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스마트폰 덮개

관리자 2024. 5. 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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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들과 딸이 웬일로 저녁을 같이 하잔다.

폰 덮개가 스마트폰이 가진 원래의 맛을 떨어뜨린다.

스마트폰에 덮개를 씌우며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힌다.

아들딸이 선물한 폴더블폰의 덮개를 가끔 벗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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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로 받은 새 휴대전화
아들딸 사랑 느껴져 더 소중해
오래 쓰려고 케이스 씌웠는데
고유의 맛 안나고 튼튼하기만
나도 가면 쓰고 사는건 아닐까
본래 모습 솔직히 보여줘야지

어느날 아들과 딸이 웬일로 저녁을 같이 하잔다. 짐작은 갔다. 며칠 후면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벌써 얼마 전부터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자꾸 물어왔다. “너희들 존재 자체가 큰 선물이야. 아무것도 필요 없단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심 뭔가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얄팍한 아빠인 것이다.

식당에 앉았다. 어? 근데 이놈들이 빈손이다. 그럼 그렇지, 괜한 기대를 한 것 같았다. ‘그래 맛있는 거나 먹자. 이 자리를 만들어준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하며 생선회·크로켓·꼬치 등을 막 시켰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아빠, 우리가 선물을 준비했어요”라며 가방을 연다. ‘오 그래? 아싸~’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뭔지 아세요? 소설과 수필집이에요” 평소에 내가 글을 쓰고 하니까 책을 준비한 것이다. “어 고마워” 하면서 포장지를 살짝 뜯었다. 근데 책 포장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빠 그것 영화도 나와요” “뭐?” 포장을 완전히 벗기니 오 마이 갓, 이건 ‘폴더블폰’이잖아. 아니 뭐 이런 비싼 것을? 좋아 죽는 줄 알았다.

평소 폴더블폰을 갖고 싶었다. 4년째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바꿀 때도 됐지만 화면이 큰 폴더블폰은 영상 전문가인 내겐 필수템이었다. 큰 화면으로 동영상을 볼 수 있고, 촬영할 때도 화면이 시원해서 찍기도 좋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알았을까? 예뻐 죽겠다. 특히 둘이서 합심해서 준비했다니 기특해도 여간 기특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날 우린 엄청 먹었다. 계산서도 만만찮다. 집 한채 팔면 어때? 이런 아들딸을 뒀는데. 히히

이제 스마트폰 덮개를 찾는다. 얼마나 소중한 건데. 울 아들딸의 사랑이 듬뿍 담긴 것인데 잘 보호해 오래오래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 서핑을 하며 밤을 샐 태세다. 하나 골랐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울 아들딸의 마음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면야 천만금도 아깝지 않다. 빠른 배송이니까 내일이면 도착할 것이다. 기대 가득이다. 오 예∼

덮개가 생각보다 마음에 안 든다. 그래도 스마트폰을 보호해야 하니까 씌운다. 이리저리 만져본다. 역시 튼튼해서 좋군. 떨어뜨려도 아무 이상이 없겠어. 그런데 처음 폰을 만졌을 때의 느낌이 아니다. 말끔하고 매끈한 촉감, 그러니까 신선함이랄까, 아무튼 처음의 느낌은 없다. 폰 덮개가 스마트폰이 가진 원래의 맛을 떨어뜨린다. 그저 튼튼한 느낌뿐이다. 그리고 직사각형의 부드러운 디자인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폰 덮개가 숨겨버린 것이다. 이를 어쩌지? 폴더블폰이 가진 고유의 맛이 나질 않는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도 폰 덮개 같은 것을 덮어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는 건 아닐까? 솔직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혹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자꾸 감추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나이와 직업으로 나를 꽁꽁 싸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편견과 고정관념의 덮개를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덮고 있는 온갖 틀을 벗어던져야겠다. 내가 가진 원래의 모습을 숨김없이 솔직히 보여줘야겠다. 모든 것을 열고 무엇이든지 소통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스마트폰에 덮개를 씌우며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힌다.

아들딸이 선물한 폴더블폰의 덮개를 가끔 벗겨야겠다. 고유한 디자인과 촉감을 즐겨야겠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껴야겠다.

‘어이쿠’ 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덮개를 벗겨서 걱정이다. 휴 다행이다. 멀쩡하다.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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