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근력 자랑하는 한미동맹과 조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2024. 5. 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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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 (15) 기계도, 인간도 완벽하지 않다

저는 이제부터 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이라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떠나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명칭 사용은 관계 설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취지는 제가 <한겨레>에 쓴 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바로가기) 필자

"'하늘의 암살자' 리퍼 떴다." 4월 19일 대다수 언론이 뽑은 제목이다. 몇몇 언론은 그 앞에 "北수뇌부 겨눈"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미국 공군의 무인공격기 MQ-9 리퍼는 2020년 1월 이란 혁명수비대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 작전에 투입한 바 있다. 당시에도 국내 몇몇 언론은 리퍼가 조선 지도부 참수 작전의 핵심 무기로 거론한 바 있다.

리퍼는 4월 12일부터 시작돼 26일까지 실시된 '2024년 연합편대군 종합훈련'에 투입된 한미 공군의 군용기 100여대 가운데 하나이지만,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번 훈련에는 F-35, F-15K, F-16 등이 대거 동원되었는데, 훈련의 주된 목적은 "적의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 모의표적을 타격"하는 데에 맞춰졌다.

한미가 하루 평균 100회 출격에 달할 정도로 고강도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하자 조선도 맞대응에 나섰다.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하고 모의 핵탄두를 장착했다는 600mm 초대형 방사포가 평양 인근에서 화염을 내뿜으면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것이다.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초대형 방사포들은 독보적인 위력과 완벽한 실전태세를 힘있게 과시하며 사거리 352km의 섬 목표를 명중타격하였다"고 밝혔다.

왜 352km일까? 초대형 방사포 시험 발사가 이뤄진 평양 인근에서 연합훈련 참가차 한미 군용기가 결집된 군산공군기지까지의 거리가 이에 해당된다. 통신도 이 훈련이 한미 연합편대종합훈련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23일 "초대형방사포병부대들을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인 '핵방아쇠' 체계안에서 운용하는 훈련이 22일 처음으로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조선이 이러한 성격의 훈련을 실시한 것도 처음이다. 조선은 전술핵을 전쟁 억제력 및 반격의 핵심 전력으로 삼고는 전술핵 생산 증대 및 다양한 투발 수단을 개발·생산·시험·훈련해왔다.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를 '핵방아쇠'로 명명하고는 올해 들어 전술핵을 투입하는 반격 작전 훈련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그 일환으로 지난 3월에는 '핵반격가상종합전술훈련'을 실시했고, 이번에는 '핵방아쇠' 체계를 처음으로 적용했다.

핵 방아쇠는 조선이 2023년 3월말에 처음으로 공개한 것으로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를 이렇게 명명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핵지휘통제체계를 뜻한다. 이 체계는 한편으로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핵무기를 신속·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절차와 공정을 확립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 지도자에게 핵무기 사용 권한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비인가자에 의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취지를 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최고 지도자 유고시에 대비해 핵지휘통제체계에 내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사전 위임하는 절차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고안해냈던 '죽은 자의 손(dead hand)' 독트린은 이미 널리 알려진 비밀이다.

조선도 2022년 9월 제정한 핵무력법에 핵무기 사용 권한이 최고 지도자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적시했다. '핵 방아쇠'에 '데드 핸드'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핵 방아쇠'에 있어서 조선이 심혈을 기울인 것이 '화산-31' 핵탄두이다. 조선은 2023년 3월에 이 탄두로 보이는 사진을 공개하면서 "각이한 무기체계들과의 호환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화산-31'이 단일한 투발수단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미사일과 600mm 초대형 방사포에도 장착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조선이 핵방아쇠를 두고 "다각적인 작전공간에서 각이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통합 운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핵 지휘통제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경보 체계'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 핵보유국들은 적대 세력의 핵무기 등을 이용한 주요 공격이 가해지거나 임박했을 때 신속하게 핵 보복을 가할 수 있는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체계를 구축해왔다. 핵무기를 이용한 가공하고도 신속한 보복 능력을 과시해야 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조선은 이를 '화산 경보'라고 부른다. 국가 최대핵위기사태에 해당하는 경보가 발령되면 핵반격태세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경보 즉시 발사'를 다른 말로 '일촉즉발(hair trigger)'라고도 부른다. 언제든 발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조선이 '핵 방아쇠'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화산'은 핵폭발시 만들어지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연상시킨다. 조선이 '화산'과 '핵 방아쇠'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이러한 핵무기의 특징을 십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조선이 '핵 방아쇠'를 전면에 내세운 데에는 이렇게 해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게 깔려 있다. 이는 미국 등 다른 핵보유국들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이러한 군비경쟁과 공세적이고 일촉즉발형 핵 태세 강화가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핵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우선 경보 체계의 발령 과정에서 기계의 오작동이나 인간의 오판과 오인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본격적인 핵시대 개막 이후 이러한 사례들은 숱하게 많다. 또 국지 충돌이 핵전쟁으로 비화될 위험도 높인다.

교전 상대방이 쏜 미사일이나 포탄에 핵탄두가 장착되어 있는지는 탄두가 폭발한 이후에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평소에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신호를 강하게 내뿜을수록 다른 쪽은 날아오는 발사체에 핵탄두가 장착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대응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미동맹과 조선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에선 양측 모두 선제공격 옵션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반도형 상호 위협·위험 감소 조치가 절실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도성을 품은 위협적인 언행이 고개를 들수록 의도하지 않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위협과 위험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경계해야 할 때라는 뜻이다. 한미동맹과 조선이 '힘에 의한 평화'에만 몰두하면서 '관계 개선에 의한 평화'에는 소홀한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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