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플랫폼 세대교체…'머·트·발' 지고 뜨는 곳은

2024. 5. 2.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머·트·발, 지난해 합산 적자 211억원 기록…매출도 급감
광고선전비 축소하고 사옥 매각했으나 적자 탈출 실패
3세대 명품 플랫폼 젠테, 매출 488억원으로 업계 1위 올라
사진=젠테


코로나19 기간 명품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2022년까지 유동성이 넘쳤지만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자 값비싼 핸드백 등을 구매하는 보복소비가 폭발했다. 명품을 유통하는 플랫폼 업계도 수혜를 입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22년 하반기. 이후 이들 업계는 수익성 개선에 전념했지만 작년부터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고객도 급속히 이탈해 매출 규모도 크게 줄었다. 업계 1위인 머스트잇은 지난해 압구정 사옥까지 매각했다. 이런 명품업계에서 조용히 성장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젠테’다. ‘100% 부티크 소싱’으로 가품을 없애자 고객이 몰렸다. 명품 플랫폼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명품 유행 끝났나…업계는 우울하다

명품 플랫폼 업체들은 작년 대부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머·트·발’로 묶이는 주요 3사의 실적전망은 올해도 밝지 않았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매출 250억원과 영업적자 7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영업적자 폭은 줄었지만 매출도 24.5% 감소했다. 머스트잇은 명품 플랫폼 업계의 출혈 경쟁이 심화할 당시 과도한 광고선전비를 지출했고 팬데믹 이후 소비심리까지 위축되자 타격을 받았다. 



트렌비도 마찬가지다. 트렌비의 연결 기준 매출은 401억원, 영업손실은 32억원이다. 영업손실 규모는 전년 대비 줄었으나 매출 또한 54.5% 급감했다. 발란은 지난해 매출 392억원, 영업적자 100억원을 냈다. 매출은 56.0% 줄었고 영업손실이 이어졌다. 특히 트렌비와 발란는 매출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800억원이 넘던 매출 규모는 1년 사이에 3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사용자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이들 3사의 MAU(월간활성사용자 수)는 2022년 3월 138만 명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3월 70만 명으로 줄었고 올해 3월에는 46만 명까지 떨어졌다. 

마케팅까지 최소화했지만 흑자전환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3사의 합산 광고선전비는 167억원에 그쳤다. 이들 3사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유명 배우를 기용, 고액의 모델료를 지급했다. 당시 머스트잇은 주지훈, 트렌비는 김희애·김우빈, 발란은 김혜수 등을 발탁했다. 3사가 집행한 광고선전비 규모는 1291억원(2021~2022년)에 달했다. 

결국 머스트잇은 사옥까지 팔았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옥을 410억원에 매각했다. 이 사옥은 2021년 300억원에 매입했으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2년 만에 되팔게 됐다. 



1·2세대 저문다…3세대로 세대교체

선두권 3사가 고전하는 동안 매출 1위를 꿰찬 명품 플랫폼 회사는 젠테였다. 젠테는 지난해 매출 488억원과 영업적자 54억원을 기록했다. 젠테도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적자를 피하지 못했으나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157% 급증하며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젠테의 매출은 2020년 18억원에 불과했지만 이듬해 132억원으로 늘었고 2021년 114억원, 2022년 309억원으로 증가했다. 젠테 관계자는 “매출이 매년 150% 이상 견조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광고와 마케팅이 아닌 고객 경험을 통한 입소문으로 확대, 충성도를 높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올해 1분기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매출은 226억원, 영업이익은 5억1000만원을 기록했다. 머·트·발의 MAU가 꾸준히 감소한 것과 달리 젠테는 증가하고 있다. 젠테에 따르면 2021년 5월 20만 명 수준에서 2022년 60만 명을 돌파했고 지난해 11월에는 92만3000명까지 늘었다. 올해 3월 MAU는 54만 명으로 집계됐다. 

젠테는 코로나 기간인 2020년 4월 설립된 후발주자다. 머스트잇(2011년), 발란(2015년), 트렌비(2017년) 등과 비교하면 설립 시기가 한참 늦다. 

명품 플랫폼의 1세대는 필웨이(2002년 설립), 머스트잇, 리본즈(2012년 설립) 등이다. 이들 플랫폼은 ‘직구(해외 직접구매)’가 주력이다. 병행수입 셀러(판매자)가 사이트에 올린 제품을 고객들이 구매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같은 제품이라도 셀러별로 차이가 큰 가격 △오래 걸리는 배송 △복잡한 교환·반품 △오배송 가능성 △가품 가능성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플랫폼은 ‘부티크 소싱’ 기능이 더해진 ‘2세대’로 한 단계 진화했다. 부티크 소싱은 1차 도매상인 해외 유명 부티크와 계약하고 현지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중계 판매하는 ‘직매입’ 구조다. 명품 브랜드와의 직접 계약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최상위 총판업체와 손을 잡고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부티크는 브랜드와 직접 계약하고 제품을 유통하는 만큼 가품 가능성이 ‘제로’다.

대표적인 2세대 명품 플랫폼으로는 코로나 기간 크게 성장한 트렌비, 발란, 디코드, 캐치패션 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2세대의 강점은 부티크 소싱”이라며 “명품들은 제품 공급 계약을 맺을 때 상대 회사의 이미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몇 대에 걸쳐 사업을 해온 부티크는 1차 벤더가 될 수 있지만 한국의 온라인 회사는 그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가품 유통 확률을 줄이고 다양한 명품 브랜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부티크와의 계약으로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된다. 

다만 부티크 계약도 한계가 있다. 통상 명품 브랜드들이 신뢰하는 유럽의 유명 부티크들은 수백 년간 사업을 영위해온 ‘장수 회사’다. 과거 지역 유지들이 귀족과 상류층을 상대로 옷이나 가죽제품 등을 판매하기 위해 운영한 가게가 부티크의 유래다. 이후 후손들이 이어받아 현재도 사업을 이어나가는 만큼 자부심이 상당하다. 콧대가 높아 계약도 쉽지 않아 국내 명품 플랫폼들은 부티크 소싱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었다.

젠테는 모든 제품을 부티크에서 가져온다. ‘100% 부티크 소싱’이 이들의 슬로건이다. 고객 신뢰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일반 셀러는 받지 않는다. 2세대 회사들이 원했지만 할 수 없었던 사업 모델이 나오면서 명품 플랫폼 시장은 ‘3세대’로 재편되고 있다. 3세대의 핵심 특징은 부티크 소싱으로만 제품을 들여온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3세대는 젠테가 유일하다. 

젠테가 부티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정승탄 대표의 노력 덕분이다. 1989년생인 정 대표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사회경제학을 공부했지만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피렌체 가죽학교를 다닌 뒤 불가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이후 정 대표는 디자이너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와 이탈리아 가죽 기업 피스톨레시 SRL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며 10년 넘게 현지 부티크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때 구축한 네트워크는 젠테가 빠르게 부티크와 계약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아울러 정 대표는 부티크와 계약하기 위해 젠테 설립 초기부터 ‘지극정성’으로 부티크 문을 두드렸다. 수백 개의 부티크에 명절마다 편지를 보내고 1년에 몇 번씩 현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신뢰도를 쌓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발생했고 부티크들이 온라인 판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기회를 얻게 됐다.



젠테, 기술·콘텐츠 투자로 고객 모았다 

젠테는 150개 이상의 부티크와 계약을 맺고 유럽 현지의 7000여 개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을 고객들에게 직접 공급하고 있다. 설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젠테가 100개 이상의 부티크와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내부 시스템 투자의 결과다. 

젠테는 자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인 ‘젠테 포레’를 구축하고 부티크와의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명품 플랫폼 가운데 ERP 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젠테가 유일하다. 젠테는 창업 초기부터 젠테 포레 구축에 나섰으며 약 1년간 준비해 2021년 선보였다. 

젠테 포레는 명품 업계의 틈새를 파고는 시스템으로, 온라인화 비율이 현저히 낮은 현지 부티크와 연동해 실시간으로 재고를 관리하고 즉각적인 소통 툴을 만들어 유통 과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게 특징이다. 젠테 포레 구축으로 중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80%를 절감했다는 게 젠테 측의 설명이다. 

2세대까지는 대부분의 명품 플랫폼들이 ‘부티크→해외 에이전시→국내 에이전시→국내 도매업체→국내 소매업체→고객’으로 복잡한 유통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젠테는 ‘부티크→젠테스토어→고객’ 등으로 이 과정을 개선했다. 젠테 관계자는 “입점 브랜드나 부티크는 온라인에서도 제품을 재고 관리 고민 없이 원활히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브랜드 혹은 부티크와의 협력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자체 콘텐츠도 만들었다. 단순 유명 명품 브랜드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플랫폼을 넘어 브랜드의 기원과 디자이너의 이야기, 제품의 특징, 스타일링 방법 등을 고객에게 제공한다.  

부티크 확보로 가품 문제를 해결하자 신규 고객이 유입됐다. 고가, 고관여 제품을 다루는 명품 시장에서 플랫폼의 신뢰도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최근 온라인 명품 구매가 증가하면서 플랫폼의 신뢰도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품 판매, 개인정보 유출, 부적절한 AS 등 다양한 문제로부터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젠테는 고객을 늘리기 위해 부가세 포함 가격, 무료 배송, 월 1회 무료 반품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