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세월이 주는 선물

관리자 2024. 5.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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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이탈리아 베니스에 다녀왔다.

각국 작가들이 모여 2년마다 작품 전시를 하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베니스에서 나는 아름다운 운하, 각국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만났지만 무엇보다 과거의 나, 38년 전에 이곳을 처음 찾은 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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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이탈리아 베니스에 다녀왔다. 각국 작가들이 모여 2년마다 작품 전시를 하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정년퇴직한 전직 기자인 나와 미술전시기획자 김지원씨가 함께 그곳에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었다. 미술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베니스 비엔날레를 소개하고, 도시 전체가 예술이자 베니스의 상인과 마르코폴로와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고향인 그곳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베니스에서 나는 아름다운 운하, 각국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만났지만 무엇보다 과거의 나, 38년 전에 이곳을 처음 찾은 나를 만났다.

당시 27세였던 나는 유럽 여행 중 베니스에 이틀 동안 머물렀다. 리알토 다리 아래 카페에 앉아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찍힌 사진(지나가던 관광객이 찍어준)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피부도 팽팽하고 순박한 미소를 짓던 그 아가씨는 지금은 흰머리를 염색으로 감추고 사진 찍을 때 주름살이 나올까 봐 어색하게 웃는 할머니가 됐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그 카페에서 비슷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빛나는 20대 청춘의 내가 아니라 올해말에 경로우대증을 받는 60대의 내 모습이 더 평화롭게 느껴졌다.

당시엔 체력도 좋았고 영어로 기본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했고 불안했다. 연분홍빛의 베니스 가로등도 그저 그림엽서 같기만 했고 다시 돌아가 앉을 사무실의 의자, ‘왜 결혼 안하냐’는 끝없는 질문에 시달릴 것이 두려워 베니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했다.

하지만 근력이 떨어져 수시로 비타민과 영양제를 털어넣고 영어 단어도 제때 떠오르지 않는 60대 할머니인 내게 세월은 평화와 배짱을 선물로 줬다. 혼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버스와 수상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럽 관광지에 소매치기가 우글거린다, 여행가방을 훔쳐가는 경우도 많다, 공항은 워낙 노선이 많아 자칫 잘못하면 비행기를 놓친다 등의 정보(?)를 들었지만 ‘설마 이 할머니에게 뭘 가져가겠어?’ ‘모르면 누구에게나 웃으며 물어보자’라는 뻔뻔함을 장착하자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예술작품부터 가게 간판, 운하에 떠 있는 곤돌라,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고 마음의 눈에 담아뒀다.

리알토 다리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스물일곱의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너는 젊었지만 불안하고 불행했지. 이제 65세에 같은 장소에 앉아 있어. 혼자 씩씩하게 베니스에 도착한 나를 기특해하며 지금 이 순간 베니스를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려 한다. 20대의 유인경이 주어진 일을 하는 수동태의 삶이었다면 60대의 유인경은 능동태, 즉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됐어. 그러니 매일 당당하게 살아가렴.”

어쩜 먼 훗날 90대인 내가 현재의 나를 만난다면 이런 말을 해주기 바란다.

“넌 그때 다시는 베니스에 못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만 국민연금을 저축한 덕분에 고급스러운 특급호텔에 머물고 있지. 내일은 아무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시간과 세월은 무언가 선물을 준다는 거야. 매일매일 기쁘게 선물을 받으렴.”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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