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쇼를 만드는 사람들 “내 개그의 영감은 이것”

김미주 기자 2024. 5.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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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마다 여름이면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BICF)이 바다처럼 시원한 ‘블루 카펫’을 펼치고 부산을 웃음바다로 물들인다. 엄선한 웃음으로 축제를 만드는 BICF 조직위원회에 ‘코미디 가치관’에 영향을 준 영화·영상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주성치’부터 ‘숏박스’까지.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BICF의 웃음코드를 소개한다. 당신과 맞는 ‘웃음코드’로 잠시 일상을 환기하면 어떨까. 사전에 ‘환기’는 ‘탁한 공기를 맑은 공기로 바꿈’이라고 나와 있다.

◇ 저예산 티 팍팍! B급 병맛 가득한 옛 영화 어때요

황덕창 수석프로그래머 ‘007 북경특급’

주성치 영화를 20편 가까이 본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원제는 ‘국산공공칠’이다)는 1994년, 그러니까 딱 30년 전 나온 이 영화다. 주성치가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이력지와 공동 감독) 첫 작품이다. 시작할 때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의) 007과 관련이 없습니다’고 해놓고는 대놓고 007 영화 시리즈 음악과 오프닝 장면을 패러디한다. 영화 설명은 딱 네 글자면 충분하다. B급 병맛. 내용? 감동? 그런 거 없다. 가성비 쩌는 어설픈 특수효과는 덤! 이때만 해도 ‘B급 영화배우’ 대접받던 주성치. 이제는 코미디 영화 거장으로 추앙받고 영화 스케일도 훨씬 커졌지만, 나 같은 고인 물 팬은 예산 안 들인 티가 풀풀 나는 고효율 B급 병맛 가득한 예전 영화들이 더 그립다. 유치한 게 어때서? 그게 코미디다. 추신: 아, 이 영화에서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 오맹달이 안 나온다.

◇ ‘All is well’ 한 문장으로 유쾌함의 힘을 느끼다

김채미 영상팀장 ‘세 얼간이(인도)’

‘All is well’.(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 영화 ‘세 얼간이’를 관통하는 이 문장은 내게 무엇이든 잘될 것이란 믿음을 주는 마법 문장이다. 중학생 때 선생님이 틀어준 이 영화는 내가 본 첫 번째 인도 영화이자 아직 뇌리에 강하게 남은 코미디 영화다. 인도에서도 학생들이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 살아간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 안에서 긍정의 힘으로 친구들과 사회시스템까지 변화시키는 주인공 란초가 매력적이었다. 란초는 강압적으로 시스템을 비판하지 않는다. 특유의 유쾌·발랄함으로 잘못됨을 스스로 돌아보게 권유한다. 유쾌함의 힘이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모든 주인공이 인도 영화 특유의 패턴처럼 춤추고 노래하며 해피엔딩을 맞을 때, 웃음이 만들어낸 진정한 화합이 느껴졌다. 추신 : 메인 OST인 ‘All is well’과 비극의 전조가 된 ‘Give me some sunshine’을 추천.

◇ 코미디의 본질인 웃음, 그걸 잃지 않은 예능 명작

권영훈 사무국장 ‘무한도전’

내 청춘을 빈틈없이 메워 준 마스터피스. ‘무한도전’ 종영 뒤에도 관련 유튜브나 쇼츠로 목마름을 해소하고 있다.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으로 첫 방송할 때 ‘대한민국 평균 이하들의 도전’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했고, 기상천외한 대결이나 도전으로 웃음을 줬다. 농담처럼 던진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마법도 보여줬다. 특히 2009년 강변가요제를 페러디한 강변북로가요제를 시작으로 5회에 걸쳐 진행된 무도가요제는 방송 때마다 음원차트를 싹쓸이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중 가수 이적과 유재석이 함께 부른 ‘말하는 대로’는 일상에 지친 시민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무한도전’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사명감과 많이 닮았다. 코미디의 본질인 웃음을 중심으로, 시민 품으로 자연스레 다가서도록 노력한다. 추신:부코페도 ‘무한도전’처럼 우리 삶의 빈틈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한다.

◇ ‘엄근진’ 뉴스 스튜디오에 들어온 파리 한 마리

김경화 기획팀장 ‘한국 경제 얘기하는데 파리가…’

코미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도 생각만 해도 실실 웃음부터 나고, 내용을 알고 또 봐도 늘 같은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지는 인생 최애 영상이 있다. 2001년 한국경제TV가 진행하던 인터뷰에서 일어난 방송사고 영상이다. 파리의 등장으로 시작된 이 방송사고는 지금도 레전드 영상으로 회자된다. 돌발 상황과 뉴스 분위기를 지키려는 출연자들의 심오함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많은 이에게 스트레스 해소제가 됐다. 이날 뒤로 나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콩트보다는 슬랩스틱 코미디, 몰래카메라 같은 장르가 내 유머코드라는 것을 깨달았다. 올해 부코페에서 여러분도 개인 취향을 발견해 코미디 식견을 넓히는 계기를 가지면 좋겠다. 추신 : 웃음은 지루한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관계망 속에서 농담을 주고받을 때 코미디는 윤활제다. 삶의 필수요소다.

◇ 하이퍼리얼리즘 콘텐츠의 원조…재미 넘어 감동

박혜진 총괄기획실장 ‘유튜브 채널 숏박스’

처음 ‘숏박스’ 영상을 접하고 디테일한 공감 포인트에 놀라 이 채널에 업로드된 유튜브 영상을 하루 만에 모두 봤다. 새 영상 업로드를 기다린 유튜브 채널은 이게 처음이었다. ‘숏박스’를 ‘떡상’시킨 ‘장기연애’는 오래 사귄 연인 사이에서나 가능한 대화 등 자칫 민망할 수 있는 19금 요소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위트 있게 표현해 인상 깊었다. ‘호적 메이트’일 뿐인 남매의 티격태격 일상을 다룬 ‘찐남매’ 영상 시리즈는 말 그대로 그냥 내이야기! ‘숏박스’는 현실에서 누구나 겪을 만한 상황을 재미있고 상세하게 재연해 공감을 끌어내고 재미를 넘어 감동을 준다. 특히 지난해 제1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도 최초 코미디 유튜브 대상을 수상한 팀인만큼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받길 팬으로서 응원한다. 추신 : 하이퍼리얼리즘 콘텐츠가 유튜브 등에 많이 나오지만, 원조의 품격을 느껴보세요!

◇ 학창시절 ‘밤바야~’ 안 외쳐본 사람은 없을걸?

엄정민 홍보팀장 ‘KBS 개그콘서트 사바나의 아침’

1999년 방영된 이 프로그램을 아는 사람 중 “밤바야!”라는 유행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 “밤바야~!”를 외치며 교실을 누비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부모님께 조르고 졸라서 보게 되는 개그콘서트는 활력소였고, 다음 날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최고 화젯거리였다. 누가 먼저 교실에서 “밤바야~!”를 외치거나 “엽떼여?! 엽떼여?!”를 하는지를 놓고 인기의 판가름을 논할 정도였다. 요즘이야 릴스나 유튜브로 방송 다시 보기나 주요 장면 무한 재생을 할 수 있지만 이땐 본방송을 사수해야만 문화와 유행에 뒤쳐지지 않았기에 본방 사수에 거의 목숨을 걸었다. 내 어릴 적 코미디에 관한 강력한 기억의 시작은 개그콘서트 ‘사바나의 아침’이다. 추신 : 4년여 만에 다시 돌아온 개그콘서트가 더욱더 잘 되어 BICF와 함께 하길 바란다.

◇ 몇번을 봐도 처음보듯 웃음 터지는 ‘로코’의 정석

김도형 사업운영실장 ‘엽기적인 그녀’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동명의 PC통신 연재 소설에 기반한 작품이다. ‘응답하라 1994’에도 등장한 PC통신. 5G에 익숙한 요즘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 이전에 하이텔 유니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여러 PC통신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나우누리 유머게시판에 ‘견우74’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연재한 글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2001년 영화로 만들어진 게 전지현 차태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설로 남은 이 작품은 개봉한 지 20년이 지나 재개봉했을 때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얻었다. 영화 속 전지현과 차태현의 환상적인 호흡이 만들어낸 인상 깊고 재미있는 장면은 지금도 콩트나 드라마에서 패러디되는데, 그때마다 처음 본 것처럼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추신 : #견우야~미안해! #교복데이트 #민증검사 #I believe #연애십계명

◇ 주성치 보며 정신없이 웃다가도 코끝이 찡하네

이명백 영상콘텐츠실장 ‘쿵푸허슬’

주성치의 모든 영화를 추천하지만 ‘쿵푸허슬’은 ‘소림축구’와 함께 국내에 주성치의 이름을 많이 알린 작품이기 때문에 선정했다. 주성치는 천재적 코미디 배우이자 감독으로 수많은 한국 코미디언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코믹, 재기발랄함 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정신없이 웃다 어느새 코끝이 찡한 페이소스를 느끼는 자신을 마주한다. 주성치가 출연하거나 만든 모든 영화에 적용되는 이 공식은 ‘주성치’라는 브랜드가 하나의 장르로 인정되어도 무방하게 한다. 어느 영화의 감독이 주성치라면 일단 묻고 따지지 말고 보란 소리다. 여기 나온 인물들은 요즘 개그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패러디될 만큼 영감을 준 듯하다. 추신 : 천재 코미디언 감독 주성치! 언젠가 그가 부코페의 블루카펫을 밟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글=김미주 기자·사진= 각 홈페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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