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스탈린이 그립다” “붉은색만 봐도 욕 나온다”[책과 삶]

박송이 기자 2024. 5. 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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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공산주의 붕괴 후 혼란 추적
20년간 1000여명 직접 만나 완성
궁핍한 일상을 겪으며 싹튼 ‘증오’
폭력적 자본주의 탓에 생긴 ‘향수’
입체적이고 다층적 목소리 담겨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이야기장수 제공

붉은 인간의 최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김하은 옮김|이야기장수 |688쪽 |2만2000원

“아침에 전철을 타면 매일매일 똑같은 그림들이 펼쳐졌어요. 기차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앉아서 뭔가를 읽고 있었어요. 다 읽은 신문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어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도요. 저와 남편은 20개의 신문을 구독했어요. 사실상 모든 월급을 신문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루종일 유리병을 삶고, 병조림을 만들었어요. 신문도 안 읽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추리 소설을 읽었어요. 책 한권을 끝내면 연달아 다른 책을 펼쳤어요. 텔레비전은 공포감을 세뇌시켰어요. 신문도 마찬가지였고요.”

“전 오랫동안 스탈린의 추종자였어요…절 포함한 모두가 그랬어요. 그 삶을 부정한다면 전 빈손으로 남게 된다고요.”

“전 붉은색만 봐도 욕지기가 납니다. 붉은 카네이션만 봐도요. 전 스탈린과 히틀러가 동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빨갱이 개자식들을 뉘른베르크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붉은 인간의 최후>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자본주의가 이식되는 과정에서의 혼란을 추적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잘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실존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비교적 날 것 그대로 배치하는 독특한 작품형식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목소리의 소설’ ‘소설-코러스’라는 새로운 장르명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붉은 인간의 최후>도 소련 해체 후 20여년간 1000여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후 완성했다. 책에는 구소련과 스탈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를 증오하며 자본주의와 시장에 몸을 던지는 인물들도 나온다. 또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에 차 있었던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변화에 대한 공포 속에서 좌절했던 이들도 있다. 작품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각각 따로 기록돼 있지만, 서로 충돌하고 겹치면서 역사서 한 줄로는 요약되지 않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역사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는 1991~2001년 이루어진 인터뷰로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91년 8월 쿠데타까지 소련의 체제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깊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한다. 2부는 2002~2012년의 인터뷰로 소련 붕괴 이후의 급격한 정치적·사회적 변화가 각 개인의 삶에 어떻게 연루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1917~1991년의 70여년 동안의 소련을 ‘마르크스-레닌주의 실험소’라고 명명하며 이 시기 공산주의는 ‘호모 소비에티쿠스’라는 독특한 인간 유형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스탈린의 대숙청, 독일의 소련 침공, 강제이주정책, 강제노동수용소,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각 개인의 증언을 통해 각자의 삶에 어떻게 자리잡았는지를 살핀다.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군에 점령당한 마을에 살았던 이들은 대학에 입학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공장에 10분만 지각해도 감옥에 가야 했다. 아이들은 전쟁 동시를 읽었고 희생과 죽음을 숭배하는 교육을 받았다. 부농을 숨겨준 아버지를 밀고한 소년 ‘파블리크 모조르프’의 일화가 칭송받았고, 이웃·친족 간의 밀고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도청을 우려해 정치적인 이야기는 부엌이나 전화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게 일상이 됐다. 물자는 부족했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궁핍했다.

붉은 인간의 최후. 이야기장수

페레스트로이카(1980년대 후반 시행된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가 시행된 이후 기록보관소가 개방되면서 이같은 역사의 민낯은 여실히 드러난다. “소련에 거주하는 1억명 중 9000만명은 데려가야 한다. 나머지 1000만명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모두 죽여야 한다.”(지노비예프. 1918) “사로잡은 부농과 부자들 중 적어도 1000여 명은 교살해야 한다.”(레닌, 1918) 소련의 역사를 관통했던 이러한 공포 체제는 외부의 적과 빈번했던 전쟁을 이유로 합리화됐고, 개인들도 이를 내면화했다. 크렘린궁의 행정관이었던 인터뷰이 N은 소비에트 체제와 공산주의의 붕괴를 안타까워하면 이같이 말한다. “스탈린부터 브레즈네프까지 전쟁을 치렀던 인물들이 국가지도자 자리에 있었습니다. 테러의 시기를 겪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의 심리는 폭력적 환경, 지속적인 공포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항상 전시동원체제였습니다. 국가가 탄생하던 순간부터요. 우리나라는 평화로운 삶을 살게 설계된 나라가 아닙니다.”

개인과 자본보다는 이념과 평등, 집단을 우선시했고, 돈이 아니라 배급쿠폰에 의해 움직였던 이들은 1980년대 후반 개혁·개방 노선과 냉전의 종식으로 소련의 체제가 조금씩 붕괴되면서 자유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들은 처음 맛 본 소중한 자유를 지키고자, 공산주의 복원을 노린 1991년 ‘8월 쿠데타’에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유가 결국 “위대하신 소비 전하”의 등장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옐친의 편에 섰던 미친놈”이라고 소개한 한 인터뷰이는 “(8월 쿠데타 때) 전 의회 건물 앞을 사수하며 탱크 밑에 깔릴 각오까지 되어 있었습니다…그들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지 자본주의를 위해서 모였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잔인한 자본주의’가 아닌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기대했던 자신이 “지나치게 순진했다”고 토로하며 공산주의 붕괴 이후 시장에 나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담배 꽁초를 주워 사람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유란 것은 알고 보니 러시아에선 줄곧 모욕당해왔던 속물근성이 회생한 것이다”고 말한다.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폭력적인 형태의 자본주의를 접하게 되면서 대중 사이에서는 소련에 대한 동경, 스탈린 숭배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텔레비전에서 소련과 관련된 수십 편의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인터넷에는 소련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수십 개의 사이트들이 개설돼 있다. 그뿐 아니라 솔로베츠기 제도나 마가단에 있는 스탈린 강제노동수용소가 관광상품으로까지 나와 있다.” 작가는 “나는 평생을 바리케이트에 살았다. 이제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며, 여전히 끝나지 않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잔재에 대해 말한다. 그는 1917년 알렉산드르 그린이 한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를 그만둔 것 같다”말을 인용한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는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핸드(중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2013년 발표된 이 작품은 국내에서 2016년 원제인 <세컨드핸드 타임>으로 출간됐다가 절판된 후, 제목을 바꿔 재출간됐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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