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버스에서, 투표소에서… 생명 살린 1만7481개 ‘손깍지’

김도연 기자 2024. 5. 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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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청 ‘하트세이버’ 인증사업
작년 심정지 이송자 10%만 생존
최초 목격자 응급처치 중요해져
심폐소생술 시행률 매년 증가세
생존자들 모임 ‘119 리본클럽’
CPR 인식제고 교육·강연 활동
최근 만남을 갖고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2019년 심정지 소생자 천광호(위 사진 왼쪽) 씨와 당시 심폐소생술로 천 씨를 살린 오동준 대구 달성소방서 소방위. 아래 사진은 2020년 심정지 소생자 김자영(오른쪽) 씨와 당시 심폐소생술로 김 씨를 살린 박희태 경기 안성소방서 소방사. 소방청 제공

“‘하트세이버’ ‘119리본클럽’을 아시나요?”

2일 소방청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2만9277명의 심정지 환자를 119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CPR)을 하면서 119구급차로 이송했다. 하지만 이 중 병원 도착 전에 살아난 환자 수는 약 10.65%인 3119명에 불과하다. 심정지로 쓰러진 10명 중 1명만이 살아난 셈이다. 심정지 환자가 발생할 때 전문 의료진이나 구급대원의 전문적인 처치는 물론, 최초 목격자의 심폐소생술 등 즉각적인 응급처치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새삼 일깨우는 통계다.

하트세이버란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심장 정지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환자를 심폐소생술 또는 심장충격기 등을 활용해 소생에 기여한 사람에게 소방청이 수여하는 인증서다. 119리본클럽은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심정지 환자의 소생률을 높이기 위해 구성된 심정지 소생자 모임이다.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이 확산하면서 하트세이버, 119리본클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급성 심정지 환자 구한 심폐소생술=“지난 4월 4일 부산의 한 시내버스 안에서 80대 승객이 맥없이 고꾸라졌다. 이를 처음 목격한 여성 승객은 119에 신고해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황을 전달하며 구급대원의 지시를 알렸다. 버스 기사는 운행을 멈추고 어르신을 바닥에 눕힌 후 가슴 압박을 시작했다. 나머지 승객들은 연신 쓰러진 남성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119구급대원의 응급처치 지도에 따라 약 8분간 가슴 압박을 진행하던 버스 기사가 힘에 부치자, 10대 남학생이 이어받아 가슴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몇 분 후 어르신은 간신히 숨을 내뱉었고, 곧바로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에 의해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송됐다. 24년간 버스를 운행하며 정년을 앞둔 버스 기사는 “위급 상황이 생긴 건 처음인데 겁이 났지만, 회사에서 심폐소생술을 교육받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급성 심정지로 인한 위급한 상황은 곳곳에서 일어난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지난 4월 10일 부산의 한 투표소에서는 투표하던 30대 남성이 쓰러지자, 당시 현장에 있던 공무원이 기도를 확보한 뒤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다음 날인 11일에는 전북 무주군에서 길가에 쓰러진 50대 남성을 지나던 집배원이 발견하고 신속한 응급처치로 살렸다.

◇‘하트세이버’, 해마다 늘고 있어=소방청은 이처럼 심정지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데 이바지한 이들에게 하트세이버 인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하트세이버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심폐소생술을 받은 심정지 환자가 △병원 도착 전 심전도 회복 △병원 도착 전·후 의식 회복 △병원 도착 후 72시간 이상 생존해 완전한 일상회복 또는 사고 전과 유사한 생활 가능 등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일반시민을 포함해 119구급대원, 응급처치를 지도한 상황 요원 등 1만7481명이 하트세이버 인증을 받았다. 수여 인원은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다. 지난해 119구급대를 통해 이송된 심정지 환자 중 완전히 일상을 회복해 하트세이버에 선정된 사례는 1330건으로, 이는 전년도 1169명 대비 13.7% 증가한 수치다. 또한, 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신속한 응급처치로 기여한 소방공무원과 일반시민 등 하트세이버 수여 인원은 6704명으로 전년도(5667명) 대비 18.3%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정지 소생자 모임 ‘119리본클럽’ 다양한 활동=소방청에서 운영하는 119리본클럽은 지난해 9월 발대식을 가졌다. 리본의 ‘리(Re)’는 ‘다시’를, ‘본(Born)’은 ‘태어나다’는 의미로 ‘119에 의해 다시 태어난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본인들의 생생한 경험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생명존중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공동체(커뮤니티)를 통한 정보공유 △희망 나눔 실천을 위한 각종 행사 추진 △심폐소생술 홍보대사 위촉 활동 △범국민 심폐소생술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19리본클럽 회원인 김자영(여·50) 씨는 “2020년과 2021년, 총 두 번의 급성 심정지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시 살아 돌아왔다. 심정지가 발생한 두 번 모두 골든타임을 확보해 빠른 응급처치가 이뤄졌고 무사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인 천광호(70) 씨는 “저녁에 집에서 갑자기 쓰러진 저를 딸이 가슴 압박을 먼저하고, 119구급대원분이 오셔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살아났다”며 “일반인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리본클럽에 가입했다”고 전했다.

2023년 질병관리청과 소방청이 함께한 ‘제12차 급성심장정지조사 심포지엄’에서는 일반인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2012년 6.9%에서 2017년 21.0%, 2022년 29.3%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심정지 환자를 최초 목격한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경우 생존율은 12.2%, 그렇지 않은 경우 5.9%로, 시행 시 생존율이 2.1배로 높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심정지 후 119구급대에 의해 생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119리본클럽 회원을 모집 중”이라며 “더욱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연대에 많은 분이 관심을 두고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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