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21] 다짜고짜 그치지 맙시다
같은 학교 인연으로 카톡방 네댓 군데에 들었다. 총동문회, 동기 동창회, 동호회, 소모임…. 죄송하게도 누구 돌아가셨을 때 꽤 성가시다. 부고(訃告) 한번 나면 조문(弔問)이 수십 번 이어지는데, 죽음을 애달파하는 일이 어찌 허물이랴. 정작 받을 사람은 끼지 않은 단체 대화방에 울리는 위로가 어색하다는 얘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삼가 고인의, 삼가…. 이튿날에야 그쳐 아쉬운 동어반복이 있는가 하면, 너무 잘 그쳐 안타까운 일도 있다.
‘김하성은 지난 27일 경기에서 5타수 1안타를 기록한 뒤 4경기 연속 무안타에 그쳤다.’ 여기서 ‘그치다’는 어떤 일이나 행위가 더 진전 없이 그 상태에 머문다는 뜻. 움직임이 있다가 멈출 때라야 성립한다. 0부터 10으로 빗대자면, 0도 10도 아닌 그 사이 어디인 것이다. 무안타는 곧 0을 말하니 ‘무안타에 그쳤다’는 안 어울린다(→무안타로 물러났다/마쳤다). ‘네 경기 동안 10타수 1안타’거나 ‘무안타 2볼넷’이라면 ‘그쳤다’ 해도 괜찮겠다.
‘경기 막판 발리슛을 했지만 무위에 그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골을 넣지 못했다는 뜻이니 마찬가지로 어색한 표현. 정 ‘무위(無爲)’를 쓰려거든 ‘무위로 끝난’ 하든가. ‘그가 선발에서 제외된 두 경기 모두 팀이 무득점에 그쳤다’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가 어떤가.
‘그치다’를 다짜고짜 쓰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배드민턴이 아시안게임에서 노메달에 그친 건 40년 만이었다.’ ‘순이익은 4대 은행 중 꼴찌에 그쳤다.’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는데 어찌 그쳤다 할 수 있나. 꼴찌 역시 맨 뒤에 처진 상태라서 그쳤다 함은 맞지 않는다. ‘노메달로 물러난/메달을 따지 못한’ 하거나 ‘꼴찌였다/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가 어울린다.
어느 상가(喪家)에서 이른 저녁 때운 날, 평소 쉬 느끼던 허기가 늦게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고인이 자식 친지들한테 크게 베푸신 덕분이겠지. 실컷 먹어놓고… 둘러대기는 그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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