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한 지형 극복한 ‘지혜’…다랑논, 생물보전·관광자원 ‘재조명’

박준하 기자 2024. 5.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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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60년, K-농업을 말하다] 천수답 다랑논, 이제는 농업문화유산으로
구불구불 경사면 따라 땅 일궈
들이는 품 비해 생산성 낮지만
경관가치 높고 생태농업 의미
세계중요농업유산 인정받고
관계인구 형성 물꼬 터주기도
봄철 전남 완도 청산도에 있는 다랑논의 모습. 논마다 유채꽃을 심은 이곳은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농민신문DB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던 시절 다랑논은 참으로 귀한 재산이었다. 다랑논은 경사가 심한 산지에 인위적으로 일군 논으로, 빗물·용수·계류수에 의존해 농사짓는 땅이다. 다랑논은 천연의 지형과 어우러지며 그 안에서 독특한 농경문화를 싹틔웠다. 식량을 생산하는 토지로서 생명을 지탱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어떤 지역에선 불가피하게 일궈야 했던 다랑논이 이제는 농업문화유산으로,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생태계로 새로이 의미를 찾고 있다. 다랑논의 과거·현재·미래에 관해서 짚어봤다.

불리한 지형적 여건 이겨낸 묘수=다랑논은 벼농사를 짓는 산간지역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강원·경남 일대, 전남에선 완도 청산도에 다랑논이 있다. 표준어는 다랑논이지만 강원에선 다리기논·다래기논, 경남에서는 다랭이논으로 부른다.

다랑논은 원래 빗물에 의존하는 천수답이었지만, 수리시설이 개선된 후엔 맨 위에 저수지를 두고 내려오는 물을 쓴다. 이러면 물이 적은 지역도 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평지 논은 경지 정리를 통해 바둑판 모양으로 정돈된 데 반해 다랑논은 경사가 5도 이상인데다 경지 정리가 제대로 안돼 있어 구불구불한 형태가 많다. 지형 탓에 기계가 들어오기 어려워 노동력이 많이 드는 논이다. 노동력은 평지 논에 비해 30∼40% 더 드는데 생산량은 30∼40% 낮다. 이런 문제와 고령화 현상이 맞물려 많은 다랑논이 일손부족으로 방치된 실정이다.

농업문화유산으로 역사·문화적 가치=다랑논은 생산성 면에선 평지 논보다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경관적 가치가 높고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녀 농업문화유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농어촌유산학회에 따르면 다랑논은 토사 붕괴와 홍수, 토양 침식을 막는 국토 보전 기능을 수행한다. 또 전통적인 형태의 봇도랑(봇물을 대거나 빼게 만든 도랑), 흙수로 등을 보존하고 있어 친환경농업에도 적합하다. 2005년 람사르협약 이후 다양한 수서생물(물속에 사는 동식물)이 사는 독특한 습지로 재발견된 바 있다. 산림·논·수로가 일체화됐으며 다랑논에 물을 대려면 주변에 수목이 많아야 해서 일반 논과 비교해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역사·문화적으로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16세기말 조성됐다고 알려진 청산도의 다랑논인 ‘구들장논’에선 온돌에 쓰이는 구들장을 활용해 논농사를 지었다. 혁신적인 관개시설은 전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2013년 세계중요농업유산, 우리나라에선 제1호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봄이면 경관농업의 하나로 다랑논에 유채꽃을 심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다랑논 덕분에 청산도는 한해 방문객만 30만명이 넘는다.

국가중요농업유산 자문위원장인 이유직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수천년 동안 인류가 해온 전통농업 방식이 최근 기후변화나 식량문제 등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다랑논과 연계해 농작물·종자·수서생물 등을 보존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에 있는 다랑논에서 도시민들이 물이 들어오는 용수로를 살펴보고 있다. 다랑협동조합

도시민과 연대, 활용 가능성 찾는다=일부 지역에선 다랑논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 예가 경남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에 있는 다랑논이다. 이곳 다랑논은 고령화로 과거 대비 22.1% 면적만 유지되고 있지만 남은 농민들이 다랑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속가능성과 보전방안을 연구 중이다.

대표적인 보전활동으로 ‘다랑논 공유 프로젝트’가 있다. 도시민에게 다랑논을 분양해 관계인구를 확보하는 것이다. 도시민은 감물리에 있는 다랑논을 찾아 모판을 만들고 손 모내기를 한다. 매일 농사를 짓는 농민에겐 일이지만, 도시민에겐 귀한 농촌 체험이 된다는 것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공유 프로젝트는 한해 15∼20팀이 참여한다. 이 중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감물리에 눌러앉은 사람도 있다.

다랑논에서 토종벼농사를 짓는 김진한 다랑협동조합 대표는 “원래는 방치된 자투리땅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요새는 5일은 도시에서 일하고, 2일은 농촌에 머무는 5도2촌도 가능한 시대이니 많은 청년이 다랑논에서 작은 규모의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외국에서도 다랑논의 가치를 재평가 중이다. 한국농어촌유산학회에 따르면 일본에선 2019년 ‘다랑논 지역진흥법’이 제정됐다. 다랑논이 식량 공급뿐만 아니라 국토 보전, 수자원 함양, 자연환경 보전 등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또 농지·수로 같은 지역적 자원을 질적으로 향상하는 활동에 지원하는 ‘다면적 기능 직불제’도 활용할 수 있다. 사이타마현에선 데라사카 다랑논의 ‘오너 모임’을 운영해 도시민과 함께 다랑논 보전에 나서고 체험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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