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韓 OLED` 빛나려면 인력유출 방어·정부 투자 절실"

이준기 2024. 5. 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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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유기반도체연구로 기반 다져
박사때부터 전도성고분자 소재 연구
휴대전화 적용 후 산업 선도 시작
디스플레이 인력유출 정부 관심 필요
역량 최고지만 반도체·이차전지로 빠져
산학연 협력·정부 R&D투자 있어야
다품종 대량 → 소량 다품종 대전환
고객 맞춤·주문형 혁신으로 초격차
메타버스 등 초실감 콘텐츠로 발전
ETRI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이정익 ETRI 초실감메타버스연구소장

'유지경성(有志竟成)'.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정익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초실감메타버스연구소장이 25년 연구 인생을 통해 터득한 진리이기도 하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 연구비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 연구 과정에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유지경성'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버팀목 같은 글귀였다.

좋아하는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간절함, 임팩트 있는 연구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실함, 후배들에게 더 좋은 연구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우러져 어려운 고비마다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통해 지금껏 연구를 이어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정익 소장이 걸어온 연구자의 길은 생각보다 굴곡이 많았다.

이 소장은 "남들이 가능성이 낮아 외면하던 OLED 연구에 매달릴 때, 미래 디스플레이 연구를 준비할 때, 연구비 확보가 힘들어 연구 중단 위기를 겪을 때마다 '뜻이 있으면 기회가 온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기에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OLED 디스플레이를 시작으로 플렉서블 OLED, 투명 OLED, OLED 조명,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등이 숱은 난관과 시행착오 끝에 그의 손을 거쳐 결실로 맺어졌다.

그는 "우리나라가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이에 안주해선 진정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없다"며 "미래를 내다보고 끊임없는 R&D 혁신을 해야만 디스플레이 초격차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 디스플레이 세상에 대해 "디지털 미디어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공간 현실'이 디스플레이로 재현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치 옆에 있는 것과 같은 사람 간의 연결을 '공간 현실'에 만들어 사람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연구에 역량을 모아 가겠다"고 밝혔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대한민국 최초로 'OLED 불빛' 밝히다

이 소장은 KAIST 박사과정 재학 중 해외 학회에 갔다가 지금의 직장인 ETRI에서 유기물을 이용한 발광소자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지도교수가 OLED에 적용하기 위한 전도성 고분자 소재를 연구하고 있어 ETRI와 함께 연구를 하면서 OLED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우리 연구실(KAIST)에 소재 기술은 있었지만 소자 기술이 없었고, ETRI에는 우리 연구실과 달리 소자 기술은 있고, 소재 기술은 없어서 자연스럽게 연구협력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이후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선배의 제안으로 ETRI에 정식 입사해 OLED 소재뿐 아니라, 소자, 이를 활용한 패널 기술까지 OLED 전반에 대한 연구를 파고들었다.

동료, 선배 연구자들과의 지속적인 연구 끝에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유기반도체를 이용한 발광다이오드(LED)에서 희미한 불빛을 얻는 데 성공했고, 이를 좀 더 진전시켜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것이 30년 전 OLED의 시초가 됐다. 대한민국 최초로 OLED 불빛을 만들어 낸 장본인 중 한 명이 이 소장이었다.

◇실현 가능성 낮은 'OLED' 집념으로 밝혀

이 소장이 OLED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에 앞서 액정디스플레이(LCD)를 이을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전계방출 디스플레이(FED), 무기 EL, OLED 등 세 가지 기술이 후보군으로 꼽혔다. 이 중에서도 OLED 디스플레이는 유기반도체 소재의 낮은 안정성 때문에 수명이 짧아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낮은 기술로 평가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소장은 "다른 기술에 비해 OLED의 장점과 잠재적 가능성을 잘 알고, 확신을 가졌기에 열악한 연구 환경에서도 연구에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가시적 성과가 나왔고, 몸담고 있던 연구조직이 OLED 연구를 선도하는 연구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OLED를 휴대전화 디스플레이에 적용하는 시연에 성공했고, 이를 기반으로 투명 OLED 개발에도 연이어 성공하면서 FED, 무기 EL 등을 제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OLED 디스플레이 산업을 선도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지원 미흡하고 반도체·이차전지로 인력 이탈…정부 관심 절실"

이 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인 디스플레이 연구 역량을 보다 끌어 올리기 위해선 산학연 혁신주체별 차별화된 역할과 협력·경쟁, 정부 R&D 투자의 전략성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연구 역량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다른 산업에 비해 정부 지원이 미흡하고,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으로 디스플레이 인력 유출이 늘고 있다"며 "그나마 최근 디스플레이가 국가전략기술에 반도체와 함께 포함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정부 차원의 관심과 투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산학연 역할 분담을 통한 경쟁과 협력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 소장은 "혁신주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정의하고, 이에 기반해 협력하고 경쟁도 해야 한다"며 "정부의 R&D 투자도 혁신주체별 역할에 따라 달라져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가령, 기업은 기술준비단계(TRL)가 높은 5년 내 단기 응용과 장기 기초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대학은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 기초 연구개발을, 연구기관은 대학과 기업이 하지 못하는, TRL이 중간 수준이면서 기술 집적도가 높은 중장기 기초·응용 연구개발을 맡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가 먼저 나섰다. 이 소장은 2021년 말 미래 디스플레이를 조망하는 '디스플레이 미래기술 2035 보고서' 편찬 작업을 주도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매서운 추격에 맞서 디스플레이 강국 주도권을 가지기 위한 미래 비전과 전략, 청사진 등을 보고서에 담았다.

그는 "학회 차원에서 디스플레이 미래 비전을 제시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고 보람이 컸다"며 "이 보고서로 인해 정부가 디스플레이 초격차 정책을 만들고, 국가전략기술에도 디스플레이가 지정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출연연도 학회와 함께 '디스플레이 미래 강국 코리아' 구현에 힘을 보탰다. 7개 출연연이 디스플레이 연구 협업과 미래 디스플레이 방향성 정립을 위해 의기투합해 2022년 '디스플레이 출연연 협의체'를 발족시켰다.

◇LCD 이어 OLED 인력들도 中 유출…투자 확대로 OLED 산업 키워야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까지 LCD 패널 세계 시장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이 대규모 투자를 쏟아부으며 거세게 추격하면서 2010년 들어 중국에 LCD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 소장은 "중국이 우리나라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우리 LCD 기술인력 유출"이라며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1위를 지키고 있는 OLED 분야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이미 많은 OLED 인력들이 중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는 상황으로, 기술인력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국내 OLED 퇴직 인력들이 중국 기업들로부터 스카우트 표적이 된 지 오래 됐고, 일부 인력은 중국으로 옮겨갔다. 국내 인력이 기술을 빼돌려 중국에 넘기는 기술 유출 사고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풍부한 경험과 전문 기술, 노하우를 지닌 국내 민간 퇴직 인력을 대학과 공공연구기관들이 받아 들여 공공연구개발의 수준을 높이고, 인력 유출을 막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는 디스플레이 시장을 우리가 강점을 가진 OLED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현재 중국은 LCD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고, 중국 정부에서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자국 디스플레이 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와 달리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정부 지원에서 소외된 채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져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 소장은 "OLED 분야도 중국의 맹추격에 세계 1위 자리를 언제든 내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며 "OLED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선 OLED 생산 투자와 국내 생산 OLED 패널 소비에 대한 세제혜택 등을 통해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새로운 OLED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도 3D프린팅처럼 '맞춤형 시대'…"메타버스로의 확장 연구할 것"

이 소장은 '맞춤형 디스플레이'가 미래 디스플레이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정보를 편리하게 제공하는 맞춤형 디스플레이를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갖고 하루빨리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소장은 "미래 디스플레이는 '온디맨드 객체 맞춤형 디스플레이'로, 고객이 원하는 디스플레이를 맞춤형·주문형으로 생산하는 혁신을 통해 초격차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맞춤형 디스플레이 시장은 기존 '다품종 대량'이 아닌 '소량 다품종' 생산체계로 대전환함으로써,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3D프린팅처럼 디스플레이도 고객 맞춤형으로 생산하는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이 소장은 공간을 기반으로 디스플레이와 메타버스를 확장하는 연구를 펼친다는 계획이다. 공간 현실을 디스플레이에 구현하고, 이를 매개로 메타버스 같은 초실감 콘텐츠를 제작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저희가 연구하는 리얼리티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한 기술이다. 앞으로의 연구는 공간을 기반으로 사람 간의 연결성을 강화하는데 주력할 생각"이라며 "앞으로 공간과 입체영상을 기반으로 화상통화나 원격회의를 하거나 다양한 시점이나 시각에서 스포츠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메타버스 세상'을 앞당기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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