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 끊습니다" 공무원 들들 볶는 '악성민원' 강력 대응
민원인 폭언·성희롱 땐 통화내용 녹음·종료 가능
빠르면 하반기부터 현장 적용…전담조직도 마련
앞으로 전화로 욕설이나 협박, 성희롱 등의 폭언을 들은 민원 담당 공무원은 통화를 강제로 종료할 수 있다. 또 민원통화의 모든 내용이 녹음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일 국무총리 주재 제38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확정해 발표했다. 지난 3월 김포시 공무원이 민원전화 폭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대내·외 요구가 거세지면서 마련된 조치로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적용된다. 주로 △악성민원 사전 예방 및 조기 차단 △악성민원 대응 및 피해공무원 보호 △민원처리 개선 및 서비스 품질 제고 △민원공무원 사기진작 등이 핵심 골자다.
행안부는 우선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던 악성민원을 위법행위와 공무방해 행위로 규정하고 그 유형을 세분화해 대응방안을 각 기관에 안내할 예정이다.
특히 악성민원 사전 차단 대책을 처음으로 도입한다. 지금까진 민원인이 욕설을 하거나 민원과 관계없는 얘기를 해도 민원공무원은 그대로 듣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민원인의 욕설·성희롱 등 폭언을 들은 민원공무원이 통화를 일방적으로 끊을 수 있다. 기관별로 통화 1회 권장시간을 설정하고 부당한 요구 등으로 시간이 초과해도 통화를 종료할 수 있다.
민원통화 내용 전체도 녹음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민원인의 통화녹음은 폭언 우려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정부는 민원담당 공무원을 민간기업 전화상담원과 같은 수준으로 보호하기 위해 통화내용 전체를 녹음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아울러 행정기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공무원의 개인정보 공개 수준을 조정하고 악성민원으로 피해를 입은 공무원을 위한 전담 대응 조직을 운영한다. 피해를 입은 공무원에 대해선 6일 이내의 공무상 병가 사유를 명시해 일시적으로 업무에서 제외한다.
행안부는 이번 대책이 정당한 민원업무엔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민원취지와 배경, 업무방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종결 가능한 민원 대상을 신중하게 판단하겠단 방침이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배경엔 최근 3개월간 청년 공무원 5명의 극단적 선택이 공직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기 때문이다.
민원인의 폭언 등 위법행위는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든 수준으로 △2019년 3만8054건 △2020년 4만6079건 △2021년 5만1883건 △2022년 4만1559건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민원업무는 이미 공직사회 내부에선 기피부서로 자리 잡으면서 이 자리에 경험이 부족한 젊은 공무원들이 배치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최근 경남 양산시청과 충북 괴산군청, 경기 김포·남양주·양주시청에서 숨진 5명의 공무원은 입사한 지 3개월에서 3년차에 불과했다.
해외에선 이미 악성민원인에게 각종 민원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다. 잉글랜드의 경우 악성민원인에 대한 접촉횟수와 시간은 물론 접촉방법도 전화와 편지, 이메일 중 1개로 특정하는 식으로 제한하고 있고, 악성민원인에겐 지방자치단체 건물 출입도 금지한다. 스코틀랜드는 악성민원인으로 분류되면 모든 직접 접촉이 불가능해지고 제3자를 통한 의사소통만 가능하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악성민원에 따른 공무원 보호 대책은 이르면 하반기부터 현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동일 민원반복이나 단기간 대량으로 제기하는 민원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전화민원 통화내용을 모두 녹음하기 위한 시행령 개정도 필요하다. 현재 시행령에 따르면 민원통화 녹음은 폭언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현장에선 공무원 보호를 위한 이번 조치가 바람직하다면서도 실제로 민원무원들의 통화 강제종료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란 반응이다. 9급 공무원인 이모씨(26)는 "전화를 끊을 권한이 주어진다고 해도 '내가 말하고 있는데 전화를 끊냐'는 식으로 더 큰 민원으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며 "좀 더 구체적인 대응법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온유 기자 onyoo@mt.co.kr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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