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고서 없이 무전공 확대? 교육부 허술한 백년지대계

홍승주 기자 2024. 5. 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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視리즈 대학 무전공 무대책➋
무전공 확대 대학에만 가산점
계획 따르기에는 시간 촉박해
수립한 전형계획 전부 수정해야
무전공제 기대효과 알 수 없어

# '무전공 확대를 하는 대학에만 가산점을 준다.' 무전공 전형 확대 정책에 교육부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문제는 지난 1월 발표한 계획을 따르기엔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는 점이다.

# 이 때문에 몇몇 학교는 혼란에 빠졌지만, 정작 '무전공 전형'을 왜 확대하는지, 기대효과는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이 정책을 밀어붙이는 교육부 역시 연구용역을 맡겼지만, 결과보고서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4월 18일 건국대 학생들이 자유전공학부 신설에 반대하며 교내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찬란한 봄을 만끽해야 할 '4월의 캠퍼스'가 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학사 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몇몇 대학과 재학생들이 반목하면서다. 싸움을 붙인 건 정부다. 교육부가 나서 '무전공 전형 확대 정책'에 드라이브를 건 게 문제가 됐다.

무전공 전형이란 전공 구분 없이 입학한 신입생이 2학년 이후에 전공을 결정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신입생의 전공 선택권을 늘리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정책 진행 과정에서 수많은 절차적인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 문제➊ 촉박한 시간과 볼모 = 가장 큰 문제는 '촉박한 시간'이었다. 대학이 기존의 입시 전형을 수정해 무전공 전형을 확대하려면 상당한 준비 기간이 필요한데도 교육부는 틈을 주지 않았다. '4월의 봄'을 패닉에 빠뜨린 교육부의 정책은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입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이주호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대학의 정원 30%를 무전공 입학으로 전환하겠다"며 '학과 간 벽허물기'를 강조했다. 다만 시행 시점이 언제고, 어떤 대학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계획의 밑그림이 드러난 건 3개월이 흐른 올 1월 초였다. 교육부는 신입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대학에만 추가 재정 지원(인센티브)을 해주는 '국립대학육성사업 개편안'과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을 발표했다. 수도권 사립대학과 국립대학(거점대·국립중심대)을 대상으로 무전공 신입생을 20~25% 이상 비율로 받은 학교에만 돈을 주겠단 거였다.

정부가 대학교의 취약한 재정을 볼모로 무전공 확대책을 밀어붙이자, 곳곳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반발을 의식한 듯 교육부는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정책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교육부는 '가산점 제도'를 통해서 무전공 확대책을 사실상 강제했다. 대학이 2025년 신입생을 받을 때 무전공 비율이 높을수록 최대 10점의 가산점을 주고, 평가 점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인센티브 규모는 총 7836억원(사립 4410억원·국립 3426억원)에 달한다.

"그깟 인센티브 안 받으면 그만"이라며 대수롭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운영 적자를 기록한 수도권 사립대는 2011년 15개교(23.1%)에서 2021년 46개교(70.8%)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가뜩이나 재정이 취약한 대학으로선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교육부 말을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계획을 발표한 게 1월 말이었으니, 대학 입장에선 학교 구성원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충분한 조율 과정을 거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애초에 대학별로 상황이 다른데 모든 학교에 똑같은 비율로 무전공 입학생을 늘리는 건 무리가 있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 문제➋ 꼬여버린 학사 일정 = 실제로 교육부의 요구대로 무전공 입학생을 확대하겠다고 나선 대학들은 학사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고등교육법에 규정된 '대입정책 4년 예고제'에 따르면, 모든 대학은 해당 학년도 학생들의 입학 1년 10개월 전인 고등학교 2학년 4월 말까지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이에 맞춰 각 대학은 이미 지난해 4월 2025년 전형계획을 모두 발표한 상황인데, 교육부의 발표로 이미 수립한 전형계획을 전부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참고: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거나 구조개혁을 위한 학과 개편 등이 있을 경우 변경이 가능하다.]

애초에 무전공 입학생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대학이 뽑을 수 있는 학생 수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선 무전공 입학생을 늘리면 다른 학과의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요구하는 비율을 맞추기 위해선 기존의 학과를 통폐합하는 과정이 필요해서다. 현재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대부분 여기서 벌어지고 있다.

서경대는 2025년부터 기존 11개 학과를 2개의 단과대학으로 통합하는 학사 개편을 시행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학기가 한창인 지난 9일 기습적으로 내용을 알린 데다 이전까지 학교 구성원과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국대도 학교와 학생 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12개 학과에서 통폐합과 정원 축소가 확정됐다. 조재희 건국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에게도 통보식의 형태로 합의 없이 학과 개편을 진행한 것은 매우 비겁한 행태"라면서 "한창 학기 중인데 내년부터 학과가 사라질 거란 통보를 하는 학교가 어디 있나"라고 꼬집었다.

■문제➌ 무전공 전형 효과 있을까 = 이런 갈등을 다행히 풀어내 2025년에 무전공 입학생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학사제도를 개편해도 문제가 남는다. '무전공 1학년'을 관리할 인력과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김용석 한국기술교육대학교(교양학부) 교수는 "시간이 촉박해서 무전공에 적합한 인프라나 교수 채용 같은 기본적인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학교 입장에서도 무전공 대폭 확대가 '가보지 않은 길'이다 보니 바뀐 전형에 몇명이 지원할지도 예측할 수 없어 내부적으로 큰 혼란에 빠져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무전공 확대책을 지나치게 급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또 있다. 무전공 확대 정책의 기대 효과를 파악할 수 없다는 거다. 교육부는 무전공 확대 정책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지난해 11월부터 진행했지만, 결과 보고서는 여태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무전공 정원 비율을 왜 최대 30%로 정했는지, 그 이후 결과가 어떨지를 지금 시점에선 짐작하거나 전망하기 힘들다. 물론 연구용역 결과와 무관하게 무전공 전형의 부작용은 상당 부분 노출돼 있다. 무전공과 유사한 학사제도를 시행했다가 신통치 않은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학부제다.

정부는 1990년대 후반 대학이 학과가 아닌 학부별로 학생을 모집하도록 하는 학부제를 도입했다. 학부제는 1학년 때 전공탐색을 한 후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무전공 전형과 유사하다.

하지만 취업에 유리한 학과에만 학생이 몰리는 등의 부작용이 심해지자 정부는 2008년 학부제를 폐지했다. 2010~2011년엔 일부 대학이 자유전공학부를 도입했다. 이 역시 실패한 정책으로 꼽힌다. 자유전공학부 입학생 역시 특정 인기 학과로 쏠렸기 때문이다. 자유전공학부를 개설했던 연세대와 성균관대 등 대학들이 이를 다시 없앤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속도조절 없이 무전공제 확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급하게 무전공제를 추진하는 교육부의 구상에 100년을 담보할 설계도가 있는지 의문이다. 분명한 건 대학, 대학생, 수험생 모두 '급작스러운 무전공제'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교육이 이래서 되겠는가.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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