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가 영도와 각별한 연 맺은 까닭은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2024. 5.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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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등대는 18초 3섬광, 즉 18초 안에 불빛이 세 번 반짝이는 등대다. 이 신호는 영도 등대 표식이다. 맞은편 오륙도 등대는 10초에 1섬광이다."

"제주 해녀들이 뭍으로 물질을 나갈 때 거치는 거점이 영도였다. 영도 주민의 30퍼센트는 제주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자리물회, 말고기를 파는 음식점도 있고, 제주은행도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의문이다. 왜 영도였을까. 뭍으로 물질을 나가야 했던 제주 해녀들이 완도 여수 삼천포 통영 거제를 두고 영도로 모여든 이유가 뭘까." 아마 부산 사람도 궁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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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문화 답사기 : 울릉 부산 거제 사천 남해 편- 김준 지음 /보누스 /2만8000원

- 8권 기획 ‘韓 섬총서’ 여섯번째
- 통영 뺀 경상·경북 유인도 망라
- 개화기 부산 해조 큰 시장 열려
- 동해·남해·日 진출 교두보 역할
- 등대 불빛 주기 항구마다 상이

“영도 등대는 18초 3섬광, 즉 18초 안에 불빛이 세 번 반짝이는 등대다. 이 신호는 영도 등대 표식이다. 맞은편 오륙도 등대는 10초에 1섬광이다.”

부산 영도 등대. 부산항 개항(1876년)과 일본의 군사적 목적에 의해 1906년 12월 목도 등대로 개설되었다. 오른쪽 사진은 부산 영도 흰여울마을 앞바다에서 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해녀. 영도는 제주 해녀들이 뭍으로 나갈 때 모이는 거점 섬이었다. 김준 사진·보누스제공


등대마다 표식이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영도 등대와 오륙도 등대의 표식은 처음 알았다. 어두운 밤, 바다 위 배에서 등대 표식을 발견하는 상상을 해본다. 등대가 있는 곳이 어느 섬인지, 어느 항구인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표식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필수 정보일까. 김준 박사의 ‘섬문화 답사기: 울릉·부산·거제·사천·남해 편’을 읽다가, 바다 곁 도시 부산에 살면서도 섬과 바닷가 마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부끄러움을 깨닫는다.


김준 저자는 ‘섬의 남자’이다. 갯벌과 바다, 섬과 어촌을 찾아 그 가치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얼마나 오래도록 지극정성으로 해 왔으면 ‘섬의 남자’로 불릴까. 이 책은 모두 8권으로 기획한 ‘한국 섬총서’ 프로젝트의 여섯 번째 권이다. 김준의 ‘섬문화 답사기’는 어느덧 10년 세월을 거쳐왔다. ‘여수, 고흥편’ ‘신안편’ ‘완도편’ ‘진도 제주편’ ‘통영편’이 먼저 나온 책이다.

이번에는 통영을 제외하고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유인도를 망라했다. 울릉도·부산·거제·고성·사천·하동 지역을 포함한 경상권 섬에 알알이 박힌 삶을 채취해 기록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아는 바다는 대충 다 나온 듯한데, 저자는 두 권을 더 집필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부산 편부터 펼쳐본다. ‘대마도가 보인다 | 부산 영도’ ‘섬주민의 삶이 역사이고 생활이 문화다 | 부산 가덕도’ ‘굴 양식의 요람, 이제 어떡하지 | 부산 눌차도’가 목차에 등장한다. 맞다, 영도가 섬이었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영도 흰여울마을 앞바다에서 물질하고 나오는 해녀 사진을 보자, 해녀가 영도와 인연을 맺은 이유가 궁금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주 해녀들이 뭍으로 물질을 나갈 때 거치는 거점이 영도였다. 영도 주민의 30퍼센트는 제주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자리물회, 말고기를 파는 음식점도 있고, 제주은행도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의문이다. 왜 영도였을까. 뭍으로 물질을 나가야 했던 제주 해녀들이 완도 여수 삼천포 통영 거제를 두고 영도로 모여든 이유가 뭘까.” 아마 부산 사람도 궁금할 것이다.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당시 부산에는 해조를 유통하는 객주들이 모여 큰 시장이 열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상인과 수산회사가 자리를 잡고 식재료와 전시에 필요한 조선 해안 우뭇가사리나 감태 등을 수집했다. 영도는 일본으로 들고 나거나 동해와 남해 등 물질할 바당(‘바다’의 제주 방언)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귀향을 할 때 필요한 생필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장이 부산에 있었다.” 영도는 제주 해녀에게 특별한 곳이었다. 영도에 해녀전시관이나 해녀동상이 세워지는 건 역사에서 자연스레 이어진 결과이다.

영도 편을 읽고 나니, 다른 바닷가 다른 섬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한국에는 유인도 460여 개를 비롯해 3300여 개 섬이 있다. 섬에는 사람이 살았다. 세월이 흐르며 섬에 사는 사람, 섬에 있던 문화는 점점 사라진다. 20여 년에 걸쳐 전국 섬을 다니며 섬사람의 치열한 삶과 그들의 자취를 기록해 온 ‘섬의 남자’ 김준의 섬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저자 서문 ‘섬살이는 나아졌을까’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인천과 옹진, 그리고 충남과 전북의 섬으로 떠난다. 마지막 여정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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