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한국 정치와 민심 감수성

이동현 평택대 총장 2024. 5.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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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감수성이 넘치는 사회, 정치권만 공감 능력 ‘제로’
둔감하고 왜곡까지 일삼아…국민생각 인지하고 행동해야
이동현 평택대 총장

우리는 감수성(感受性) 사회에 살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 용어는 이미 일상화된지 꽤 되었고, 장애 감수성과 인권 감수성도 익숙한 용어이다. 최근에는 기후위기 감수성, 동물 감수성, 법 감수성, 다문화 감수성까지 등장하고 있다.

감수성은 대인 공감능력이나 문학적 감수성, 감성 등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으나 감각의 예민함, 민감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여성 장애인 소수자 등에 대해 상처를 주는 표현과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해왔다는 점에서 최근 활발해진 감수성 논의는 바람직하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 표현에 대해 민감한 인식을 갖고 표현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감수성에 대한 강조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다른 형태의 차별을 낳고 있다는 ‘과잉 감수성’에 대한 논란까지 일고 있다.

이처럼 감수성 열풍이 거세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감수성 ‘무풍지대’에 있는 듯하다. 4·10 총선에서도 그렇고, 윤석열 정부의 참패로 끝난 선거 결과를 둘러싼 해석에서도 그렇다. 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회담 이후에도 여전하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만, 민심에 대한 감수성은 제 각각이다.

민주당은 선거결과를 놓고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반면 국민의 힘 측에서는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국민의힘이 국민에게 미래 청사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선거제도의 기능을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가 부정과 비리가 있어도, 막말을 쏟아내도 부적격자를 제대로 여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집단적 팬덤에 홀려 비정상적이고 비도덕적 행위를 했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국민의힘은 야권 인사들에 대해 검찰수사 결과 범죄자라고 판정된 인물들이라고 공격하고, 야권에서는 여권 지도층은 더욱 중대한 범죄 혐의가 있는데도 검찰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맞섰다.

바야흐로 민심 논쟁이 치열하다. 진정한 민심은 무엇일까. 민심을 반드시 진리라고 해야 하나. 민심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있는 것인가. 민심 논쟁을 보면 우리 사회가 모든 분야에서 감수성을 높여가고 있는데도 오로지 정치권은 민심에 대한 낮은 감수성 수준을 보여주고 있음이 확인된다. 둔감할 뿐만 아니라 왜곡과 변형까지 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영남과 서울 강남을 제외하고 대패한 것은 낮은 정치적 감수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큰 과오든 작은 실수든 국민의 감성을 살피지 않고 밀어붙이고,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 참패로 귀결된 것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민심을 인지하는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물론 윤 정부 심판론에 기대어 승리한 민주당도 예외일 수는 없다.

민심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몇가지 고민을 제시한다.

첫째, 감수성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지역 정당이 되고자 한다면, 특정 지역의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전국 정당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지역의 민심에 골고루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당원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국민에 대해서도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당심과 민심이 최대한 일치되도록 하는 정당이 승리한다. 국민의힘은 수도권 정서에 대해, 민주당은 부산 울산 경남(PK) 등 영남권에 대해 민감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민심의 구체적인 민낯을 보기 위해 인지 방법의 과학성과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을 파악하고, 꾸밈과 연출이 없는 살아있는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고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여론조사가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지만, 과학적으로 시행하면 민심의 등고선을 비교적 정확하게 보여준다. 자기 당에 유리한 방식과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여론조사는 자위는 될지언정 백해무익하다.

셋째, 확인된 민심에 순응해야 한다. 변명하지 말고 바로 고쳐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심의 적신호가 울린지는 오래 됐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음에도 적신호를 외면한 것이다. 선거제도를 탓하고 국민에게 잘못을 돌려서는 안 된다. 설사 그것이 팬덤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왜 많은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해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히틀러와 푸틴도 선거를 통해 독재자가 됐다는 논리를 퍼뜨리며 현행 선거제도를 부인하는 행위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윤 대통령은 민심에 귀를 닫은 ‘보스’가 되지 말고, 국민과 야당과 함께 가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는 책임을 지도자에게 짊어지게 하는 방식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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