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아이들

한겨레21 2024. 5. 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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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홍콩 영화 <소년일기> 와 닮은꼴 중국 9살 소년 자살 사건…실패와 퇴장 용납 않는 중국식 무한경쟁의 그늘
홍콩 영화 <소년일기>(年少日记)의 포스터. 더우반닷컴 누리집 갈무리

10살짜리 어린 소년이 아파트 옥상 난간에 앉아 있다. 잠시 뒤 소년은 옥상 아래로 ‘쿵’ 하고 사라져간다. 소년이 사라진 뒤에도 옥상의 풍경은 변함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소년의 꿈은 ‘자신이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채 크기도 전에 자신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실패한 ‘쓰레기’밖에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년은 어른으로 자라기를 포기하고 대신 옥상으로 올라가 지상에서의 짧은 인생과 작별을 고했다. ‘쓰레기 같은’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옥상에 올라오기 전날 밤, 자신이 매일 써오던 일기장에도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일기장아, 이제 안녕~.” 소년의 일기장은 ‘유서’가 됐다.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부모의 폭언

아빠는 항상 소년에게 ‘이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소리쳤다. 소년도 가끔 혼자 옥상에 올라가 망망대해 같은 허공에 대고 자신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없겠니! 그래야 나중에 홍콩대학을 갈 수 있지….”

한 살 어린 동생은 소년과는 정반대로 뭐든지 다 잘했다. 공부도 최고로 잘했고 피아노도 수준급으로 잘 쳤다. 부모님은 늘 동생을 남들 앞에서 자랑하고 뽐냈다. 그런 동생과 비교해 “너라는 놈은 쓰레기”라고 욕했다. 홍콩에서 가장 성공한 변호사인 아빠는 집 안에서는 폭군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오로지 노력을 통해 성공했다고 강조하는 아빠는 소년의 시험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마다 닭 털로 만들어진 먼지떨이 총채로 소년의 팔과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렸다. 아빠는 가끔 엄마도 때렸다. 자신의 말을 거역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였다.

소년은 아무리 노력해도 동생처럼 공부를 잘할 수도, 피아노를 잘 칠 수도 없었다. 그런 자신이 아빠 말처럼 늘 바보 같고 쓰레기 같다고 여겨졌다. 공부를 못해서 유급하고 동생과 같은 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하며 소년은 더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었다. 엄마는 심지어 그런 소년에게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라. 내가 아빠와 이혼하게 되면 다 너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년이 가장 좋아한 취미는 만화를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만화 따위’나 읽는다며, 아빠는 소년이 보던 만화를 빼앗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쓰레기통 속에 버려지고 찢긴 만화책 조각들을 보며 울먹이다가 소년은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만화의 한 구절이 온전하게 있는 걸 발견한다. 소년이 만화 속에서 가장 좋아했던 말은 “힘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화 밖 세상에서는 소년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어투로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유일하게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피아노 가정교사는 소년의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빠가 ‘잘라’버린다. 자신을 유일하게 응원해주던 선생님마저 사라지자 소년의 절망은 더 깊어져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자신을 더는 야단치지 않는 아빠에게 스스로 총채를 가지고 가서 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소년에게 차갑게 말한다. “너는 더 이상 때릴 가치도 없는 녀석….”

엄마 귀를 울린 ‘쿵’ 소리

소년이 늘 두려워한 것은 성적이 안 좋을 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선생님 등의 눈빛이었다. 한 살 어린 똑똑한 동생과 학교 친구들이 자신을 한심한 바보로 여기는 듯한 말투와 눈길에도 주눅이 들었다. 그들 눈에 소년은 경쟁에서 지기만 하는 ‘쓰레기’였다. 하지만 어느 날 아빠가 심지어 ‘쓰레기 취급’도 안 하고 자신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자신이 드디어 아빠에게 ‘맞을 가치’도 없는 진짜 ‘쓰레기’가 됐다고 느낀 소년은 마지막으로 일기장에 작별을 고하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소년이 남긴, 결국 유서가 된 일기장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 있었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위 이야기는 홍콩 영화 <소년일기>(年少日记)의 주요 내용 중 일부다. 이 영화는 2024년 4월14일 열린 제42회 홍콩영화금상장에서 호평을 받았고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 4월19일 중국 대륙에서 개봉된 뒤 중국 관객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는 홍콩 사회가 배경이지만 내용은 중국 내 소년들이 겪고 있는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기 나흘 전인 4월15일, 중국 후난성 핑장(平江)현의 한 아파트에서 9살 소년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 소식은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4월23일, 중국 내 주요 매체에 일제히 보도됐다. 후난성 9살 소년의 자살 이야기는 영화 <소년일기> 속 주인공 10살 소년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4월15일 아침 7시46분께, 소년이 살던 동네 파출소에 전화가 걸려왔다. 한 어린 소년이 옥상에서 떨어졌다는 신고 전화였다. 병원으로 실려간 소년은 그로부터 3시간여 뒤인 10시30분께 최종 사망 선고를 받았다. 소년은 그 아파트에 살고 있던 9살 양아무개군으로, 집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그날 아침 소년은 학교에 갈 채비를 마친 뒤 엄마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엄마, 아침밥 해주세요. 밥 먹고 혼자 학교에 갈게요.” 소년의 표정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엄마는 집을 나서는 소년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소년이 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본 뒤에야 엄마는 안심하고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왔다.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도 소년이 아침에 자기에게 ‘밥을 해달라’고 한 말이 내내 이상했다. 평소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집 근처를 빙빙 돌다가 아파트 입구까지 왔을 무렵 엄마는 위에서 뭔가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중국 우울증 환자의 30%가 18살 이하 아이들

소년은 엄마가 해준 마지막 아침밥을 먹고 혼자 학교에 가는 ‘척’하다가 엄마가 사라진 것을 본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가방을 멘 채 곧바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소년은 파란색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교복 주머니에 들어 있던 간식을 꺼내 먹었다. 아침 7시37분 소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년의 생에서 마지막 장면은 사건 직후 경찰이 확보한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약 일주일간의 조사 끝에 관계 당국은 소년이 자살에 이르기까지 대략의 과정을 발표했다. 소년은 다니던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공부를 못하거나’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 등의 이유로 자주 벌을 받고 손바닥을 맞았다. 죽기 전 일주일 동안 무려 13차례나 벌을 받았고, 어느 날은 하루 동안 네 과목 선생님들에게 벌을 받기도 했다. 소년이 죽은 뒤 가방에서 나온 공책에는 ‘분급’(分级)이라는 단어를 무려 1만 번이나 베껴 쓴 흔적도 나왔다. 조사 결과, 학교 선생님은 소년이 수업시간에 가르쳐준 ‘분급’에 관한 지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몇 달에 걸쳐 같은 글자를 1만 번 정도 쓰게 했다고 한다. 소년의 성적은 학급에서 중간 정도였지만 선생님들은 소년이 늘 공부를 잘 못한다며 야단치고 자주 공개적으로 벌을 세웠다. 소년이 자살하기 한 달쯤 전인 3월22일, 그날따라 소년은 배가 아프다며 엄마에게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열이 나지도 않았고 배도 아픈 것 같지 않아 엄마는 소년이 꾀병을 부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소년은 이미 그때부터 학교에 가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 영화 <소년일기>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처럼, 후난성의 9살 양군도 평소에 엄마를 도와 설거지와 청소를 했고 어린 동생과도 잘 놀아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아이였다. 친구들과 농구하는 걸 좋아했고 성격도 온순해 별다른 말썽이나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양군은 커서 어른이 되면 경찰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소년은 어른이 되기는커녕 키도 제대로 자라지 않은 9살 나이에 아무것도 되어보지 못한 채 짧은 생을 스스로 마쳤다.

영화 <소년일기>가 절찬리에 상영 중인 데다 사건 내용이 영화 속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많아 이 사건은 중국 언론과 소셜미디어 등에서 수많은 애도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양군 사건을 분석하는 언론은 대부분 “중국식 무한경쟁, 네이쥐안(內卷) 교육 시스템이 빚은 비극”이라고 했다.

아이들의 비극은 거의 매년 반복되어 왔다. 2021년, 상하이시 푸동에 사는 14세 소녀는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자신을 학대해 온 부모를 향해 “당신들이 사랑한 것은 내가 아니라 시험에서 백점을 맞는 나였습니다.(...)다음 생에서는 서로 만나지 말아요(...)”라고 시작하는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집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 2022년 10월, 장시성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15세 후신위는 혼자 학교를 나간 뒤 실종되었다. 그 후 106일만에 학교 뒷산에서 주검이 발견됐고 경찰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었다.

2023년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15~34살 인구의 사망 원인 첫 번째는 자살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자살 원인은 학교와 가정에서 받는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우울증이다. 보고에 따르면, 18살 이하 우울증 환자가 전체 우울증 환자의 30%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들 우울증 환자의 50%는 학생들이다.

소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일어난 중국 후난성 핑장현의 한 아파트. 자오디안 비디오계정 갈무리

탈출구 없는 아이들의 비극

많은 학자는 수많은 청소년을 자살로 내모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중국식 무한경쟁을 뜻하는 ‘네이쥐안’(内卷)을 꼽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인류학연구소 소장 샹뱌오는 그의 책 <주변의 상실>(글항아리, 2022)에서 “중국 사회의 안정과 발달이란 모두 이러한 치열한 경쟁에 의해 유지되고 있고, 이러한 네이쥐안의 중요한 메커니즘은 탈출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 즉 탈출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식 네이쥐안은 샹뱌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패와 퇴장을 용납하지 않는 경쟁’ 시스템이다. 즉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자신에게 맞는 다른 좋은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 경쟁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는 메커니즘이 아주 중요하지만” 중국에는 아직 이런 시스템이 없다. 때문에 이러한 ‘실패와 퇴장을 용납하지 않는’ 네이쥐안 구조에 휩쓸려 들어가는 아이들은 ‘혁명이 진행 중인 나라도 아니고, 적군의 포위에 봉쇄된 나라도 아닌데’(조앤 디디온 저,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중) 매일 자신의 집 옥상이나 창문에서 뛰어내려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중국 아이들만의 이야기일까. 후난성에 살던 9살 양군과 홍콩 영화 <소년일기>의 10살 주인공 소년은 어른이 되면 각자 ‘선생님과 경찰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커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들을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옥상 위 벼랑 끝으로 내몰아 사라지게 했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베이징에 거주하는 필자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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