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음악에 맞춰 1분 두둠칫…광장에서 치러질 메달 배틀 [ESC]

한겨레 2024. 5. 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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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올림픽 정식종목 브레이킹
1970년대 시작된 뉴욕 빈민가 문화, 2024 파리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심판 5명이 1대1 배틀 판정…신체·예술·해석능력과 독창성 평가 합산
대한민국, 2000년대 최전성기 뒤 주춤…6월 대회서 올림픽 진출 노려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2024 나루 스트릿 댄스 페스티벌’에서 한 참가자가 한 손을 바닥에 짚고 토머스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와아!” 박수와 탄성이 쏟아졌다.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팽이처럼 돌던 브레이킹 댄서가 이내 머리를 땅에 대고 회전을 이어갔다.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배틀을 구경했다.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린아이들은 무대에 바짝 자리를 잡고, 노부부는 자전거를 세워놓고 응원을 시작했다. 길에는 휠체어와 유모차까지 나란히 놓여 댄서들의 춤을 구경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2024 나루 스트릿 댄스 페스티벌’의 브레이킹 배틀 현장이다. 광진문화재단과 지역 예술단체 ‘엠비크루’가 함께 만들어온 행사로 올해로 3회차를 맞았다. 엠비크루는 2002년부터 20년 넘게 국내 브레이킹 댄스계에서 유수의 댄서를 배출했다. 브레이킹이 2024 파리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이날 무대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엠비크루의 단장 비보이 라쿤(박재형·38)은 브레이킹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이날 행사를 주최했다.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브레이킹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져 있는데요, 모두가 함께 브레이킹 축제를 즐기자는 취지로 행사를 만들었습니다. 브레이킹은 어려운 기술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쉬운 동작부터 시작해 누구나 도전하고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왕정이 무너진 콩코르드 광장에서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2024 나루 스트릿 댄스 페스티벌’에서 브레이킹 2 대 2 배틀 본선의 한 참가자가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식종목 심사 과정에서 신체성, 기술, 경쟁, 규칙, 제도화, 폭 넓은 지지층 여부 등을 꼼꼼히 따진다.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고 남녀 모두 출전할 수 있어야 하며 상업성도 갖춰야 한다. 유명하고 인기 있는 스포츠여도 이런 기준에 맞지 않으면 퇴출된다. 이번 올림픽부터는 야구와 가라테가 정식종목에서 빠지고 브레이킹을 포함해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 서핑이 추가된다.

브레이킹은 1970년대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빈민가에서 길거리 문화로 시작해 빠르게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레드불, 몬스터 에너지, 아디다스, 지쇼크(G-SHOCK), 푸마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브레이킹댄서를 후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씨제이(CJ) 비비고가 스폰서다. ‘레드불 비시(BC) 원’, ‘배틀 오브 더 이어’, ‘프리스타일 세션’, ‘유케이(UK) 비보이 챔피언십’, ‘알(R)16 코리아’ 등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세계 5대 브레이킹 대회 역시 인기와 대중성을 증명한다. 브레이킹 문화는 상대에 대한 경계와 저항을 댄스 배틀로 상징화했다. 경쟁적인 속성은 물론 고도의 신체적 능력을 요구해 볼거리가 다채롭다. 대중이 환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비보이 라쿤이 생각하는 스포츠로서 브레이킹의 매력은 장소와 시간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기 종목은 골대가, 마라톤은 42.195㎞의 주로가,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아이스링크가 필요하잖아요. 브레이킹은 평평한 바닥만 있으면 돼요.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자기 춤을 보여줄 수 있어요.”

2024 파리올림픽에서 브레이킹 경기가 열릴 콩코르드 광장. 파리 2024 누리집 갈무리

2024 파리올림픽의 브레이킹 무대는 콩코르드 광장이다.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왕정을 무너뜨린 상징적인 장소에서 배틀이 진행되는 것이다. 대회 막바지인 8월9~10일, 16명의 비보이와 16명의 비걸이 참여해 금·은·동 6개의 메달을 두고 일대일 토너먼트 배틀을 펼친다. 디제이(DJ)가 재생하는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1분 이내로 춤을 춰야 한다.

브레이킹 배틀의 승패는 심판이 판정한다. 이전의 브레이킹 배틀은 주로 존경받는 댄서를 ‘저지’로 정하고 그가 주관적으로 승패를 판단했다. 올림픽 종목의 기준 중 제도화와 규칙 항목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세계댄스스포츠연맹(WDSF)이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원하는 형태로 룰을 제정하고 판정 시스템을 마련했다. 트리비움(Trivium)이라는 표준화 채점표다. 트리비움은 신체적·예술적·해석적 능력을 바탕으로 한 평가로 구성돼 있다. 어렵고 정교하며 완벽한 동작,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동작, 음악과 현장 상황에 어울리는 동작을 판단해 계량화한 지표에 기입하는 것이다. 심판은 5명으로 구성되며 최종 합산 점수로 승자를 결정한다. 다른 선수를 따라 하거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감점 요인이 된다. 상대를 비하하거나 성적·인종차별적인 퍼포먼스는 부정행위가 된다.

세계선수권대회와 대륙별선수권대회 남녀 우승자 12명에게는 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주어진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선수가 없다. 오는 6월까지 진행될 올림픽퀄리파이어시리즈(OQS)에서 승리한 남녀 각각 10명이 본선에 나간다. 우리나라 대표로는 홍텐·윙·킬(이상 비보이)과 스태리·프레시벨라(이상 비걸)가 본선 진출에 도전한다.

2023 레드불 비시 원 결승전에서 필 위저드(오른쪽)와 맞붙은 비보이 홍텐. 홍텐이 우승했다. 레드불 누리집 갈무리

미국·일본·프랑스 등 ‘브레이킹 강국’

비보이 헤디(최승빈·30)는 2022년 항저우아시안게임과 그해 서울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느라 진천선수촌에 입소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대표 브레이킹 댄서다. ‘나루 스트릿 댄스 페스티벌’의 저지로도 참여한 그에게 브레이킹에서 높은 점수를 딸 수 있는 훈련법을 물었다.

“브레이킹 동작을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운동량이 워낙에 많아요. 과격한 움직임을 감당하다 보니 브레이크댄서들은 손목, 발목, 무릎, 허리, 특히 어깨 회전근개 파열 등의 부상이 많아요. 연습 전후 스트레칭이 필수죠. 연습 중 무리가 가는 부위가 있다면 따로 마사지를 받기도 합니다.” 헤디는 진천선수촌에서 근력과 스피드를 향상할 수 있는 파워리프팅(스쾃,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등 바벨을 들어 근육을 키우는 운동)과 플라이오메트릭(점핑 런지, 마운틴 클라이머 등 맨몸으로 하는 고강도 고속 운동) 등의 훈련을 병행했다. 주요 브레이킹 기술로는 △등을 바닥에 대고 다리를 뻗은 채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윈드밀 △팔로 바닥을 짚고 물구나무를 선 자세에서 다리를 풍차처럼 돌리며 회전하는 플레어(또는 토머스), 엎드린 상태에서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팽이처럼 도는 핸드글라이더, 한 손으로 물구나무선 채 회전하는 나인틴, 한 손으로 물구나무서서 몸을 지탱한 상태로 손을 바꿔가며 회전하는 에어트랙 등이 있다. 어려운 기술 하나를 성공하기까지 1~2년이 걸리기도 한다.

브레이킹 댄서는 자신의 지향점을 담아 특별한 이름을 만든다. 올림픽에서는 본명과 함께 ‘브레이킹 네임’을 함께 기재한다. 소속 크루가 소개되는 것도 특별하다. 비보이 헤디는 “힙합 문화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라 올림픽에서도 존중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의상에는 규제가 있다. 선수들은 올림픽 30일 전 미리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상하의와 액세서리, 신발 등을 허가받아야 한다. 스트리트 배틀에서는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된 현란한 옷차림이 올림픽에서 활용되기 어렵지만 온전히 춤에 집중해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022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최초 브레이킹 종목 메달리스트가 된 비보이 홍텐. 항저우아시안게임 누리집 갈무리

우리나라 브레이킹 문화는 2000년대에 눈부시게 성장했다. 2002년 비보이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 댄스배틀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라이벌이 없을 만큼 최강국이었다. 압도적인 연습량과 한국인 특유의 끈기로 이뤄낸 결과였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브레이킹 행사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의 브레이킹은 2010년 중반부터 하향세를 보였다. 케이(K)팝과 ‘쇼미더머니’를 중심으로 한 랩이 인기를 끌면서 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멀어졌다. 그사이 미국·일본·프랑스가 브레이킹 강국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고 네덜란드·러시아·이탈리아와 남미 국가도 빠르게 성장했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올림픽과 2021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미 세계 각국이 골고루 메달을 나눠 가졌다. 2020년 12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브레이킹을 정식 종목으로 발표한 이후에는 더 많은 국가가 선수 육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보이 헤디는 종주국인 미국, 이웃나라 캐나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한국의 선전을 기대한다고 했다. “첫 올림픽이라 뭔가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브레이킹 신에서 두각을 보여왔던 대한민국이기에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고, 이 문화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해요.”

조서형 지큐코리아 웹에디터

파리올림픽 브레이킹 즐기는 법…비트에 몸 맡기면 나도 ‘저지’

나루 스트릿 댄스 페스티벌에서 손을 짚고 회전하는 브레이킹 장면을 한 관객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종목이 된 브레이킹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25년차 브레이킹 댄서이자 6년째 브레이킹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비보이 질럿(강재성·38)은 배틀을 심판의 마음으로 관전하라고 했다.

“첫 올림픽이다 보니 저 같은 비보이도 규칙 등 세세한 정보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대신 각자 이 무대의 저지가 된 것처럼 평가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저 비보이의 춤이 멋지다, 저 비걸의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며 승패를 가늠해보세요.” 내가 심판이 돼 승패를 가린다고 생각하며 무대를 꼼꼼히 보면 좋아하는 브레이킹 스타일이 생기고 문화에 한층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레이킹은 비보이·비걸과 관객이 음악을 매개로 소통하는 장르다. 질럿은 음악과 흐름을 타는 것 역시 브레이킹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했다. “선수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 얼마나 오래 물구나무를 섰는지 계산하기보다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이 종목을 즐기면 좋겠어요.” 브레이킹에서 음악은 중요하다. 댄서들도 무대 위에서 처음 듣는 음악을 마주하고 춤을 추는 경우가 많다. “이 종목은 음악 위에서 나의 춤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싸움이에요. 낯선 음악에 춤을 추게 되더라도 빠르게 흐름을 읽고 풀어나가야 하죠. 관객은 그저 그 흐름을 즐기기만 해도 충분해요.”

‘나루 스트릿 댄스 페스티벌’의 관람객은 브레이킹 배틀 현장을 어떻게 즐겼을까? 자영업을 하는 김현욱(38)씨는 5년 전부터 유튜브 등을 통해 브레이킹 배틀을 즐겼다. “브레이킹의 화려한 동작이 눈길을 끌어 보게 되었어요. 댄서마다 시그니처 동작이 있어요. 자기가 만든 유니크한 자세인데요, 같은 헤드스핀이라도 특별히 빠르게 돈다거나 다리의 각도를 달리하거나 동작의 앞뒤로 연결 동작을 만들면서 눈길을 끌어요. 이 댄서가 어떤 점에서 남과 다른 특별함을 가졌는지 살피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오는 7월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수도권 전역에서 열리는 댄스 배틀을 ‘직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루 스트릿 댄스 페스티벌’의 사회를 맡은 비보이 질럿은 “오늘 배틀에는 초심자를 비롯한 다양한 도전자가 참여해 새로운 분위기의 브레이킹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기뻐하며 말을 이었다. “브레이킹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선정되면서 매주 서울과 경기 전역에서 배틀이 열리고 있어요. 춤이 스포츠가 되는 일에 찬성과 반대 의견이 모두 있었는데 저는 매우 찬성합니다. 올림픽은 전세계인의 축제잖아요. 그 안에 브레이킹이 포함된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행복합니다. 브레이킹이 더 알려지고 저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조서형 지큐코리아 웹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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