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물떼새 돌아왔는데…세종보 재가동은 ‘생태학살’

이종섭 기자 2024. 5. 3.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8년 금강 보 가동 멈추자
모래톱 등 서식 공간 회복돼
물길 상시 개방 결정됐지만
정권 바뀐 뒤 ‘돌연 취소’ 논란
시민들이 최근 세종시 합강공원 인근 하중도에서 발견한 흰목물떼새의 알.

“저기 물떼새 우는 소리 들리죠. 저쪽으로 가보죠.”

지난달 29일 세종시 합강공원 인근에서 고무보트에 오른 황성아 세종환경운동연합 대표의 말이 끝나자 물떼새 한 쌍이 물 위를 날아올랐다. 황 대표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노를 저어 도착한 하중도(하천 중간에 퇴적물이 쌓여 생긴 섬)에는 너른 모래·자갈톱이 펼쳐져 있었다.

합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내리고 잠시 후 탄성이 들려왔다. “여기 알이 있네요.”

동그랗게 자갈로 둘린 둥지 안에 3㎝ 정도 크기의 얼룩덜룩한 타원형 새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한 흰목물떼새 알이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합강습지는 하천 폭이 넓고 유속이 느려 모래톱과 자갈톱이 발달해 있다”며 “물떼새들에게 최고의 서식처이자 번식처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합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은 이날 물떼새 번식지 조사를 위해 금강을 찾았다. 물떼새는 주로 강가의 모래밭이나 자갈밭에서 번식한다. 물떼새 중에서도 희귀종에 속하는 흰목물떼새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으로 분류했다. 하천 준설 등으로 서식지를 잃어가면서 개체수가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흰목물떼새가 합강 지역을 중심으로 금강에서 다시 발견된 건 최근의 일이다. 4대강 사업으로 합강습지 아래에 세종보가 설치된 후 모래톱 등이 사라지자 자취를 감췄던 흰목물떼새는 2018년 세종보 수문 개방으로 서식 공간이 회복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처장은 “세종보 상류 모래톱 2곳과 하중도 2곳에서만 물떼새 성체 28개체와 둥지 23개를 확인했고, 흰목물떼새 알 2개와 꼬마물떼새 알 1개도 발견했다”며 “곧 본격적인 산란기인데 세종보가 재가동되면 물떼새 둥지와 알은 모두 수장된다. 이는 생태학살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보 가동이 중단됐던 금강에선 보를 재가동할 준비가 한창이다. 합강습지에서 7㎞ 정도 떨어진 세종보에서는 이날도 보 수리에 동원된 굴착기와 트럭들이 바삐 오갔다.

금강에는 4대강 사업으로 보 3개가 설치됐다. 2012년 6월 준공된 세종보는 2017년까지 가동됐다가 멈췄다. 이후 공주보와 백제보도 순차적으로 수문을 열면서 금강에는 보 가동 이후 사라졌던 생명체들이 되돌아왔다.

환경부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은 2021년 9월 보 개방 전후 4년간의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생태계 건강성 개선을 확인했다는 자료를 내놨다. 특히 흰목물떼새는 금강의 생태적 건강성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종’ 중 하나였다.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환경부 자료를 토대로 2021년 1월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을 마련해 세종·공주보 해체와 백제보 상시 개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정권이 교체된 이후 이 결정을 뒤집었고, 환경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보 가동을 정상화할 계획이다.

87개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은 지난달 30일부터 세종보 상류 한두리대교 아래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임도훈 시민행동 간사는 “5월 중순 이후 보 재가동 가능성이 있다”며 “물떼새 둥지가 수몰되고 금강은 다시 녹조와 악취가 가득한 강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물이 차면 보트를 띄워서라도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