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특검' 강행한 민주당...尹 거부해도 與 18명 이탈 땐 확정

한정수 기자, 안채원 기자 2024. 5. 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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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채상병특검법'(순직 해병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1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 영수회담 이후 서로 양보하며 '이태원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 처리에 합의한 여야가 하루 만에 다시 충돌했다. '채상병 특검법'(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을 놓고서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엄호를 받은 민주당은 여당의 단체 퇴장 속에 특검법을 강행 처리했다. 대통령실이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시사한 가운데 국회 재표결을 통해 법안이 폐기될지, 여당에서 18명 이상이 이탈해 결국 특검이 도입될지 관심이 쏠린다.

국회는 2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채상병 특검법을 재석 168인, 찬성 168인으로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 전 대부분이 퇴장했다. 김웅 의원만 남아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 주도로 법안을 일방 통과시킨 것이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7월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숨진 해병대 채모 상병의 사건에 대한 초동 수사와 경찰 이첩 과정에서 대통령실, 국방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특검을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최악의 경우 윤 대통령 본인 또는 전·현직 핵심 참모들까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당초 채상병 특검법은 이날 본회의 안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날 법안을 처리하겠다며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을 제출하면서 해당 안건을 상정할지 여부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다. 김 의장은 "여야의 합의가 이뤄져야 본회의에 상정하겠다"는 당초의 입장을 돌연 바꾼 셈이 됐다.

김 의장은 해당 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점을 거론하며 "제도 도입 취지에 비춰볼 때 이 안건은 21대 임기 내에 어떤 절차를 거치든 마무리돼야 한다"고 표결에 부치는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이날이 아니면 채상병 특검법은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될 가능성이 높았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쓰고 다시 국회에서 재의결을 하는 데까지 2주 정도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해서다. 21대 국회의 임기는 오는 29일까지다.

김 의장은 오는 4일부터 18일까지로 해외 순방 일정이 있다. 당연히 해당 기간에는 본회의를 열기 어렵다. 이에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채상병 특검법안 처리가 되지 않으면 해외 순방에 따라가지 않겠다"며 김 의장을 압박하기도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간 법안 상정 등과 관련해 여야 합의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김 의장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전향적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도 있다.

아직 관련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검 도입은 섣부르다는 취지로 채상병 특검법을 반대해 온 국민의힘 의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김 의장이 채상병 특검법 안건상정 여부에 대한 표결을 하겠다고 결정하자 언성을 높여 항의하며 퇴장했다. 이내 민주당 주도로 법안이 통과되자 규탄대회를 열었다.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처리하지 않을 것처럼 국회의장과 야당 원내대표가 여당 원내대표를 기만하고 입법폭주한 것은 정말 개탄스럽고 국민과 함께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마치고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을 단독 처리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제 관건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다. 그간 거부권을 사용했던 법안들은 윤 대통령의 가족들이 관련돼 있었다. 윤 대통령 자신이 직접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채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며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이미 수사중인 사건임에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법을 강행한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수회담에 이은 이태원참사 특별법 여야 합의 처리로 여야 협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일방적 입법폭주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민주당의 특검법 강행처리는 채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정치"라고 했다.

사실상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발언도 나왔다. 정 실장은 "일방처리된 특검법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큰 만큼 대통령실은 향후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역시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전망이다. 윤 권한대행은 규탄대회 뒤 기자들과 만나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법안이 다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현재 재적 의원 296명이 모두 본회의에 참석해 재의결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면 3분의 2 이상인 최소 198명이 찬성해야 법안이 통과된다.

현재 민주당 155표와 민주당 출신 무소속 7표를 비롯해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 개혁신당 등의 표를 모두 합치면 총 180표다. 야권은 채상병 특검법에 동의하고 있는 만큼 만약 국민의힘에서 18명 이상이 이탈해 찬성표를 던지면 채상병 특검법안이 법으로 확정될 수 있다.

한편 이날 채상병 특검법 처리 전 국회는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나 "법리적 문제가 있을 부분을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하면 좋겠다"는 입장을 보인 뒤 여야간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여야는 전날 법안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데 동의했다. 이날 오전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연이어 열어 해당 법안을 의결해 본회의로 넘겼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강력하게 주장하던 조항들을 조금씩 양보하며 협치의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21대 국회 임기 내에 추가로 본회의를 열어 민생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있겠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채상병 특검법 통과로 어려워졌다는 관측이다. 윤 권한대행은 "남은 국회 의사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 서로 기만하고 불신이 팽배하게 된 상황에서 협의가 원만히 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정수 기자 jeongsuhan@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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