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영수회담 뒤집어 보기[시평]

2024. 5. 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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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
대통령과 野 대표 모두 낙제점
영수에 걸맞은 책임감 안 보여
고유 책무 저버린 협치는 기만
가족 문제 해결 요구는 코미디
돈 풀기 야합은 미래세대 배신
국민은 건달 목동 심판할 늑대

4·29 영수회담 결과를 본 국민의 반응이 미지근하다. 정치가 비즈니스라면 흥행에 실패했고, 게임이라면 승부에 실패했으며, 권력투쟁이라면 제대로 된 격돌이 없었다. 두 영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우선, 국민은 두 명의 대통령을 뽑지 않았다. 공약에 내세운 바를 구현하라고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줬다. 고도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실에서 나라의 현안에 자원을 배정하게 하고 그 책임을 묻고자 했다. 위임을 받았으면 본인이 약속한 대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국민에게 도움을 청하고, 또 본인의 역량을 발휘해 대처해 나가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은 무기력감과 배신감을 받았을 것이다.

한편, 야당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가 왜 대통령을 만나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청하거나 건의한 대부분은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거나 그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데 있었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국회에서 투쟁해 쟁취할 것들이지 대통령에게 요청할 사안들이 아니었다. 또한, 대통령과 행정부가 국민의 어려운 사정과 불투명한 미래를 외면한다고 그동안 비판했지만, 정작 그 깊은 난제에 대한 스마트한 해법을 들고 가지도 않았다. 대가를 제시하거나 위협을 장착하고 적절한 협상과 밀고 당기기는 애초에 시도되지 않았다.

필자는 협치(協治)라는 개념 자체에 반대한다. 아름다운 말이긴 하지만, 헌법에도 없고 현실 권력 관계상 이상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상 국회는 그것이 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행정부를 견제하고 행정부와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할 책임이 있다. 협력할 의무는 없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민 다수가 한 사람의 대통령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것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더욱더 진심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여러 의원의 의견 총합에 비해서 말이다. 헌법 정신이 그렇고, 이제까지 우리가 겪어온 다수의 대통령이 그리 행동했다. 각자의 임무가 따로 있는데, 누가 봐도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으면서 협력을 운운하고 웃으면서 악수하는 것은 그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본인을 포함한 가족들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족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장면은 국민에게는 너무 슬퍼서 그저 웃어넘기는 막장 드라마다. 협치한답시고 행정부와 국회가, 또는 국회의 다수당과 소수당이 야합하면 재정은 파탄 나고 기득권은 더 기름지게 되며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지난 회기 때 여야가 통 크게 합의한 대개의 법률은 예타를 면제한다거나 전혀 수요가 없는 교통망을 만든다거나, 상징적이기만 한 지역의 엄청난 사회간접자본(SOC)에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들이었다. 자기들끼리 주고받았는데, 그 비용은 국민이 세금으로 낸다. 상당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부채로 떠안겨 놨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그 며칠 전에 열린 시·도지사협의회에서는 회장이 ‘수도권 일극주의’ 등을 비판하면서 “17개 시·도가 지역균형발전에 한목소리를 내며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누가 국민을 수도권으로 모이라고 강요하거나 협박했나. 각자의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 꾸역꾸역 수도권으로 몰려들어 지금의 삶을 만들어냈다. 부산시나 전남에도 사람이 집중으로 모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뉘지 않는가. 발전은 원래 불균형적이다. 17개 시·도의 장이 주장한 것들은 사실 그저 n분의 1을 요구한 것이다. 그 n분의 1이 시·도로 흘러가면 그 안에서 여전히 불균형적으로 배분되고, 결과도 불균형적일 것이다. 균형발전이라는 미사여구에는 분파적인 지역 이기주의와 기득권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지역 이권이 내포돼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순한 양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 양들은 선거와 공론이라는 긴 발톱을 갖고 있고, 지성과 정보라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며, 삶을 사랑하는 경험과 갈망의 영혼이 담긴 좋은 눈을 갖고 있다. 멋진 늑대다.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건달 목동들은 그 늑대를 두려워해야 한다.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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