할 수 있는 기반을 정부가 해결해줘야 한다.”

―AI 발전이 사회 전반에 가져올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AI 등장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지적인 능력을 갖는 존재가 우리 사회에 들어왔다. 앞으로 휴머노이드가 나오면 처음엔 공장에 배치되겠지만, 나중에는 가정으로 들어와 육아나 노인 돌봄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돌봐준 로봇에 유산을 주겠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이가 부모보다 로봇에 더 애정을 느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족처럼 지낸 AI 로봇을 다른 사람이 파괴했다면, 그냥 다른 ‘제품’으로 교체 받으면 끝나는 것일까. 이런 인문학적인 주제를 어떻게 다룰지 생각해봐야 한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게 될 것인가.

“지적인 수준의 AI 활동은 2029년 정도면 가능하겠지만, 직업이 갖는 과업(task)을 AI가 해결하는 데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기보다는 인간이 AI를 주요 파트너나 조수로 쓸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기술 발전으로 완전히 사라진 직업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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