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화일보 유튜브 차단 논의 방심위, 회의록 통으로 소실?

박재령 기자 2024. 5. 2. 16: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회의 도중 속기사가 설치한 녹음기 2대 고장… 업무 배제 요청"
하필 앞뒤 맞지 않아 문제 소지 있었던 조선·문화 차단 심의 회의
야권 추천 위원 "의심스러울 수밖에…멀쩡한 속기사가 그 내용만?"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 삭제, delete. 사진=gettyimagesbank

조선일보·문화일보에 '시정요구'를 예고한 심의 내용이 회의록에서 사라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사상 초유의 일이다.

방심위는 2일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통신소위)에서 제32차 통신소위(4월25일) 회의록 일부 내용이 소실됐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제32차 통신소위에서 조선일보·문화일보 유튜브 콘텐츠를 포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관련 영상 44건, '이재명 정적 자르기' 등 민주당 인사 관련 영상 1건 등 총 49건에 시정요구를 전제로 한 의견진술을 의결했다. 안건 분류는 '사회혼란 야기'로 인한 유해정보 심의다.

[관련 기사 : 이재명 피습 다룬 조선일보 유튜브에 방심위 '시정요구' 예고]

[관련 기사 : “이재명 정적 죽이기” 조선일보 이어 문화일보에도 방심위 '시정요구' 예고]

▲ 제32차 통신소위 회의록 일부.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제32차 통신소위 회의록'을 보면 지난달 25일 있었던 '사회혼란 야기' 심의(유해정보 심의) 때의 위원들 발언이 회의록에서 통째로 사라졌다. 앞부분에 상정된 MBC '미국 본토 공격 오보' 보고안건에 대한 내용과 저작권 침해 정보 심의(의결사항 가)는 모두 들어가 있지만 그 이후에 이어진 유해정보 심의(의결사항 나) 내용이 모두 빠진 것이다.

사무처는 “당시 담당했던 속기사가 회의 종료 이후 설치한 두 대의 녹음기 불량으로 녹음을 못했다고 통보했다”며 “속기사가 회의 도중 직접 작성한 속기 초안은 전체 분량 40%로 보고사항, '의결사항 가' 내용만 기록됐다. 나머지는 회의 속기가 없어 사실상 빈 내용”이라고 밝혔다.

야권 추천 위원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성옥 위원은 “이 회의가 보통 회의였나. 사회혼란 조항을 적용해 인터넷 언론을 접속차단 결정한 내용이 있다”며 “지난해 인터넷언론(뉴스타파) 심의할 수 없다고 내린 결정은 어떻게 되는지 논의하지 않고 또 인터넷 언론에 시정요구 의견을 냈다. 회의 말미 제작진 의견진술을 의결한 것도 대통령 풍자영상, 출근길 영상들을 의견진술 없이 차단한 것이라 일관성이 없는 결정이었다. 그런 문제점들이 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위원은 “이 중요한 회의에서 속기를 안했다는 것을 외부에서 납득할 수 있겠나. 게다가 속기사가 앞에 MBC 안건 때는 멀쩡히 기록하다 문제가 된 부분부터 속기가 안 됐다”며 “이렇게 되면 회의 내용이 후에 다른 위원들 편의에 맞게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전체회의에 이 문제 다시 보고해서 후속조치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무처는 우선 해당 속기사를 업무 배제 요청했다고 밝혔다. 속기 업체와 계약 해지 여부는 미정이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해당 속기 업체는 2023년 11월 계약을 시작했으며 조달청 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연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처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법무팀과 법적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며 “계약시 작성한 과업지시서에 의거 시정요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합뉴스

여권 추천 위원들도 엄중한 조치를 촉구했다. 이정옥 위원은 “업체 문제도 크다고 본다. 엄중하게 결정해 법적 부분 검토해달라”고 말했고 김우석 위원은 “제가 보기엔 100% 속기 업체의 책임이지 당사자 책임이 아니다”며 “이제까지 속기 안 하고 있다가 녹음을 풀어 업무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속기 업체를 확실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소위원장인 황성욱 위원은 “일단 오늘은 전차 회의록 확인 과정을 진행하지 않겠다. 전차 회의록이 복원될 수 있는지 한 번 본 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 때 논의하는 걸로 하자”고 밝혔다. 이날 위원들은 4월25일 당시 회의를 방청한 기자들의 수기를 수집해 참고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당시 사무처에서 따로 해당 회의를 녹음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 2월13일자 문화일보 유튜브 갈무리.

갑작스러운 회의록 소실 사태를 놓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이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당시 조선일보·문화일보 시정요구 예고 자체가 이례적인 일인 데다 제도 개선 없이 인터넷 언론(MBC 미국 오보 인터넷판 기사)을 심의할 수 없다고 인정한 회의에서 인터넷 언론(조선일보·문화일보 유튜브) 시정요구를 찬성한 셈이라 여권 추천 위원들 입장에선 매우 당혹스러울 수 있는 회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MBC 이어 조선·문화일보까지 건드리는 방심위]

방심위는 이재명 대표 피습 이후 경찰이 의도적으로 현장을 보존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내용(조선일보)과 이재명 대표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에 '정적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 내용(문화일보)에 '시정요구' 의견을 냈는데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인터넷 언론 심의를 무리하게 한 것이라 현장에선 위원들이 내용을 잘 알고 심의한 것이 맞냐는 비판이 있었다.

게다가 방심위가 시정요구를 예고한 유튜브 49건 중 조선일보와 문화일보 각각 1건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AforU아포유(구독자 24만 명), 지식의칼(구독자 52만 명), 신의한수(구독자 150만 명) 등 시사 유튜브 채널이라 조선일보·문화일보의 콘텐츠가 안건에 포함된 사실을 일부 심의위원들이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통상적으로 마약, 성매매 광고 등 불법·유해정보를 심의하는 통신소위는 많게는 하루에 수천 건의 심의를 해야 해 위원들이 내용을 전부 확인하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0월 미디어오늘이 2022년 통신소위 회의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통신소위 안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 든 시간이 평균 0.5초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86차례 열린 통신소위는 평균 18분 동안 2434개 안건을 심의한 것이다.

[관련 기사 : 뉴스타파 심의하는 통신소위… 지난해엔 안건 1개당 0.5초 처리]

윤성옥 위원은 미디어오늘에 “여러 의심이 안 들 수가 없다. 전체 내용이 기록된 것이 없는데 40%라는 수치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라며 “32차 회의에서 나온 문제적 결정들에 대해 여권 추천 위원들이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았다. 한 속기사가 앞에는 성실하게 작성하고 뒤에서는 하나도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지난해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를 이유로 뉴스타파를 심의했지만 제재를 내리진 못하고 서울시에 법률 위반 검토를 요청했다. 언론사 콘텐츠를 심의할 근거가 미약하고 접속차단 시정요구를 결정해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방심위가 내리는 접속차단은 한국에서 못 보도록 통신사(ISP, 인터넷서비스사업자)에 요청하는 방식인데 언론사 영상을 통신사가 차단하기는 어렵다. 특정 정보로 인해 현재 사회에 큰 혼란이 야기될 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질서 혼란 조항으로 심의하면 소송 패소 가능성도 있다. 그간 법원은 방심위 제재와 관련해 최소 심의 원칙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판례를 보였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