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기 200년전… 평화와 환대의 가치를 가르쳐 준 ‘서사시’[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2024. 5.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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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47) 철학 이전의 서사시
BC800년 일리아스·오뒷세이아
삶의 여러문제 대한 해답 제시
눈뜨고 보지 못할 살육 그리며
“전쟁의 다툼 그쳐라” 평화 노래
‘환대’ 인간의 근본관계로 설정
“나그네를 업신여겨서는 안돼”
폭력 대신 말로 상대잘못 교정
‘의회 민주주의’ 개념 앞서 체득
17세기 화가 야콥 요르단스(1593∼1678)가 그린 ‘폴리페모스의 동굴 안에 갇힌 오디세우스(Odysseus in the Cave of Polyphemus)’. 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 소장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와 철학에게 묻는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어떻게 하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철학에게 묻는다. 수천 년 동안 철학은 열심히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마련해 왔다. 그렇게 해서 철학은 사람들 마음의 위안이 되고, 그들의 행동이 주춤거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의구심이 생긴다. 철학 이전에는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갖지 않았던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철학 이전에도 삶은 있었고, 우리가 가진 그것과 똑같이 무거운 문제 역시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지침이 되는 풍향계 같은 철학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어깨에 얹고 있는 삶은 그저 혼란에 빠져 있었을까? 그들은 어디서도 답을 구하지 못하고 길을 찾지 못해 제자리에 주저앉았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철학 없이도 사람들이 지혜롭게 삶을 꾸렸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렇다면 철학 이전에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에게 물음을 묻고 또 답을 구했을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오디세우스와 사이렌(Ulysses and the Sirens, 1891)’.

서양에 한정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기원전 6세기에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사람이 등장했다. 이오니아 반도의 한 도시 국가 밀레토스에서 태어난 탈레스라는 사람이 그이다. 그럼 6세기 이전에는 무엇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을까? 서양에서 그것은 바로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서사시이다. 그의 서사시 두 편,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800년경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철학보다 200년 앞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 이전에, 산술적으로 보자면 적어도 200년 동안 사람들은 바로 이 서사시들로부터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서사시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었고 그러한 고민들과 해법들은 이후 고스란히 철학이 이어받는다. 철학의 주제들은 철학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평화’라는 화두를 보자. 평화만큼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 생각거리는 없을 것이다. 철학은 늘 평화의 문제에 몰두해 왔다. 그런데 이미 철학 이전에도 사람들은 서사시를 통해 평화의 문제를 사유하고 있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평화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어쩌면 다소 의외로 들릴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두 서사시는 그야말로 싸움과 살인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오뒷세이아’의 결론을 보자. 이 이야기의 결론은 바로 평화이다. 우리는 ‘오뒷세이아’의 마지막 장면을 알고 있다. 귀향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구혼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이 싸움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살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싸움에 대한 중재의 임무를 자신의 딸 아테네에게 맡기면서, 제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아들들과 형제들의 살육을 잊게 해 주자꾸나. 그리하여 이전처럼 서로 사랑하게 되어 그들에게 부와 평화가 충만하게 해 주어라.”(천병희 역) 이러한 제우스의 바람을 이어받아 여신 아테네는 인간들에게 다음처럼 말한다. “그대들은 무시무시한 전투를 중지하여 더 이상 피를 보지 말고, 지체 없이 갈라서도록 하라. 만인에게 공통된 전쟁의 다툼을 그치도록 하라.” 어지럽게 굴곡지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오뒷세이아의 이야기는 이렇게 그 복잡한 여정을 마치고서 바로 ‘평화’라는 가치에 도달하고 있다. 요컨대 평화라는 결론을 얻기 위해 오뒷세이아의 인간들은 그토록 많은 고민 속에 자신들의 삶을 전진시켜 왔던 것이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철학적 화두로 ‘환대’가 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그 만남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늘 마음 아프게 하는 난민 문제가 있다. 멀리 바라볼 것도 없이 이미 우리 주변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고 또 이주자가 있다. 여러 나라에서 와서 새롭게 가정을 꾸리는 다문화 가정이 있기도 하다. 이런 모든 종류의 만남에는 바로 ‘어떻게 타자를 환대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끼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레비나스나 데리다 같은 현대 철학자의 책을 폈을 때 환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환대 또한 서사시 ‘오뒷세이아’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난민처럼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서사시가 어떻게 환대라는 주제를 놓칠 수 있겠는가? ‘오뒷세이아’에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왕이지만 거지의 모습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나타난 오디세우스를 이렇게 환대한다. “나그네를 업신여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모든 나그네와 걸인은 제우스에게서 온다니깐요.” 또 이렇게 말한다. “축복받은 신들께서는 손님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좋아하시지 않고, 오히려 정의와 인간 된 도리에 맞는 행동을 존중하시지요.” 이 구절들은 모두, 인간들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가 환대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오디세우스 석고상.

또 다른 국면을 보자. ‘일리아스’ 초두에는 그리스군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와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의 다툼은 너무 격렬해서 심지어 칼을 뽑기 직전의 상황에 이른다. 이때 아테네 여신이 등장하여 아킬레우스를 말리며 다음처럼 말한다. “그대들 두 사람을 똑같이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염려해 주시는 흰 팔의 여신 헤라가 보내셨다. 그러니 자, 말다툼을 중지하고 칼을 빼지 말도록 하라. 다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로 그를 꾸짖도록 하라.”(천병희 역) 우리는 이 구절에서 다양한 사상적 자산을 읽어낼 수 있다. 기독교의 신 이전에, 그리스의 신들 역시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는 ‘평등’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신들(종교)의 선물인 이러한 평등의 이념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되는가? 저 구절에서 아테네 여신은 아킬레우스에게 칼을 빼지 말라고 하며, “말로 그를 꾸짖도록 하라”고 이야기한다. 폭력 대신 ‘대화’라는 화두는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의회 민주주의’의 근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평등한 인간들이 폭력이 아닌 ‘말’로 서로의 잘못을 꾸짖어 교정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러한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을 이루는 것, 즉 ‘평등’ ‘폭력에 대한 혐오’ 그리고 ‘말로 상대방과 경쟁하기’를 우리는 아테네의 저 구절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의회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배우기도 전에, 그들의 서사시를 즐기면서 의회 민주주의의 개념을 앞질러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몇몇 구절들을 통해, 철학 이전의 삶 역시 가르침을 필요로 했으며 철학이 탄생하기 이전에 그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인들에게는 서사시였다. 그리고 모든 민족과 국가가 철학 이전에, 자신들의 고유한 노래와 경전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좌표, 행동의 지침을 위한 가르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하나의 새로운 발명품이라기보다도 서사시와 같은 더 나이 많은 세계를 토양으로 삼아 자라 나온 것이 아닐까? 철학자 플라톤은 서사시와 자신의 철학 사이에 놓인 간극을 그토록 확인하고자 하였지만, 우리가 읽은 구절들은 철학이란, 철학 이전의 삶을 담은 서사시에 잔뿌리를 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철학 이전에 삶이 있었고, 삶의 고민들은 신화라는 둥지에 자리 잡으며 신화는 서사시라는 대단한 세공품을 통해 영원성을 얻는다. 그런 다음에야 철학은 건조한 듯 보이는 자신의 개념들을 신과 인간들의 저 풍성한 이야기로부터 얻어낸다. 그러므로 철학은 삶에 대한 최초의 가르침도 아니요,

마지막 가르침도 아닐 것이다. 철학을 가지지 못한 민족도 철학보다 오래되고 견고한 사유 방식으로 삶을 이끌고 있었고, 철학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사유 방식과 마주할 때보다 더 큰 깨달음 속에서 자신의 명제들과 개념들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 본문 중 언급된 책들

‘일리아스’는 그리스 최고(最古)의 서사시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트로이전쟁 마지막 해의 50일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노래한 작품이다.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10년에 걸쳐 귀향하면서 겪은 모험담을 담은 작품이다. 이 두 저작은 모두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고대 그리스 및 이후의 서구 예술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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