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그는 왜 '1년 364일' 이주노동자들을 도왔나
한국에 와서 일하다 임금을 떼이고 다쳐도 호소할 곳 없던 이주노동자들을 구제하는 데 10년 넘게 앞장서온 60대 이주노동 활동가. 하지만, 그는 노무사가 아닌데 관련 업무를 했다며 고발당했고 검찰은 결국 기소유예 처분, 즉 기소는 하지 않았지만 죄를 인정했습니다. 최근 이 활동가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그는 2022년 말 정년퇴임했지만, '끝까지 싸워야 할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SBS 취재진은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위해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를 만나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다시 이주노동자로…가장 낮은 곳을 향해
그의 별명, '1년 364일'. 설과 추석 오전만 쉬고 하루도 빠짐없이 이주노동자 무료 지원 활동을 해온 오세용 전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렸습니다. 그가 처음 이주노동자를 돕기 시작한 건 2011년 경주에 이주노동자센터를 열면서부터입니다. 휴일엔 어려움을 겪고 센터를 찾은 이주노동자들을 상담해주고, 주중 낮엔 관공서들을 찾아다니고, 주중 저녁엔 고발장, 임금체불 내역서 등을 쓰며 이주노동자 구제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해서 매년, 체불임금, 산재 등 500여 건의 상담을 하고, 300여 건의 권리구제를 했습니다. 하루에 한 건 꼴로 문제를 해결한 셈입니다. 그가 이주노동자를 위해 무료로 끝까지 싸워준다는 소문이 퍼지며 더 많은 일을 더 책임감 있게 해야 했습니다.
그는 "결과를 보지 않고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러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보았다"면서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날아갈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이런 보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는구나 느낄 때가 자주 있었다"며 잠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오세용 전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세상이 정상적으로, 불평등하지 않고, 공정하게 돌아갔다면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겠죠. 그런데 그건 아니라고 봤지요. (중략) 실태를 조사해보니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 최하층의 비정규직이 이주노동자더라고요. 더 어려운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 있구나. 그렇다면 여기에 또 지원을 해보자. 자연스럽게 활동이 진행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없는 개인으로서 지도로 보면 바늘 하나 찍는 정도의 역할밖에 안 되겠지만, 그런 데 역할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주노동자의 아버지요? 아닙니다, 친구예요."
이주노동자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머리가 희끗한 예순을 넘은 그를 보니 '이주노동자의 아버지'란 수식어가 떠올랐습니다. 그에게 이런 호칭이 없었는지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라고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세용 전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아니에요. 그건 별로 안 좋은 편이라고 봐요. 절친한 동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동료, 이렇게 봐주세요. 이주노동자들이 저를 부를 때 처음에는 무조건 '사장님'이에요. 그럼 저는 '노 사장님, 사장님 싫어해요' 이렇게 얘기해요. '우리는 친구라고' 이야기해줘요.
어느 날은 22살, 23살 정도 된 캄보디아 친구가 왔어요. 와서 막 무슨 얘기를 하다가 30~40분밖에 안 됐는데 '센터 좋아요. 센터 좋아요' 그러는 거예요. '뭐가 좋아요?' 물어보니까, '나를 존중해줘서요' 그러는 거예요. 저는 저보다 나이가 어려도 전부 다 존댓말이에요. 이 친구가 한국에 온지 2~3년 됐는데, '존댓말을 처음 받아봤어요'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센터에 자주 놀러오세요' 그랬죠."
인도네시아 출신 한 이주노동자는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소장님이 싸워준 거 좋아요. 진짜 좋아요"라며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언어로 추켜세웠습니다. 우다야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오세용 소장님은 법을 잘 모르고 법으로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떼이지 않게, 사업주로부터 착취당하지 않게 국가가 하지 못한 역할을 했다"며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도움을 받았고 고마워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노동자 인권 향상" 대한법률구조공단 표창 받은 센터
오세용 전 소장이 문을 열고 지난 2022년 말까지 11년간 몸담은 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대한법률구조공단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측은 "센터에서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산업재해, 고용허가 문제 등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향상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고, 법률구조공단에는 201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체불임금 소송 지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연계해주신 공적이 있어서 감사패를 드리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법률 서비스 격차 해소를 목표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률 지식이 부족해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이들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기 위해 법률 상담과 소송대리 등 법률구조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공공기관에서 표창을 받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오 전 소장이 이끌어온 센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방증하고 있습니다.
"업으로 노무사 일" 공인노무사회의 '고발'
공인노무사회는 지난 2022년 10월, 오 전 소장에 대해 공인노무사법 위반,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노무사, 변호사 자격 없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리해 임금체불 사건 등을 진정 및 고소·고발했다는 혐의로 말입니다. 아래는 SBS가 확보한 고발장의 주요 항목을 발췌한 것입니다. 해당 고발장을 보면, 오 전 소장이 공인노무사가 아님에도 노무사의 일을 '업'으로 수행하였고, 변호사가 아님에도 법률 사무를 취급했다고 적혀있습니다.
가. 범죄사실
피고발인은 000에서 근무한 외국인근로자, 000의 체불임금과 관련한 일체의 권한(진정·고소고발·출석·진술·취하·소송·처벌유무 등)을 위임받고 2022.7.28. 임금 및 퇴직금 체불사건에 대하여 진정서를 작성하여 대리로 제출하고 사건조사시 출석하여 진술하였습니다.
이로써 피고발인은 공인노무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인노무사 직무인 노동 관계 법령에 따라 관계 기관에 대하여 행하는 신고·신청·보고·진술·청구 및 권리 구제 등의 대행 또는 대리와 노동 관계 법령에 따른 서류의 작성과 확인을 업으로 수행하였으며, 변호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직무인 수사기관에서 취급 중인 수사 사건 또는 라목 '법령에 따라 설치된 조사기관에서 취급 중인 조사 사건'을 대리하여 법률 관계 문서 작성, 그밖의 법률 사무를 취급하였습니다.
공인노무사회는 왜 이주노동자 무료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오 전 소장을 고발했을까? 지난 2022년 7월, 오 전 소장은 인도네시아 출신 어선원 2명의 임금체불 사건을 상담하고 노동청 진정 등을 대리했습니다. 당시 새로 부임한 한 근로감독관이 '당신이 노무사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닌데 무슨 권리로 이렇게 하느냐'며 오 전 소장과 논쟁이 있었고, 석 달 뒤인 10월 11일 고발장이 접수됐다고 합니다.
'기소는 안 해도 죄는 맞다'는 검찰…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은 '업'인가
경찰은 일단 오 전 소장이 이주노동자로부터 수수료 등 대가를 받지 않았다고 보고 변호사법 위반은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변호사법 제109조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 향응 또는 그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법률사무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오 전 소장은 고소·고발 대리 등 권리구제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로부터 이익을 받거나 이를 약속받지 않았기 때문에 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공인노무사법은 위반 혐의는 있다고 보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경찰은 공인노무사법 제27조에서 공인노무사가 아닌 자는 노무사의 직무를 '업'으로 행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보았습니다.
검찰의 기소유예 결정서 일부
여기서 업으로 한다는 것은 같은 행위를 계속하여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고, 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단순히 그에 필요한 인적 또는 물적 시설을 구비하였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행위의 반복·계속성 여부, 영업성의 유무, 그 행위의 목적이나 규모·횟수·기간·태양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중략)
피의자는 10년 이상 연평균 약 500여 건의 진정서 작성 및 진정 대리 행위를 해온 것으로 보이는 점, 비록 그 행위의 목적이 외국인근로자의 권리구제를 지원하는 것이고 의뢰인들로부터 직접적인 금전적 대가를 받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피의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주지부의 부설기관으로서 경주 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면서 매월 급여 내지 활동비를 받으며 위와 같은 행위를 계속, 반복해온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의자가 이 사건 진정서 작성 및 진정 대리 행위를 업으로서 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고 (후략)
그런데, 검찰이 결론을 내리기 전 제시한 근거를 보면, '업'의 주요 요건으로 '반복·계속성 여부', '영업성의 유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 전 소장의 활동이 반복·계속성, 영업성 등을 가질 때 이 활동을 업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검찰의 말대로 오 전 소장의 행위는 반복적이고 계속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복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업의 의미가 성립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식사, 수면 등을 필수적으로 반복적,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운동, 공부, 각종 취미, 종교 활동, 봉사 활동 등을 반복적으로 지속해서 합니다. 물론, 이는 업이 아닙니다.
법률 전문가들 "검찰, '업'의 범위 지나치게 확장…활동가를 잠재적 범죄자로"
이 사건을 맡고 있는 탁선호 변호사는 "검찰이 지나치게 업의 범위를 폭넓게 봐서, 영리성 없는 활동조차도 업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보고 이를 범죄행위로 규정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한, "수사기관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이 센터를 찾아가는 이유, 사회운동단체의 활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법을 적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탁 변호사는 "기존에 노무사법 위반이라고 하면 공인노무사가 아닌 사람이 금품을 받고 노무사업을 한 경우였는데, 전혀 영리성 없이 이주노동자를 돕는 차원에서 이뤄진 사회적 활동을 영리적 활동과 평면적으로 같은 선상에 놓고 법을 해석, 적용한 게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또 다른 법률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김예지 변호사 역시 "활동가들의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공인노무사법상 '업'으로 한 것이라고 무리하게 확장해석을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은 경제적 어려움, 언어적 문제로 법률 서비스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사실 사법 접근권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은 국가가 보장해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럼에도 국가는 점점 예산을 삭감하고 있고, 민간단체들이 최소한의 예산으로 어렵게 법에서 소외된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이 같은 지원은 이주노동자들의 사법 접근권이라는 돈으로 환산되기 어려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검찰이 업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 해석해 단순히 계속 업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채 법을 형식적으로 적용한 것은 분명히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실 모르는 처분"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 헌법소원 청구
이 같은 검찰의 처분은 현실을 모르는 결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검찰이 업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해 이주노동자 무료 지원활동을 범죄로 규정했다며, 직업 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차별, 이로 인한 죽음의 행렬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한 공인노무사회는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직역(직업의 구역)의 이익만을 위해 파렴치한 일을 자행했다"며 "검찰의 기소유예 결정 또한 무리한 결정이고 공인노무사회의 권리남용을 묵인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최저임금을 받는데, 20~30%에 달하는 수수료를 주며 노무사를 찾아가기 어렵다"며 "무료로 권리구제를 위한 지원, 통역을 제공하는 전국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와 활동가들이 존재하는 이유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분"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에서 한국의 산업구조를 떠받치는 이주노동자들의 체불임금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무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온갖 차별과 착취구조 안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도 임금을 떼이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무료상담 활동은 생명줄과 같다"며 활동가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오세용 전 소장 "내가 끝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는…"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그는 검찰 처분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검찰이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업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비유를 들어 지적했습니다. 오 전 소장은 "우리 집 근처에 무료 급식소가 있는데, 낮 12시가 되면 70, 80세 되신 분들이 지팡이 짚고 와서 식사를 드시고 간다"며 "몇 년 동안 일주일에 4~5일 씩 무료급식소를 운영하시는 선생님과 자원봉사자 분들이 계시고, 그 옆에 있는 식당에서도 도와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러면 사회보장이 잘 안 돼 어려운 노인들 지속적으로 무료 급식해주시는 분들의 활동도 업으로 보고 전부 다 고발해야 하겠나"라며, "국가나 사회에서 책임지지 못하는 부분들을 무료 지원한 것을 업이라는 개념으로 보고 범죄라고 하는 게 저는 이해가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세용 전 소장은 "그렇다면 검찰도 묵인, 방조, 내지 공모"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사건을 지원하고 있을 활동 당시 "검찰도 다 알고 있었다"며, "나한테 검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 내용이 노무사법 위반이니까 빠지라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해 묻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검찰도 알고 있었는데, 묵인, 방조, 공모해놓고 나서 이제 와서 이런 처분을 하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있는 자에겐 솜방망이고, 없는 자에게 쇠몽둥이라고…. 이런 활동을 독려는 하지 못 할망정 문제 삼는 게 도대체 뭐냐…"고 토로했습니다.
오세용 전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단지 오세용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에 있는 이주노동자 단체들에게 미칠 영향이 있습니다. 전국에서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부분 무료 지원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처분은 이런 활동가들에 대한 모욕이 될 수가 있어요. 그 다음에 더욱 중요하게는 이주노동자들이 이걸로 인해서 피해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끝까지 이거는 취소, 철회시키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취재·글 : 조을선 기자, 화면 : 이용한 영상취재기자·뉴스민 제공)
조을선 기자 sunshine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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