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정위가 촉발한 쿠팡 '상품 진열' 논란, 해법은

안승호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전 유통학회장) 2024. 5. 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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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

국내 어느 이마트를 가면 '노브랜드' PB(자체 브랜드) 감자칩과 콜라가 매장 입구에 포진해 있다. 고물가에 허덕이는 소비자가 일반 브랜드와 비교해 저렴한 상품을 먼저 찾는 점을 고려한 상품 진열 전략이다. 가전 양판점을 가도 애플이나 삼성, 다이슨 같은 인기 신상품을 입구에 먼저 진열하는 경우가 많다. "신상품 출시 기념 20% 할인"같은 문구를 걸어두고 말이다. 올리브영 같은 화장품 매장도 입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할인폭이 넓은 물티슈나 화장솜, 샴푸 같은 상품을 '40% 할인' 같은 문구를 써두고 판촉하기도 한다.

이런 접근법은 온라인 유통업체도 마찬가지다. 애플이나 삼성 스마트폰이 새롭게 출시되면, 미국 월마트나 베스트바이, 타깃 등 다국적 유통공룡처럼 검색창 최상단에 진열한다.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출시날 사전예약자들이 새벽부터 100m 긴 줄을 서고도 100만원이 훌쩍 넘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은 만큼, 온라인에서 편리하고 빠르게 구매하는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제품은 '글로벌 베스트셀러'다. 당연히 온라인 유통업체도 오프라인과 비슷한 상품진열 전략을 택하고 있다.

"유통업체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유통업의 본질이고,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유통업체는 동일하게 운영한다." 최근 쿠팡이 공정위 조사에 반박하는 발표가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쿠팡은 애플이나 삼성 신상품을 포함해 다양한 무료배송 상품도 공정위가 '알고리즘 조작'이라고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PB상품 밀어주기' 의혹을 조사했고 조만간 제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쿠팡의 발표를 보면 실제 조사의 범위가 일반 상품으로도 확대됐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유통기업은 대부분 판매량이나 고객 선호도, 상품평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구매 가능성이 높은 상품을 먼저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만약 공정위가 이 같은 과정에 관련된 알고리즘을 문제로 삼는다면 이는 상품진열 방식을 문제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상품진열은 모든 온라인 업체의 필수 기능인 만큼 논란은 쿠팡만의 이슈가 아니게 된다. 또한 최근 최첨단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한 상품 추천과 상품 진열 알고리즘은 유통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비즈니스 영역이 되고 있다. 단돈 10원이 비싸거나, 소비자의 구미가 당기는 상품을 제대로 마케팅하지 않으면 하루 매출은 급락한다. 유통업체가 소비자의 성향을 깊숙이 파악해 시시각각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숙명'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미국 등 해외에서도 유통업체의 '상품진열'을 규제한 경우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글로벌 유통업계는 소비자를 한명이라도 붙잡을 '초개인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국내 이커머스는 고객의 관심사와 가격 메리트 등을 따져 개인별 맞춤형 상품 화면을 배열한기 시작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브랜드가 존재하여 소비자가 모든 대안을 살펴볼 수 없는데다 소비자별로 취향과 유통사를 이용하는 패턴이 모두 다른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쇼핑몰들이 획일적으로 검색창 최상단엔 A상품, 아래엔 B상품, C상품을 특정 원칙에 맞춰 진열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저해하는 일일 것이다. 일률적 잣대를 들이대는 규제는 개인화의 효율성과 기업 나름대로의 장점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유통기업에게 상품 진열은 비즈니스의 근간이자 경쟁우위 요소다. 중립성이 강조될 수 있는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이나 네이버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공정한 경쟁의 장을 활성화하는 것은 공정위의 임무다. 그러나 소비자 다수의 편익을 저해하고 유통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신중을 가해야 한다. "소비자가 유통업체에서 진짜 먼저 알려주기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의 해답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안승호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전 유통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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