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근교로 떠난 지속가능한 여행 이야기

손고은 기자 2024. 5. 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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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로 떠나 시애틀을 떠난 여행. 여행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믿어서.

●Sustainable Tourism
시애틀, 그 너머의 장면

여행을 크게 이동하고, 먹고, 자는 행위로 구분한다면 시애틀에서는 나도 모르게 친환경적인 것에 소비할 확률이 높았다. 일단 시애틀에서는 플라스틱 빨대와 식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2015년부터 시애틀의 바와 카페, 레스토랑에서는 생분해 가능한 빨대와 포크, 숟가락, 식기 등의 사용을 의무화했고, 2018년부터는 아예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일회용 칫솔과 어메니티를 없애고 다회용 어메니티를 비치한 호텔, 옥상에서 양봉을 하며 꿀벌을 기르는 호텔 등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호텔을 찾기 어렵지 않았고,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식당부터 LEED* 인증을 받은 식당까지 미래 세대를 고려한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공유 자전거, 전기 스쿠터, 버스, 트롤리 등 친환경 대중교통 수단이 잘 갖춰져 있었지만 아담하고 콤팩트한 도시라 웬만한 곳은 걸어서 이동했다.

이번 여행은 시애틀에 거점을 두면서도 이미 북적거리는 관광지에 발걸음을 더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시애틀 밖으로 자주 벗어나는 쪽을 택했는데, 이동을 제외하면 오히려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로컬들과 한결 가까워진 여행이 됐다. 지속가능한 여행은 단순히 여행자가 친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하고 실천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다정한 마음에 닿아 선순환에 동참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이 직접 수확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고, 자연을 겉돌지 않고 깊게 만끽하며, 작은 것에도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로컬들과 나눈 이야기. 소소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시애틀, 그 너머의 장면에 대하여.

시애틀은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도시로 손꼽힌다. 미국 그린 빌딩 협의회에서 LEED 인증을 받은 호텔과 식당을 만나기 쉽고 팜투테이블 방식의 요리를 만날 가능성도 높은 도시다. 시애틀 사람들의 남다른 시민의식이 만든 일상 속 '룰' 안에서 여행자들도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인 행동에 동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애틀을 조금 더 친환경적으로 여행하고 싶다면 시애틀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호텔과 식당, 교통수단과 다양한 액티비티 리스트를 확인할 것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 미국의 비영리 기관 그린건축물위원회가 개발한 글로벌 친환경 건축물 인증 제도.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 건축물을 지을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웠다. 평가 점수에 따라 일반(50점 미만), 실버(50~59점), 골드(60~79점), 플래티넘(80점 이상)으로 구분된다.

*탄소발자국 |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온실가스 물질을 이산화탄소로 계량화한 수치를 의미한다.

●Wellness Woodinville & Kenmore
우딘빌에서 얻은 도파민

잘 먹고, 잘 쉬는 것. 웰니스에 도달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시애틀을 떠났다. 좀 더 의식적으로 잘 먹고, 잘 쉬기 위해. 우딘빌은 시애틀에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워싱턴주에서 생산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룸이 130여 개나 있고 건강한 제철 음식을 만드는 식당과 자연 속에서 즐기는 여러 액티비티가 많아 워싱턴주에서 근사한 웰니스 여행지로 꼽힌다.

최근 미국에서는 콜드 플런지가 유행이다. 파이어 사우나에서는 아름다운 라벤더 밭을 감상하며 콜드 플런지와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

요즘 우딘빌에서는 아침 콜드 플런지(Cold Plunge)와 사우나로 건강 세포부터 깨우는 게 유행이다. 콜드 플런지는 스트레스 해소와 혈압 조절에 효과가 있기로 알려져 최근 미국 전역에서도 인기 있는 챌린지 중 하나다. 섭씨 3~6도의 차가운 물이 담긴 야외 탱크 속에서 1분에서 최대 5분까지 버티는 것.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냉수 샤워보다 시간이 길고, 신체가 받아들이는 충격이 세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는 게 효과적이다.

파이어 사우나(Fyre Sauna)에선 콜드 플런지 후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데우기를 서너 번 반복한다. 손가락만 살짝 넣어도 코끝이 찌릿할 정도로 차가운 물속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온몸에 닭살이 돋고 머리가 띵 할 정도로 진짜 진짜(두 번 강조해야 할 만큼) 차갑다. '얼어 죽겠다'라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는 1분이 10분처럼 지났다. 그런데 웬걸. 딱 한 번만 해보겠다는 심산으로 시작한 챌린지는 따끈한 사우나 이후 두 번이나 더 이어졌다. 물속에서 버티는 시간도 10초씩 늘어났다. 작은 성취감에 중독된 건지, 콜드 플런지의 가장 큰 효과로 알려진 도파민이 정말 생성된 건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 고통스러웠는데 건강한 에너지가 마구마구 샘솟았다.

우딘빌에서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레스토랑 바킹 프로그(Barking Frog)의 메인 셰프 딜런 헤릭(Dylan Herrick)
바킹 프로그는 가까운 지역 농장에서 수확한 제철 식재료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브런치 메뉴로는 게살을 올린 에그 베네딕트를 추천한다. 하루 종일 든든하다

콜드 플런지를 마치고는 와인 한 캔을 딸칵, 시원하게 열었다. 파이어 사우나 근처 구스 리지(Goose Ridge) 와이너리에서 만든 피노 그리(Pinot Gris) 캔와인이다. 캔은 유리병보다 가볍고 부피도 적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친환경적인 소재로 꼽힌다. 캔와인이라는 심리적 거리감만 줄이면 된다. 구스 리지 와이너리는 와인 한 병 분량을 두 캔에 압축해 담았고, 여행자는 세 병 분량의 캔와인 한 묶음(여섯 캔)을 벅찬 마음으로 가방에 담는다.

구스 리지 와이너리에서 선보인 종이팩과 캔을 이용한 와인. 유리병보다 가벼워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Save the green, kenmore
The Lodge
최선의 선택은 항상 옳다

초록을 머금은 숲속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 본 사람이라면 안다. 마음속을 헤집던 고민들을 포근하게 품어 주는 기분을. 그래서 또다시 시애틀 경계를 넘는다. 켄모어(Kenmore)에 있는 세인트 에드워드 주립공원(St. Edward Park)이다. 우딘빌에서도 멀지 않다.

더 롯지는 세인트 에드워드 신학교를 개조한 호텔이다. 호텔 곳곳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다양한 그림과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세인트 에드워드 주립공원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76년까지 세인트 에드워드 신학교에 속한 부지였다. 1976년 세인트 에드워드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됐지만 당시 대주교의 바람에 따라 공원 대부분의 부지는 이듬해 워싱턴주에 매각돼 주립공원이 됐다. 아름다운 호수와 숲을 가진 149만여 평방미터에 달하는 땅이었다. 부동산 개발로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지역 주민들이 쉽게 오가며 오래오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의 넉넉한 마음에 세인트 에드워드 주립공원은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숲이 되었다.

더 롯지는 세인트 에드워드 신학교를 개조한 호텔이다. 호텔 곳곳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다양한 그림과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공원 안에 쏙 박힌 세인트 에드워드 신학교는 2017년 '더 롯지(The Lodge)'로 재탄생했다. 굳이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지 않고 기존의 건축물을 최대한 보존하고 개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 안에서는 가까운 지역 농장에서 공수한 유기농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정원에서 직접 채소를 기르며,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게 숲속을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닦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를 지원하기도 한다. 매순간 다음 세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결정하는 곳에 이왕이면 자주, 종종 다가가는 것. 여행자가 지속적으로 취해야 할 작은 행동이다.

●Oyster of Washington
Savor the Wild Tours
사계절 석화의 맛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석화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일 년 내내 수온이 낮아 석화가 자연적으로 생성되기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다. 차가운 바다 속 석화가 자라는 속도도 약 1년 정도로 다른 지역에 비해 빠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참굴(Pacific Oyster)을 가장 많이 만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양도 양이지만 뽀얗고 통통한 양질의 석화는 사계절 식재료로 자부심도 대단하다. 게다가 워싱턴주에서 석화 양식은 자연 친화적인 양식업으로 꼽힌다. 밀물에 밀려온 식물성 플랑크톤을 섭취해 자랄 수 있도록 그물을 쳐 최소한의 공간만 만들어 양식하는 방법을 주로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석화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워싱턴주에서 생산된 신선한 석화를 저렴하고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 않지만, 겨울의 맛은 사랑한다. 여기서 겨울의 맛은 단연 굴을 의미한다. 실하게 살이 오른 굴을 밥 대신 먹는 날도 많다. 겨울 석화의 참맛을 모르지 않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트리튼 코브 타이드랜드(Triton Cove Tidelands)로 갔다. 생각해 보니 석화는 식당에서 주문하거나 집으로 배달시켜 먹어 봤지, 지천으로 널려 있는 풍경은 처음이다. 손에는 작은 양동이와 삽, 칼과 장갑이 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자연산 석화를 캐는 것. 안젤라 셴(Angela Shen)이 팁을 하나 준다. 먹을 만한 크기의 석화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 양동이를 뒤집어 놓고 앉으란다. 주변으로 자연산 석화를 줄줄이 만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석화를 캐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설렁설렁 둘러봐도 전부 먹을 만한 것들이다. 안젤라의 말대로 아예 자리를 펴고 앉아 석화를 깠다. 움푹 패인 부분을 칼로 살금살금 비집으니 단단한 껍질이 쉽게 쩍 열린다. 트리튼 코브 타이드랜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종은 하마하마(Hama Hama)다. 알이 굵고 멜론맛에서 시작해 오이맛으로 마무리되는 맛이라는데 알듯 말듯 어려운 맛이다. 분명한 건 채집한 석화를 식탁까지 데려갈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레몬즙을 뿌려 호로록, 잘게 다진 쪽파를 올리고 샴페인 식초 두어 방울을 떨어뜨려 호로록, 소금을 살짝 얹어 호로록, 껍데기가 금세 수북하게 쌓인다. 빈껍데기는 그대로 자연에 두고 와도 된다. 그야말로 탄소배출량 0의 식사다.

Savor the Wild Tours
안젤라 셴과 함께하는 미식 투어다. 그녀를 따라 워싱턴주에서 나는 야생 버섯이나 석화 채집에 참여하는 투어로 야생미가 넘친다. 채집 후에는 아담한 해변에 마련된 테이블 위로 와인과 함께 그녀가 정성껏 만든 3코스의 식사가 오른다.

●People of San Juan Island
추억을 매일 추억하고 싶어서
Westcoot Bay Shellfish Co.

시애틀 북쪽, 경비행기로 40분 거리 산후안 섬(San Juan Island)에서 에릭 앤더슨(Erik Anderson)을 만났다. 워싱턴주의 석화를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삼고 석화 양식업에 뛰어든 그다.

1990년대 산후안 섬에는 웨스트코트 베이 씨 팜(Westcoot Bay Sea Farms)이 조용한 유명세를 떨쳤다. 규모는 작지만 양질의 석화를 수확하는 양식장이었다. 당시 이곳에서는 만의 지형을 활용해 그물망 안에서 석화를 기르는, 다소 실험적인 방법을 택했는데 얇은 껍질 속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입소문을 타며 북미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고급 레스토랑들의 메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당시 소유주가 점차 노쇠해지며 양식 사업의 규모도 점점 줄어들었고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양식장이 매물로 나왔지만,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에릭 앤더슨(사진 왼쪽)은 산후안 섬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웨스트코트 베이 씨 팜 양식장을 2013년 인수했다. 워싱턴주의 석화를 지역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이어 가야 할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에릭이 황폐해진 양식장을 인수하게 된 건 2013년이 되어서다. 그가 10대였을 당시 헨리 아일랜드(Henry Island)에 있던 아버지의 별장에서 보트를 타고 웨스트코트 베이로 가 석화를 먹으며 데이트를 즐기던 기억 덕분이다. 30여 년이 지나 에릭은 당시 함께 데이트를 했던 아내와 헨리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새로운 정착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양식장을 안타깝게 봤다. 마치 자신들의 추억을 잃고 있는 것처럼. 큰 결심이었고 쉽지 않은 길이었다. 양식장을 재정비하고 그물을 쳐 석화와 홍합, 조개 등을 다시 바다에 심었다. 양식업에 대한 공부도 필요했다.

하지만 에릭 부부에겐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100% 플랑크톤만 먹고 자란 석화의 달콤한 맛, 그 맛을 느끼기 위해 웨스트코트 베이를 찾는 사람들, 그로 인해 인구 7,000명의 작은 지역 사회에 발생하게 될 경제적 가치, 해양에 해를 끼치지 않아 두고두고 이어 갈 양식법까지, 항상성이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확신 말이다. 그렇게 에릭 부부의 손길로 재탄생한 웨스트코트 베이 조개 양식장(Westcoot Bay Shellfish Co.). 그곳에서 맛본 석화 중에는 올림피아 굴이 가장 부드럽고 달콤했다. 다시 찾고 싶은 맛이 확실했다.

San Juan Island Sea Salt

20대 청년 시절 브래디(Brady)는 맑은 바닷물을 끓여 하얀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사랑했다. 하얗고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조각.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그 조각을 좇아 2012년 산후안 섬에 정착했다.

소금이 만들어지는 순간. 하얀 결정체가 바로 천일염이다
브래디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천일염 양식. 천일염뿐만 아니라 다양한 맛을 가진 소금과 후추 등을 개발하고 있다

바닷물을 소금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과 바람이다. 빠른 수확을 위해 가스나 전기를 이용할 수 있지만 브래디는 느리더라도 좀 더 친환경적인 방법을 택했다. 오직 태양으로 열을 발생시키는 온실 속에서 수분을 날리고 바람에 자연 건조시키는 것. 천일염이다. 게다가 브래디는 실험 정신과 행동력이 뛰어난 편이다. 브래디가 운영하는 소금 가게는 연구소에 가깝다. 천일염뿐만 아니라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 등을 섞어 30여 가지 맛의 소금을 개발했다. 타코맛 소금, 피클맛 소금, 스리라차맛 소금, 김치맛 소금(!) 등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소금들이다.

●Virtuous Cycle of Seattle
Pike Place Market
선순환의 실제성

나는 SNS를 위한 맛집이나 카페보다 조금이라도 세상에 유의미한 행동을 실천하는 곳에 소비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대체로 그런 선택은 화려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꽤 깊은 온기를 남긴다.

그래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1907년 시작해 무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시애틀의 전통 시장이다. 시장에 자리 잡은 점포만 200여 개로 적지 않고 연간 평균 방문객수도 1,000만명이 넘는다. 특별히 신선 식재료를 살 일이 없는 시애틀 여행자들도 이곳을 찾는다. 단순히 오랜 역사를 가진 대규모 시장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닐 테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중심으로 모이는 다정한 마음에 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시애틀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언제나 북적이는 시장은 아침 일찍 방문하길 추천한다

대표적으로 돼지 동상, 레이첼이 있다. 시장 입구에 떡하니 자리한 250kg에 이르는 커다란 돼지 동상은 어려운 이웃을 위한 저금통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재단은 매년 저금통에 모인 기부금을 시장의 자원봉사자, 노인 센터, 아동 돌봄 센터, 푸드 뱅크 등에 전달한다. 또 시장 옥상에는 비밀 정원이 하나 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기른 채소 등 여러 식재료를 푸드 뱅크에 지원하고 있다. 모두 자발적으로 시작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기특할 수밖에. 주변을 살피는 따뜻한 커뮤니티에 따뜻한 발걸음이 모인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건너편에는 40년 동안 중국식 디저트와 빵을 굽는 미 섬 페이스트리(Mee Sum Pastry)가 있다. 돼지고기를 넣어 둥글게 빚은 홈보(Hombow)가 인기 메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입구 앞에 있는 생선가게. 손님이 고른 생선을 직원에게 휙 던지는 유쾌한 퍼포먼스로 '플라잉 피시(Flying Fish)' 가게로도 유명하다

훈훈한 이야기는 아트리움 키친(Atrium Kitchen)의 셰프 트라시 칼데론(Traci Calderon)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아트리움 키친은 마켓 투 테이블(Market to Table)을 선보이는 오픈 키친. 셰프인 그녀를 따라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함께 요리해 먹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의 식재료 유통 과정을 단축하는 데 스스로 동참하고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섭취해 얻는 에너지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상인들과 가까운 그녀의 찬스로 후한 인심이 넘친다.

아트리움 키친의 셰프 트라시 칼데론. 그녀와 함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식재료를 구입해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아트리움 키친은 매주 목요일 아침 평소보다 더 바쁘다. 엄청난 양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시작된 배고픈 노인들을 위한 무료 식사 프로젝트다. 아트리움 키친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상과 단절되며 더 극심한 굶주림에 빠진 이웃을 위해 2020년 3월부터 무료 식사 프로그램을 월 단위에서 주 단위로 확대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어려운 이웃에게 공유한 식사는 자그마치 10만 끼 이상이다. 게다가 그녀는 음식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나의 한 끼와 어려운 이웃의 한 끼를 달리하지 않고, 당장 굶주림을 때울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영양을 갖춘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나의 한 끼가 그녀의 다정한 마음에 힘을 보탤 수 있어 감사한 하루다. 분명한 선순환이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시애틀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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