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AI 시대의 쉼과 위안

김제동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신부 2024. 5. 2. 07: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혼이 가장 위안을 얻는 때는 언제일까? 잠잘 때와 죽을 때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을 때가 아닐까.

누구든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취사선택해, 스스로에게 쉼과 위안을 줄 책임과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쉼과 위안이 되는 존재로 되어갈 때, 살아있음은 지옥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 자체에 감사하고 다시금 쉼과 위로를 얻는 이미 존재하는 천국이 되어, 우리와 우리 사회에 열리게 될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제동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신부

영혼이 가장 위안을 얻는 때는 언제일까? 잠잘 때와 죽을 때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을 때가 아닐까.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무것도 아쉽지 않네. 푸른 풀밭 시냇가에 쉬게 하사, 나의 심신을 새롭게 하네" 이는 가톨릭 장례미사에서 부르는 성가의 일부인데,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고립된 상황에도 변함없이 하느님의 돌봄을 신뢰하고 있는 저자의 신앙처럼,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가 있는 사람은 참으로 안심하며 지낼 수 있다. 부모, 친구, 이웃, 익명의 선한 사람, 사회공동체, 종교적 절대자 등이 자신을 돌봐줄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취사선택해, 스스로에게 쉼과 위안을 줄 책임과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돌보기 위한 선택은 자신을 위하는 목적을 이미 달성한 것이기에 실패가 없다.

필자가 브라질에서 경험한 일이다. 어느 날 숙소 근처에 주차장이 없어서 길에 주차를 하려 하는데, 금세 누군가 주차비를 받으려 다가왔다.

"내가 밤새 길에서 차를 봐줄 테니, 나에게 2만 원을 줘. 안 그러면 누군가가 이 차 유리를 부술 수 있고, 차를 도난당할 수도 있을 거야."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차량이 파손될까 걱정된 필자는 나름 흥정을 해서 1만 원을 줬다. 이러한 방식은 공갈 협박을 통해 이득을 취한 것이므로 자신을 돌본 것이라 볼 수 없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제외하고, 자신을 돌보기 위한 선택은 그 자체로 성공한 것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딛고 설 수 있는 최후의 받침대는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돌볼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 협력한다.

세상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며,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인간이 아직 밝히지 못한 것이 너무 많고 미약하다. 인간은 성공과 명예,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자신을 돌볼 뿐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완성시킨다. 곧 자기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과제인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외부 지원의 부족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 돌보는 사회 체질의 부족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출산율 저하의 원인은 혼인적령기에 놓인 이들에게만 한정된 과제가 아니기에, 그 대책 또한 모든 세대가 함께 실천해 가야 할 비전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서로에 대한 비교를 중단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며, 격려하는 노력으로 시작할 수 있다. 비유적으로 외부의 맑은 공기만 마시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건강한 이산화산소를 배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고 누군가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은 또한 누군가로부터의 돌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당연한 권리로서의 돌봄이 아닌 한계가 있으며,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누군가를 돌볼 줄 알며, 그 돌봄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도 아는 이들이 한국 사회 전체에 건강하게 자리잡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쉼과 위안이 되는 존재로 되어갈 때, 살아있음은 지옥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 자체에 감사하고 다시금 쉼과 위로를 얻는 이미 존재하는 천국이 되어, 우리와 우리 사회에 열리게 될 것이다. 김제동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신부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